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만원 받고 해임, 누군 수백만원 줘도 무죄

입력
2021.08.02 19:00
25면

편집자주

판결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판결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판결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주목해야 할 판결들과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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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은 2005년 해운대 부근에서 신호위반을 한 운전자(22세)를 발견하고 단속을 하려고 정지시켰다. 경찰관은 운전자에게 “신호위반은 벌금 6만 원이고 벌점은 15점”이라고 했고, 운전자는 “출근하는 길인데 봐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그냥은 안 되지요”라며 면허증을 제시받아 확인한 다음 돌려주면서, “담뱃값으로 만 원짜리 하나 신분증 밑에 넣어주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운전자는 급히 1만 원짜리 지폐 1장을 접어 면허증과 함께 건네주자 경찰관은 돈을 받으면서, “이렇게 주면 안 되고 몇 번 접어 보이지 않게 주어야 한다”고 조언까지 해줬다. 그 차량의 동승자는 신고를 하려고 경찰관의 이름과 타고 있던 오토바이 번호를 휴대폰에 입력시켰다. 그 모습을 본 경찰관은 “신고해 보았자 나는 가볍게 처리되고 신고자는 경찰서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범칙금까지 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어야겠다. 오늘 점심 잘 먹겠다”라고 말했다. 그 후 경찰관은 직무와 관련한 금품을 받았다는 등의 사유로 징계에 회부되어 해임처분을 받았다.

부산고등법원은 원고(경찰관)에 대한 해임처분은 지나치게 무겁다고 승소판결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6년 이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비록 원고가 받은 돈이 1만 원에 불과해 큰 금액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경찰공무원의 금품수수행위에 대하여 엄격한 징계를 가하지 아니할 경우 경찰공무원들이 교통법규 위반행위에 대하여 공평하고 엄정한 단속을 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일반 국민, 함께 근무하는 경찰관들에게 법 적용의 공평성과 경찰공무원의 청렴의무에 대한 불신을 배양하게 될 것이라서 원고에 대한 해임처분은 적법하다고 했다.

반면 서울중앙지검장은 2017년 자신이 본부장이었던 ‘국정농단 사건 특별수사본부’ 간부 7명과 검찰국장, 검찰과장, 형사기획과장 등 법무부 검찰국 간부 3명이 참석한 만찬을 주재했다. 그는 그때 검찰과장, 형사기획과장에게 격려금으로 100만 원씩이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네고, 1인당 9만5,000원의 만찬 비용도 결제했다. 그 일로 서울중앙지검장은 청탁금지법상 “누구든지 공직자에게 1회에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재판의 쟁점은 청탁금지법상 허용되는 '상급 공직자 등이 위로·격려·포상 등의 목적으로 하급 공직자 등에게 제공하는 금품 등'에 해당하느냐 여부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상급 공직자는 하급 공직자와 직무상 명령·복종하는 관계여야 하고, 같은 기관 소속 공직자 사이여야 한다고 유권해석했다. 이에 따르면 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사들은 서로 다른 기관 소속이고, 명령·복종관계도 아니라서 법 위반에 해당된다.

그러나 피고인은 1심에서 대법원까지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상급 공직자 등’이란 금품 등 제공의 상대방보다 높은 직급이나 계급의 사람이면 되고, 금품 등 제공자와 그 상대방이 직무상 명령·복종이나 지휘·감독관계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결국 높은 직급의 공직자가 소속 기관을 달리하는 하급 공직자에게 금품을 주어도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판결이다. 공직자들이 금품을 받고도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고 무죄판결이 났던 것을 방지하고자 청탁금지법을 제정했지만, 여전히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특권층이 존재한다. 대법원은 1만 원을 받은 경찰관에 대해서는 엄격한 청렴의무를 요구하면서도 수백만 원을 건네준 검사장에게는 매우 관대하였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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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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