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보낸 신음소리… 음성 채팅앱 이용 성범죄 급증

입력
2021.07.26 04:2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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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수치심과 혐오감 느낄 내용 전송
코로나 후 대면 성범죄↓ 비대면은↑
"죄의식 없이 익명에 숨어 범죄" 지적

몰래카메라 불법촬영물 범죄. 게티이미지뱅크

몰래카메라 불법촬영물 범죄. 게티이미지뱅크

20대 남성 A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기를 보여주겠다" "성관계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가 경찰에 입건돼 조사받고 지난 21일 검찰에 넘겨졌다.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죄. 법조계에서 흔히 '통매음'이라 줄여 부르는 이 죄는 보통 채팅이나 댓글에서 발생하지만, A씨는 특이하게 목소리를 전송했다가 수신자에게 고발당했다. 10대 B군도 "여자 성기를 보여달라"는 음성 메시지를 여러 사람에게 전송한 혐의로 최근 경찰 조사를 받았다.

온라인상에서 음성을 통한 음란 행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음성 채팅앱에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주는 발언을 녹음한 뒤 앱을 설치한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전송하는 수법이다. 전문가들은 익명 기반의 앱 운영 방식, 이용자들의 낮은 죄의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비대면 소통 증가와 맞물린 점을 범행 증가 요인으로 꼽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 성희롱 육성 메시지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과거 통신매체이용음란죄가 주로 유튜브·인터넷방송 댓글이나 온라인게임 채팅에서 주로 발생했다면, 최근엔 음성 기반 채팅앱 이용 과정에서 급증하는 추세다. 박성철 법무법인 승운 대표변호사는 "최근 상담 10건 중 3, 4건은 '통매음' 관련 상담이고, 그중 음성 채팅앱에서 빚어진 사건 상담이 특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범법자들이 '음란한 목소리'를 퍼뜨리는 도구는 음성 기반 랜덤채팅 앱이다. 앱 이용자는 육성 메시지를 녹음해 상대에게 발송할 수 있는데, '친구' 관계가 아니더라도 무작위로 선정된 이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A, B씨가 이용했던 국내 K사의 앱은 '메아리' 기능을 이용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10초 안팎의 음성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이 앱은 원래 남녀 간 만남을 주선하는 데이팅 앱으로 설계된 터라,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내키면 발신자에게 답장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원치 않는 메시지를 사전에 차단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K사 앱의 경우는 가입 단계에서 사진, 나이, 성별 등 신상정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음란 메시지를 받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실제 기자가 K사 앱에 가입했더니 10분도 안 돼 신음소리나 "나랑 OO할 사람" "OO 잘하는 사람" 등 성적 내용이 담긴 음성 메시지가 쏟아졌다.

코로나19 탓? 성범죄 비대면화 추세 뚜렷

전문가들은 음성 채팅앱 성범죄가 급증하는 이유로 범법 행위라는 인식이 약하다는 점을 먼저 꼽는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 형량은 2년 이상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법조문상 처벌 수위는 낮지 않다. 김현귀 변호사는 "가해자 대부분이 처벌받을 수 있는 성범죄라는 인식 없이 메시지를 보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앱에서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착각도 범행을 부추긴다. 옥민석 변호사는 "가입 당시 신상정보를 입력하지 않았더라도, 고소·고발될 경우 음성 메시지와 닉네임, 시간만으로도 보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를 주요 변수로 꼽는 견해도 적지 않다. 박성철 변호사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젊은 층에서 음성으로 소통하는 앱을 사용하는 비중이 전반적으로 늘어났고, 이 때문에 관련 성범죄도 증가하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성범죄의 비대면화'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집계한 '성범죄 발생·검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통신매체이용음란행위 발생건수는 1,231건으로 2019년 같은 기간(891건) 대비 340건(38.1%) 늘었다. 반면 강간·강제추행 건수는 같은 기간 1만6,514건에서 1만5,648건으로 5% 이상 감소했다. 연구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부활동이 제한되면서 대면보다는 온라인상 성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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