당파정치 실패가 부른 美 아프간 전쟁 망신

입력
2021.08.17 04:30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카불=AP 연합뉴스


“탈레반이 카불의 미국대사관에 깃발을 내건다면 이 얼마나 망신스러운 일인가. 이는 나약함, 무능, 총체적인 전략적 모순에 따른 완전한 실패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의 공세가 거세진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성명이다. 이틀 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정권을 내줬다. 미국은 급작스러운 철수작전에 혼이 나갈 지경이다. 1975년 베트남전쟁 패전 후 ‘사이공 함락’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공화당 정치인들의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곧바로 이런 의문이 들었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이럴 자격이 있는가.’ 아무리 정치 공세가 중요하다지만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2001년 아프간 침공을 시작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난해 2월 탈레반과 협상을 하며 지난 5월을 미군 철군 시점으로 정하고 2,500명으로 병력 감축까지 결정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공화당 소속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철군 원칙을 확정했을 때도 공화당이 미군 장기 주둔 필요성을 강력히 요구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잘한 것도 없다. 부시 행정부의 아프간 전쟁을 계속 비판했지만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 후 철군 기회를 잡고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게 오바마ㆍ바이든 민주당 행정부다. 끝내야 할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동안 무능과 부패만 아프간 현지에 넘쳐났다.

게다가 이번에는 2001년 9ㆍ11테러 20주년에 맞춰 아프간 전쟁을 끝내겠다는 ‘모양’만 따지다 ‘형세’를 놓치는 우도 범했다. 펜타곤과 의회 독립위원회가 현지 상황에 따른 조건부 철군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자랑스럽지 못했던 20년 전쟁을 어떻게든 끝낸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 자체는 평가할 대목이다. 국내정치 후폭풍과 아프간 인권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미국이 모든 국제 현안을 책임지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 그럴 만한 역량도 이제는 없다.

이번 아프간 사태는 미국 당파정치의 실패가 외교 망신을 불러온 사례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희망 일변도 사고는 정치 지도자가 피해야 하는 외교 원칙이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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