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접종’ 꺼내든 선진국… "백신 불평등 가속화" 비판 높아진다

입력
2021.08.02 21: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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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내달부터 3200만명 부스터샷 접종
미국 '필요하다' 무게, 일본도 긍정 검토
부국 '백신 싹쓸이'에 불평등 논란 커져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의 한 보건소에서 부스터샷을 접종하고 있다. 텔아비브=AFP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의 한 보건소에서 부스터샷을 접종하고 있다. 텔아비브=AFP 연합뉴스

선진국들이 결국 백신 3차 접종, 이른바 ‘부스터샷’(추가접종) 카드를 속속 꺼내 들고 있다. 이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국민들에게 한 번 더 주사를 맞혀 또 하나의 ‘안전판’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월등히 강한 델타 변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그러나 지구촌에선 아직 단 한 차례의 백신도 맞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접종률이 높은 ‘부국(富國)’들이 추가 접종에까지 나서면서 ‘백신 불평등 논란’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방송 등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해 말~올해 초 일찌감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한 국가들은 이제 3차 백신 접종 단계에 진입할 채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성인 72%가 백신 1·2차 접종을 마친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다음 달 6일부터 50대 이상과 면역 취약자 3,200만 명을 대상으로 부스터샷 접종을 시작한다. 12월 초까진 이를 끝내는 게 목표다. 항체 형성 기간(2주)을 거쳐 크리스마스 연휴쯤엔 효력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 백신은 화이자나 모더나 등의 제품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텔레그래프는 “부스터샷 접종에선 아스트라제네카(AZ) 비율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정부는 1·2차 접종에선 자국 제약사인 AZ가 개발한 백신을 주로 이용했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교차접종이 오히려 효과가 클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참고, 과거와는 다른 백신을 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도 내달부터 고령층과 면역력이 약한 이들을 대상으로 부스터샷 우선 접종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DW는 “아직 백신위원회(STIKO)의 공식 승인이 나지 않았으나, 옌스 스판 독일 보건장관이 2일 주정부 16곳의 보건장관들과 만나 이 같은 방침을 승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과 스페인 역시 추가 접종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후생노동성이 3차 접종을 위해 내년 초 모더나 백신 5,000만 회분을 추가 공급받는 계약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간 추가 접종에 회의적이었던 미국 방역당국 또한 최근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지난달 30일 세계 최초로 60세 이상에 3차 접종을 하기 시작했다.

28일 세네갈 다카르에서 한 시민이 백신을 맞고 있다. 다카르=AP 연합뉴스

28일 세네갈 다카르에서 한 시민이 백신을 맞고 있다. 다카르=AP 연합뉴스

의료계에선 부스터샷의 면역 증진 효과를 두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그럼에도 ‘백신 선도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발 빠르게 움직인 건 델타 변이가 각국에서 지배종으로 자리 잡은 탓이다. 최근 미국 내 감염 사례 중 델타 변이 비중은 83%다. 영국과 독일에서도 신규 확진 10건 중 7건 이상이다. 백신을 맞고도 감염되는 ‘돌파 감염’ 사례도 늘고 있다. 백신 접종자들도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판단에서 ‘면역 갑옷’을 추가하기로 한 셈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은 백신 확보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의 이런 행보는 백신 이기주의, 심지어는 ‘탐욕’에 가깝다는 이유다. 국제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전 세계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인구 비율은 14.7% 수준에 그쳤다.

이마저도 국민 절반 이상에 백신을 맞힌 선진국들이 평균값을 끌어올린 결과다.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는 1회 접종률조차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부룬디와 중남미 아이티 등은 지난달 말에야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만일 선진국들이 추가 접종 목적으로 ‘백신 싹쓸이’에 나설 경우, 이러한 백신 빈국(貧國)들의 처지는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달 선진국의 부스터샷을 언급하며 “백신 불평등이 기괴할 정도”라고 꼬집기도 했다.

한편에선 부스터샷 접종이 감염병 종식을 더 늦출 거란 분석도 나온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에서 더 위험한 변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선진국들의 추가 접종 움직임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끝내려는 노력을 좌절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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