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 '딜레마'…1·2금융권 조이자, 갈 곳 잃은 저신용자

입력
2021.08.01 18: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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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이어 2금융권도 대출 규제 강화 예고
가계부채 제어할수록 저신용자 대출 어려워져
문 대통령, 저신용자 위한 대출 확대 지시
"가계부채 급증 배경, 집값 잡는 게 근본 처방"

서울의 한 은행 대출창구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은행 대출창구 모습. 뉴스1

정부가 1금융권에 이어 2금융권에서도 본격적으로 '대출 조이기'에 나서자, 저신용자의 제도권 대출 통로가 점점 막히고 있다.

경제 뇌관인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한 조치가 금융 취약계층을 제도권 밖으로 내모는 부작용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대출 절벽에 내몰린 저소득·저신용자를 위해 부랴부랴 서민 정책금융 상품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규제 느슨한 2금융권에 몰린 대출…당국 연일 '구두 경고'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저축은행에 △신규 대출액·건수 △고소득 신용대출 비중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높은 차주 비중 등 가계부채 관련 통계를 5일까지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금감원이 가계부채 증가세가 가파른 저축은행을 집중 모니터링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이번 점검은 "2금융권 대출 규제 강화는 7, 8월 수치를 지켜보면서 결정하겠다"고 한 은성수 금융위원장 발언(7월 28일)의 후속 조치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1금융권에 대한 차주별 DSR 40% 도입을 전후로 규제가 느슨한 카드사,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2금융권 대출이 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위는 하반기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로 제시한 3~4%를 달성하려면 2금융권에서 불붙은 대출 과열을 식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 2금융권 가계대출은 전년 말보다 21조7,000억 원 증가했다. 전년 말 대비 4조2,000억 원 감소했던 지난해 상반기와 크게 대비된다. 반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폭은 올해 상반기(41조6,000억 원)나 지난해 상반기(40조7,000억 원)나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생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생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금융당국의 강력한 경고에 2금융권은 △대출 심사 강화 △우대금리 인하 △대출 한도 축소 등 자체적으로 가계부채 관리에 들어갔다. 문제는 가계부채를 엄격하게 제어할수록 2금융권을 주로 찾는 저신용자가 돈 빌릴 곳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2금융권이 기존에 1금융권을 이용하다 밀려난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안정적인 영업을 하고 저신용자는 외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출 절벽 내몰린 저신용자…文 "정책 상품 확대하라"

지난달부터 24%에서 20%로 낮아진 법정 최고금리는 저신용자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이다. 20%가 넘는 고금리를 감수하고라도 2금융권을 이용하려는 저신용자 대출이 막힐 수밖에 없어서다. 한 2금융권 관계자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이어 2금융권이 대출을 조이면 저신용자 대출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저신용자를 위한 대책 수립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저신용자·저소득층을 위한 서민 정책금융 상품 확대를 금융당국에 지시했다. 하지만 2금융권이 저신용자 대출을 줄이는 현재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문 대통령 주문은 반쪽짜리 정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대출 규제 등 금융 정책은 저신용자를 불법 사금융으로 내모는 구조"라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한 배경인 부동산 가격을 잡는 게 근본적인 처방인데 이와 관련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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