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선 복원, 김정은이 먼저 요청?… 국정원·통일부 '불협화음', 왜

입력
2021.08.05 04:30

지난해 7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박지원(왼쪽) 국정원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왕태석 선임기자

‘남과 북, 누가 먼저 요청했느냐.’ 남북 대화 재개의 발판을 마련한 통신선 복원 문제를 놓고 국가정보원과 통일부가 때 아닌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발단은 3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지원 국정원장의 발언이었다. 박 원장은 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먼저 요청해 지난달 27일 통신선이 복구됐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약 8시간 뒤 “통신선 복원은 어느 일방이 먼저 요청한 것이 아니라 양측이 서로 합의한 결과”라는 입장을 냈다. 사실상 박 원장의 발언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통일부가 국정원 보고와 관련해 반대를 넘어 공식 반응을 보인 것 자체가 극히 드문 일이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정보위 특성상 회의 직후 여야 간사의 ‘입’을 통해 몇 가지만 공개될 정도로 민감한 내용이 많아서다.

①혹시 모를 北 반발 의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4~2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제1차 조선인민군 지휘관 정치일꾼 강습회를 주재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통일부의 이례적 행보는 우선 북한 반발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이 애걸복걸해 통신선이 재가동됐다는 식의 과정 설명은 북한을 자극할 게 뻔하다. 게다가 이날 국정원 보고에는 북한이 북미대화 재개 조건으로 고급 양주와 양복 등 사치품을 요구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김 위원장의 심기를 충분히 거스를 만한 사안이다.

통신선 복구로 모처럼 만들어진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살려야 하는 통일부로선 어떻게든 진화에 나설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 여기에 이달 예정된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과 관련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경고성 담화를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가 대남 비난 입장이 나오는 것도 부담스럽다.

②靑 지시로 총대 멘 통일부?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4회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일각에선 청와대 개입설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작은 부처’에 해당하는 통일부가 힘이 막강한 국정원에 공개 반기를 들기 어려운 구조인 탓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동력을 살려야 하는 건 임기 말 청와대에 더 절박한 문제다.

실제 청와대도 박 원장의 발언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4일 “남북 합의 결과를 두고 요청 주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건 외교적 결례로 쉽지 않다”며 “이번 합의는 한쪽이 주도적으로 제안했다기보다 양측이 충분히 협의한 결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그간 직간접적으로 북측에 통신선 재가동을 요구해온 만큼, 이 문제를 누가 먼저 꺼냈는지는 무의미한 측면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직접 통신선 복원 필요성을 언급했었다.

③통일부와 국정원 기싸움?

지난해 7월 27일 열린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열린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하태경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뉴스1

이번 파동을 통일부와 국정원의 신경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이 ‘본업’인 대북정보 수집을 넘어 ‘플레이어’로 나서려 욕심을 부린다는 것이다.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도 전례와 다르게 국회가 아닌 국정원이 자발적으로 요청해 열렸다.

더구나 이 자리에서 박 원장은 “남북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한미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해 야당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회의 직후 “정책부서인 통일부가 한미훈련과 관련해 입장을 냈는데, 굳이 정보기관장이 나서서 말하는 게 과연 적절하냐”면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이해가 안 간다”고 비판했다.

정승임 기자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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