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측에 '교황 방북' 물밑 제안... "北 검토 중"

입력
2021.08.02 04: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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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선 복원 과정에서 교황 방북 건도 논의
"北, 진지하게 받아들여"... 공식 접수는 안 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4일 바티칸 사도궁 집무실에서 주일 삼종기도를 집례하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4일 바티칸 사도궁 집무실에서 주일 삼종기도를 집례하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남북이 통신선 복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 여부도 의제에 포함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교황 방북을 추진하자는 남측 제안에 북측은 검토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소식통은 1일 “최근 남북 물밑 대화에서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며 “우리가 먼저 북측에 제의했다”고 밝혔다. 통신선 복원을 성사시킨 양측의 소통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이 소식통은 “북측도 (교황 방북 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이해득실을 따지며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남북은 지난달 27일 14개월 동안 끊겼던 판문점 연락채널과 군 통신선을 재가동하는 데 전격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는 올해 4월부터 친서로 관계 개선 방안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고, 서신 교환 전후 정보기관을 통한 남북 대화도 재개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북측은 남측의 교황 방북 제안을 ‘공식 접수’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결심이 아직 서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소식통은 “교황의 방북 의지는 확고하다”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 북한이 망설이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문제를 놓고 이미 우리 정부와 바티칸 사이의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르토 파롤린 추기경은 지난달 9일 교황청을 찾은 박병석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초청장이 오길 바란다”며 “교황께서 (북한에) 가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도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부임을 위해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 직후 “교황 방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도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인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대주교를 따로 만나 교황 방북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지난달 “교황이 결장 협착증 수술을 받은 뒤 순조롭게 회복 중”이라며 “9월 순방 예정지인 헝가리, 슬로바키아 외에 북한에 갈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 교황이 오는 것이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 일단 교황 방북은 교착 상태의 북미대화를 자극하는 마중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북한으로선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인권 탄압’ 공세를 완화하는 동시에 김 위원장의 국제무대 복귀를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종교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사업 역시 탄력을 받게 된다.

반면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주의 속성상 교황 방북은 체제 유지 측면에서 여전한 부담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최고 지도자와 교황의 만남을 주민들에게 공개하는 데 따른 여러 영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인권 문제로 서방국가들의 비판에 직면한 우방 중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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