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을 기다렸는데…마지막까지 부상 트라우마에 날개 꺾인 ‘도마의 신’ 양학선

입력
2021.07.25 17:04
수정
2021.07.25 17:0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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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예선 9위로 8명이 겨루는 결선 진출 실패
예비 후보 1위지만 출전 가능성은 희박
양학선 "트라우마에 지고 말았다"
2012 런던올림픽 후 고질적인 햄스트링 부상 악령

남자 기계체조 국가대표 양학선이 24일 일본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예선전에서 도마 연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자 기계체조 국가대표 양학선이 24일 일본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예선전에서 도마 연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자부하던 ‘도마의 신’ 양학선(29)도 부상 트라우마는 어쩌지 못했다. 마지막 올림픽이 될 무대에서마저 햄스트링 부상 우려에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예선 탈락했다.

양학선은 2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단체전 예선 도마 종목에서 1, 2차 시기 평균 14.366점에 그쳐 9위로 8명이 겨루는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8위로 막차를 탄 터키 선수와 점수 차는 불과 0.1점이었다.

결선 진출자 중 코로나19에 걸리거나 부상 등으로 기권한 선수가 나오면 결선 예비 선수 1번인 양학선이 출전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양학선은 선수촌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후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는 양학선.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후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는 양학선.

2012년 런던 대회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며 ‘도마의 신’으로 등극했던 양학선은 부상 우려에 위축됐다. 올림픽을 앞두고 자신의 이름을 딴 난도 6.0점짜리 ‘양학선1’ 기술을 준비했지만 예선 당일 몸 상태에 확신이 없어 경기 직전 5.6점짜리 ‘여2’로 바꿨다. 연기에 들어가서도 뜀틀까지 폭발적인 주력을 내지 못해 회전수가 부족했다. 양학선은 “결국 트라우마에 지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부상 악령이 양학선을 괴롭힌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발판 삼아 수년간 세계 무대를 호령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지독할 정도로 햄스트링 부상을 달고 살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앞두고는 고질적인 햄스트링 통증에 아킬레스건까지 끊어져 출전이 불발됐다.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선 1위로 부활을 알리는 듯했지만 햄스트링 통증이 재발해 결선 직전 기권했다. 이때가 소속팀 수원시청에 은퇴 얘기를 꺼낼 만큼 양학선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양학선은 과거 인터뷰에서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계속 다치고, 또 다치고 하다 보니 지쳤다”며 “2017년 세계선수권 결선을 관중석에서 처음 지켜보는데, 그 착잡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후 모든 걸 내려놓고 체조를 떠나려고 했었다”라고 고백했다.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당시 부상으로 잔여 경기 출전을 포기한 양학선. 연합뉴스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당시 부상으로 잔여 경기 출전을 포기한 양학선. 연합뉴스

하지만 양학선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90%가 ‘양학선은 끝났다’고 할 때 자신을 믿어준 10%를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 결과 2019년 3월 국제체조연맹(FIG) 월드컵 대회 도마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 세계선수권대회 도마 예선 1위를 차지하고, 결선에서 착지 실수로 8위에 그쳤지만 부상 없이 세계 정상급 기량을 회복한 것에 의미를 뒀다.

다만 부상 트라우마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상 여파로 후배들에게 밀렸다. 다행히 대한체조협회의 추천선수로 도쿄올림픽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실전에서도 결국 트라우마를 깨지 못하고 아쉬움 속에 연기를 마쳤다.

도마의 신 양학선(오른쪽)과 한국 체조의 차세대 주자 류성현이 2019년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도마의 신 양학선(오른쪽)과 한국 체조의 차세대 주자 류성현이 2019년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학선이 이루지 못한 9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은 이제 후배들 몫으로 남았다. 신재환(23)은 예선에서 도마 1위로 결선에 진출했고, 양학선이 한국 체조의 차세대 간판으로 점찍은 류성현(19)은 마루에서 3위로 결선에 올랐다.

신형욱 대표팀 감독은 “양학선이 햄스트링 통증과 부상 재발 우려에도 열심히 훈련해왔지만 부족한 파워를 극복하지 못했다”면서 아쉬워한 뒤 “신재환과 류성현의 기술이 훌륭해 결선에서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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