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가 진격을 시작했다... 도쿄는 안개에 휩싸이고

입력
2021.07.31 10:00
16면

<47> 넷플릭스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는 마니아뿐 아니라 고질라를 잘 모르는 초심자 사이에서도 흥미롭고 기발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는 마니아뿐 아니라 고질라를 잘 모르는 초심자 사이에서도 흥미롭고 기발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일본을 대표하는 괴수 '고지라'는 태평양을 건너, 이제는 할리우드의 괴수 '고질라'로 거듭나고 있다. 1998년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는 맹수처럼 재빠른 고질라를 등장시켜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지만, 2016년 괴수물에 정통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연출한 '고질라'가 호평을 받으며 '몬스터버스'의 시작을 알렸다. '몬스터버스'는 이후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와 '고질라 VS. 콩'으로 이어진다.

1954년작 일본의 '고지라'는 미국에서 '고질라, 괴수의 왕(Godzilla: King of Monsters!)'이라는 제목으로 재편집판을 개봉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 고질라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인지도 있는 괴수가 됐다. 일본의 '고지라' 시리즈는 2016년 만들어진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 고질라'를 포함해 29편이 만들어졌다.

고질라는 핵실험의 영향으로 고대 생명체가 깨어난 것으로 설정돼 있다. 일본은 지진, 화산, 태풍 등 자연재해가 심각해 재해를 일종의 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고질라는 핵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오만을 벌하기 위해 나타난 파괴신이다. 자연재해가 그렇듯이 고질라에게 악의 같은 것은 없다. 존재 자체가 인간을 위협할 뿐이다. 다만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고질라는 점점 지구의 수호신이 되어간다. 인간을 절멸시키려는 괴수나 외계인에 맞서 싸운 후, 유유히 은신처로 사라진다. 할리우드의 고질라도 비슷한 패턴으로 가고 있다.


2030년 붉은 먼지와 함께 괴수들이 나타난다. 넷플릭스 제공

2030년 붉은 먼지와 함께 괴수들이 나타난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는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은 과거 미국에서 만들어진 적이 있고, 일본에서는 2017년부터 3부작 '고질라: 괴수행성', '고질라: 결전기동증식도시', '고질라: 행성포식자'를 제작했지만 졸작이었다. 괴수물도 아니고, SF로서도 난삽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올해 제작된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는 호평을 받고 있다. 과거 일본 고질라 영화들의 캐릭터와 장면들을 한껏 오마주하여 기존 마니아들이 만족했고, 새로운 설정으로 만들어진 독자적인 스토리는 고질라를 잘 모르는 초심자가 봤을 때도 흥미롭고 기발하다.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의 시대는 2030년. 갑자기 '홍진(붉은 먼지)'과 함께 괴수들이 나타난다. 마을 축제를 습격한 시조새 같은 모양의 괴수는 라돈이라고 불린다. 이후 만다, 안기라스 등 여러 유형의 괴수들이 나타난다. 괴수들은 대체 어디서 왔고, 왜 나타난 것일까.

시조새 같은 모양의 괴수 라돈이 마을 축제를 습격한다. 넷플릭스 제공

시조새 같은 모양의 괴수 라돈이 마을 축제를 습격한다. 넷플릭스 제공


괴수 만다. 넷플릭스 제공

괴수 만다. 넷플릭스 제공


괴수 안기라스. 넷플릭스 제공

괴수 안기라스. 넷플릭스 제공

'오오타키 팩토리'는 전기, 전자, 기계에 관한 모든 작업을 하는 작은 공장이다. 소장인 오오타키 고로는 언젠가 나타날 외계의 적과 싸우기 위해 대형 로봇 '제트 재규어'를 만들고 있는, 이상한 노인. 오오타키 팩토리의 엔지니어 아리카와 윤은 언덕 위의 오래된 저택에서 이상현상이 있다고 해 조사에 나선다. 신비생물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카미노 메이는 정체가 불분명한 회사 '미사키오쿠'의 의뢰로, 수상한 신호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윤과 메이가 포착한 신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도의 옛 노래다.

