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야'의 메인보컬 그녀, 지금은 혁명의 노래 부른다

입력
2021.08.04 17:18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마그리드 아르노 역 김연지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주인공 마그리드 아르노 역을 맡은 배우 김연지는 "가수로서의 경력 덕분에 배우 경험이 많지 않은데도 첫 작품부터 주요 역할을 맡게 됐다"며 "주어진 기회에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2006년 데뷔한 씨야는 호소력 짙은 노래로 팬덤을 구축한 여성 그룹이었다. 5년 만에 그룹은 해체됐지만, 여전히 그 시절 감성을 추억하며 씨야의 곡을 듣는 팬들이 적잖다. 멤버 중에서도 메인보컬로서 독보적 가창력을 자랑했던 가수 김연지(35)의 존재감이 공고하다. 가슴 울컥한 노래들을 불러왔기에 김연지에게는 일찍부터 뮤지컬 데뷔 요청이 쏟아졌다.

하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고, 연기에 대한 부담도 커 고민 끝에 재작년이 돼서야 "때가 됐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데뷔작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혁명을 주도하는 여성 마그리드 아르노 역할을 맡았다. 지난달 13일 재개막한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가수로서는 이미 검증받았지만 뮤지컬 배우로서는 새내기. 그래서 이 배역을 따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최근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난 김연지는 "마치 수능을 보는 고3 수험생처럼 전투적으로 연기 레슨을 받으면서 준비했지만, 2019년 1차 오디션 때는 떨어졌다"면서 "정말 가까스로 2차 오디션 때 합격해서 무대에 올랐다"고 털어놨다. 김연지가 맡은 마그리드 아르노는 빈민가 출신이지만 의식이 깨어 있는 혁명가다. 마리 앙투아네트로 상징되는 프랑스 왕권에 대항하고, 끝내 체제 전복까지 이끌어 내며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쟁취한다. 왕비만큼 비중이 높은 주인공이다.

가수 겸 뮤지컬 배우 김연지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뮤지컬에 집중하느라 최근에는 방송 출연을 못 하고 있다"면서 "공연장에 오셔서 배우로서의 모습을 봐주시면 기쁠 것 같다"고 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이 역할을 위해 김연지는 수많은 역사 서적과 자료를 연구하며 공을 들였다. 그는 "비록 역사에 없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사료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서 "공부할수록 연기의 빈틈이 채워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극에서 아르노는 주체적이고 행동파다. 김연지는 "행동하기 전까지 많은 생각을 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라서 아르노와 정반대 성격이지만 정의관 자체는 닮은 점이 많아 계속 친해지고 있다"고 했다.

극에서 아르노는 입체적 인물이기도 하다. 왕비를 증오했지만 인간적인 면을 이해하게 되고, 그 누구보다 혁명에 앞장섰으나 혁명 세력의 부조리를 보면서 회의감에 빠진다. 김연지는 "아르노는 수많은 민중을 모아 왕궁으로 쳐들어갈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인 동시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성에 연민을 느끼며 큰 감정 변화를 겪는 캐릭터"라며 "초보 배우 입장에선 연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연지의 연기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장면에서 김연지가 흘리는 눈물은 극의 긴장감과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김연지는 "아르노는 왕비가 죽기 직전 따뜻하게 손을 잡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감하는데, 극을 통틀어 가장 슬픈 장면"이라면서 "왕비를 동정함으로써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지만 용기를 내서 용서를 비는 아르노의 매력이 드러난다"고 했다. 몰입감 넘치는 연기 덕분에 김연지는 2019년 데뷔와 함께 공연 포털사이트의 관객 투표로 결정되는 신인상(스테이지톡 오디언스 초이스 어워즈·SACA)을 받았다.

김연지(가운데)가 마그리드 아르노 역으로 출연 중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10월 3일까지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그래도 김연지의 진가가 드러나는 분야는 역시 노래다. 아르노가 혁명을 다짐하며 부르는 넘버 '더는 참지 않아'는 폭발적 성량과 감정 표현으로 객석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김연지는 "곡목 자체가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뜻하는데, 과거에는 당연했던 불공평한 세상이 뒤바뀌는 신호탄"이라며 "코로나19로 답답한 현시점에 들어도 속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무대 위 김연지도 피할 수 없었던 고민이다. "저도 아르노처럼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각자 잘하는 것이 있잖아요?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정의로운 사회라고 믿어요. 저의 길은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묵묵히 걸어가야죠."

김연지는 지난해 뮤지컬 '모차르트!'에서도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베버 역을 맡는 등 작품 활동의 폭을 늘려나가고 있다. 가수로서 음반 활동도 병행하겠지만 당분간은 뮤지컬에 조금 더 집중할 계획이다. 김연지는 "'아이다' '레미제라블' '지킬 앤 하이드' 등 출연해 보고 싶은 작품이 많지만 '위키드'의 초록 마녀 엘파바 역할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면서 "가수 겸 뮤지컬 배우로서의 길을 개척한 옥주현 선배가 롤모델"이라고 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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