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내년엔 만나지 맙시다

입력
2021.08.05 04:30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5월 강원 춘천시 강원도의회 앞에서 열린 레고랜드 컨벤션센터 부지 매입안 통과 저지 기자회견에 소를 몰고 참석한 농민이 건립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내거나 돈 문제를 일으키고 막말이 주특기였던 이들이 수두룩했다. 화려한 경력 뒤에 어두운 과거를 교묘히 숨겨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옛일뿐 아니라 이들의 미래도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바른 생각을 가졌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지난해 4월 모 지역에 출마한 국회의원 선거 후보들이 딱 이런 사람들이었다. 뻔뻔하게 손바닥으로 허물을 가리고 나선 그들에게 표를 주기 싫었다.

이런 이들이 신입사원이나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 응했다면 선택받을 수 있었을까.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이들이 여전히 금배지를 달고 있으니 정치판에서 인신공격과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할 때 혀를 차는 사람은 있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정치인이 강물에 빠지면 물이 더러워지기 전에 빨리 꺼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는 그들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지방의회와 지자체는 더 심각하다.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으로 칭송되기는커녕, 난장판이라 부르는 이들이 더 많다. 관광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해외출장 중 가이드를 때려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가 하면, 민의의 전당이란 의회에서 "나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느냐"는 낯 뜨거운 발언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우리 지방의회를 점하고 있다. 강원도의 한 군의원은 술을 먹다 지인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내리쳐 동네 망신을 제대로 시켰다.

앞서 5월 최문순 강원지사가 제안한 국제컨벤션센터가 경제성 없다고 안건을 부결시켰던 강원도의회는 불과 한 달 만에 결론을 뒤집어 지방의회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는 식이었다. '팔았던 땅을 2년 뒤 도민 혈세를 들여 5배로 되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다수의 횡포를 넘지 못했다. 이들에게 '거수기'란 별명이 붙은 덴 이유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선 안 되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간판이나 유력 정치인과의 줄 하나 잡고 있으면 생존하는 곳이 정치판이다.

이처럼 정화 능력을 상실한 정치판에 젊은 야당 대표가 '공천 자격시험'을 제시하고 나섰다. 얼마나 달라질까 싶지만, 그래도 한번 희망을 걸어보자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수준 낮은 정치인을 직접 경험했다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시험을 통한 단순경쟁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순 없겠으나 검증은 필요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를 내놓는 게 정당의 의무라면,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겠다는 그 시험을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도 없겠다. 국민 의식수준을 정치권이 따라 오지 못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악을 걸러내는 일에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 여야 모두 국민에게 공천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때도 됐다.

참신하고 창의적인 정치 모델을 기대하는 국민의 기대는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낙천·낙선 운동이 더 커지길 바라는 국민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함량이 떨어지는 후보들을 걸러낼 네트워크를 촘촘히 엮어 작동시키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지금부터 일찌감치 그들에게 레드카드를 내밀자고 말한다. 다음 선거시즌이 닥치기 전, 그들로부터 우리의 소중한 민생을 지켜낼 방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다.

박은성 전국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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