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운사모' 회장 "상혁이가 거수경례 할 때 뭉클했죠"

입력
2021.08.04 15:15
스포츠 유망주 돕는 '운사모' 이건표 회장
"꿈, 포기하지 마" 십시일반 선수들 지원
사브르 금 오상욱도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난 2013년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 장학생으로 선정돼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는 이건표씨(왼쪽)와 장학생인 펜싱 오상욱, 육상 우상혁(왼쪽 세 번째부터). 이건표씨 제공

지난 1일 오후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선이 열린 올림픽 스타디움. 2m39㎝에 도전한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이 마지막 시기에 아깝게 실패한 뒤 거수경례를 하자, TV로 경기를 지켜본 이건표(69) 운동을 사랑하는 모임(운사모) 회장은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아깝게 4위로 메달획득엔 실패했지만 상혁이가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자기 기록을 4㎝나 경신할 정도로 큰 일을 해냈다"며 "주눅들지 않고 관중석에 박수를 유도하는 등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제자의 선전에 박수를 보냈다.

이 회장은 13년 전 스포츠 지도자들과 함께 대전에서 운사모를 만들어 가정이 넉넉지 않은 선수들을 지원한 '키다리 아저씨'다.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이후 24년 만에 높이뛰기 결선에 올라 한국신기록(2m35㎝)을 넘은 우상혁도 그의 도움으로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이 1일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선에서 2m39 바에 최종실패한 뒤 거수경례로 마무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지난달 28일 도쿄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에 금메달을 안긴 오상욱(25·성남시청)도 운사모 장학생이다.

이튿날 금의환향한 오상욱은 이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동안 선생님께서 도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3년 뒤 파리에서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 회장은 "비교적 편안했던 결승과 달리 독일과의 준결승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조마조마했던 것 같다"며 "상욱이가 세계랭킹 1위답게 경기를 잘 마무리해줬다"고 승리를 축하했다.

체육교사였던 그가 유망주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하던 2000년대초의 일. 지인들과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유망주에게 유능한 코치를 소개시켜 주는가 하면, 태극마크를 달 때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게 주위의 얘기다. "20년 전만 해도 운동화조차 살 돈이 없어 운동을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유망주가 많았죠. 학생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게 조금이라도 도와주자는 생각에 지인 4명과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같은 선한 마음이 지역주민과 체육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운사모 회원은 현재 470명이 넘는다. 오상욱과 우상혁 등 지금까지 체육 유망주 54명이 운사모의 지원을 받았다. 이들에게 지급한 장학금은 3억5,000만 원에 이른다. 회원들이 매달 1만원의 정성을 모아 제2, 제3의 오상욱과 우상혁이 되기를 바라는 유망주들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28일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대한민국 대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한국 오상욱이 금메달을 확정짓는 마지막 공격을 성공시킨 후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일흔을 바라보는 노신사는 아직도 스포츠 현장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재능을 가진 유망주들이 꿈을 접는 일이 없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하루빨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종식돼 경기장과 훈련장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 회장은 "우리가 보기에는 작은 금액의 후원금이라도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도 유망주를 돕는 일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운사모 이건표(가운데) 회장과 장학생들이 지난 2018년 대전 한 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장학금 전달식에서 나란히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운사모 제공


대전=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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