같은 신호를 듣고 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메이와 윤은 메신저로 알고 있는 정보를 교환한다. 윤이 만든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는 인공지능(AI)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오타키팩토리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AI는 '페로2'라는 인공지능이 되어, 메이의 컴퓨터에 있는 파일들을 분석하고 정리한 논문을 발표한다. 메이의 논문은 '시바공동사업체'라는 거대 기업의 주목을 받아, 신호는 물론 속속 나타나는 괴수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을 하게 된다.


천재 연구가 메이와 엔지니어 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호를 함께 포착하고, 괴수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을 하게 된다. 넷플릭스 제공

천재 연구가 메이와 엔지니어 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호를 함께 포착하고, 괴수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을 하게 된다. 넷플릭스 제공

메이가 전체적인 틀을 이해하고 분석하여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면, 윤은 제트 재규어와 함께 괴수들과 싸우면서 구체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처음에는 고로가 탑승하여 제트 재규어를 움직이지만, 윤이 만든 AI 융을 인스톨하여 제트 재규어는 자체적으로 진화한다. 제트 재규어는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에서 고질라보다 매력적인 캐릭터다. 처음에는 전투 기능을 가진 '탈 것'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진화해 인간과 대화하며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자아를 가진 존재가 된다. 독자적인 판단으로 계획을 세워 괴수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을 넘어 자신의 몸, 감각에 대해 성찰하는 제트 재규어를 보면 생명의 애잔함을 느끼게 된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 과연 생명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의 모든 감각 역시 전기적 자극에 불과할 수 있는데.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의 시나리오는 2012년 아쿠다가와상, 2014년 일본SF대상을 수상한 엔조 도가 썼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IT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엔조 도는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를 괴수물을 넘어 과학적 사실과 법칙에 무게를 두는 하드SF로 확장시켰다. 고질라를 비롯한 괴수들은 고차원의 세계에서 넘어왔다. 인간이 존재하는 3차원은 고차원의 물질을 인식할 수 없고, 기껏해야 그림자를 보고 있을 뿐이다. 홍진 역시 고차원의 물질이 투영된 그림자이며, 이것이 진화하면 특이점에 도달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 즉 고질라의 존재 자체가 인류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것. 이런 스토리를 엔조 도는 엄청난 정보와 논리를 구사하며 전개한다. 양자역학과 다중우주와 초계산기 등을 거론하며, 아시히라 박사가 던져놓은 수수께끼를 메이와 윤이 어떻게 풀어내고 새로운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지,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보여준다.


전투 기능을 가진 '탈 것'에서 AI를 탑재한 후 진화를 거듭하는 제트 재규어는 괴수들과 싸운다. 넷플릭스 제공

전투 기능을 가진 '탈 것'에서 AI를 탑재한 후 진화를 거듭하는 제트 재규어는 괴수들과 싸운다. 넷플릭스 제공

물론 어렵다. 하지만 메이와 윤 등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의 말을 대략만 이해해도 충분히 흥미롭다.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원리 정도만 알고 있으면 따라갈 수 있다. 메이와 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확정된 미래인, 눈앞의 파국을 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답은 이미 존재한다. 다중우주에서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그렇다면 파국을 막는 일도 결국 일어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파국을 멈추는 답을 찾는 것뿐이다. 그 답은 결국 나타날 것이다.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 1화가 시작되면 내레이션이 깔린다. "이건 우리가 좀 더 똑똑해져서 많은 걸 모르게 되는 이야기"라고.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더 많은 수수께끼가 펼쳐진다. 한 발 앞을 볼 수 있지만, 알게 되지만, 이유를 모르는 상황이다. AI인 페로2와 융은 무한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개성이 주어지면서 서로 다른 답을 추구한다. 끝없이 확장된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인간의 미래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다른 세계에 접속하지 않는 한, 우리가 아는 유일한 세계는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의 유일한 아쉬움은 고질라가 조금 나온다는 점이다. 시즌1의 최고 액션은 제트 재규어의 몫이었다. 하지만 쿠키 영상에 메카고질라가 등장한다. 시즌1에서 탁월한 세계관을 보여주었으니, 시즌2에서 고질라의 호쾌한 전투신을 고대한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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