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 프레임 벗어나려면

입력
2021.08.06 04:30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1년 10월 30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알칼라 광장을 가득 메운 양을 양치기가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다 아는 얘기에 상상 더하기. 평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다,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양치기 소년은 마을 회관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처절한 반성을 한다. "장난 삼아 한 거짓말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지 몰랐다"며, 그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때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다소 누그러들었다. 소년이 마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몇 마리 양을 사 다시 산 중턱으로 올라가려 할 때는 "잘해보라"며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며칠 뒤 또 늑대가 나타나 그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이전과 다르게 사람들은 몽둥이를 들고 와 늑대를 쫓아낸다.

지난주 정부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집 사지 말라"는 경고를 했을 때 다수 국민은 정부를 이솝우화 속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에 빗대 비판했다. 비판의 배경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양치기 소년과 정부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양치기는 재미를 위해 거짓말을 일부러 했지만, 정부는 정책 효과를 지나치게 자신했던 것으로 고의성은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잘못된 확신이 더 큰 피해를 몰고 왔다. 오죽하면 정부 말을 믿고 집을 안 샀다가, 전셋집에서도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는 한 40대 가장은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느냐"며 부동산 정책 담당자를 처벌해 달라는 글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렸을까.

정부가 국민적 원성을 산 담화를 추진한 배경에는 '집값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걸 국민에게 알려주기 위한 '선한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담화를 했더라도, 그 전에 부동산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정부가 무엇을 잘못 판단했는지 등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반성이 선행돼야 했다. 국민 피해에 대한 정부의 마음이 담긴 진정한 사과도 필요했다. 담화에는 "주택가격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송구하다"는 형식적인 사과 외에, 정부 정책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장황한 설명만 담겨 있었다. 담화가 국민의 마음을 달래기보다 화만 돋게 한 이유다.

만약 거듭된 잘못으로 신뢰를 잃은 친구가, 진솔한 사과도 없이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 근데 이번엔 내 말 진짜 믿어봐"라고 한다면, 그 말을 들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대다수 사람은 그 친구와의 관계를 끊고 싶어 할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안 보면 그만인 '친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정부 말을 믿지 않다가, 집값이 폭락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정부 예상이 이번에도 틀린다면, 재산상 손해야 없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또 거짓말을 하게 된 정부를 계속 봐야 하는 국민 불안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솝 우화에 상상을 더한 이야기지만,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처절한 반성을 한 양치기 소년의 모습을 우리 정부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런 반성과 사과가 있다면 국민도 마을 사람들처럼 다시 잘해 보라며 정부를 격려하지 않을까.

홍남기 부총리는 최근 열린 기재부 확대간부 회의에서 "정부 정책에 대해 사실과 다른 지적에 대해서는 바르게 알리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역시 그 거짓말 좋아하는 양치기가 그렇게 반성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상이었다.

민재용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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