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 황제'의 쓸쓸한 퇴장…'노 골드' 위기 태권도

입력
2021.07.25 15:46
수정
2021.07.26 14:4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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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일본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태권도 68㎏급 16강 경기. 연장 승부 끝에 우즈베키스탄의 라시토프에게 패배한 이대훈이 아쉬워하고 있다. 지바=연합뉴스

25일 일본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태권도 68㎏급 16강 경기. 연장 승부 끝에 우즈베키스탄의 라시토프에게 패배한 이대훈이 아쉬워하고 있다. 지바=연합뉴스

25일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태권도 남자 68㎏급 16강전. 15-4로 크게 앞서 있다가 연장전까지 끌려간 이대훈(29·대전시청)은 울루그벡 라시토프(우즈베키스탄)에게 17초 만에 몸통 킥 골든포인트를 허용한 뒤 헤드기어를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5년 전 리우올림픽에선 8강에서 패하고도 상대 손을 번쩍 들어 올려줬던 '매너남'도 이번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대훈은 패자부활전에서도 세이두 포파나(말리)를 11-9로, 미르하셈 호세이니(이란)를 30-21로 연파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자오 자오솨이(중국)에게 15-17로 패한 그는 고개를 떨군 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퇴장했다. 힘겹게 입을 연 이대훈은 "메달 하나 들고 간다고 얘기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 가족 뿐 아니라 모든 국민께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이제 태권도 선수 이대훈의 경기는 모두 끝이다"라고 말했다. 예고했던 대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대훈에게 올림픽은 그만큼 간절했다. 그는 세계선수권에서 세 차례 우승, 아시안게임 3연패, 월드그랑프리 5연패, 세계태권도연맹(WT) 올해의 선수 4차례 수상에 빛나는 태권도 '월드스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십수 년째 달고도 유독 올림픽에서만 정상에 서지 못했다. 첫 올림픽이었던 2012년 런던 대회 58㎏급에서 은메달, 2016 리우에선 동메달에 그쳤고, 이번엔 빈 손으로 돌아가게 됐다.일찌감치 그는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 같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끝내 올림픽 금메달도,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우승)도 이루지 못했다. 지도자의 길을 예고한 이대훈은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이대훈과 장준(21·한국체대)을 앞세워 대회 초반 한국 선수단의 메달 레이스 선봉에 설 것으로 기대됐던 태권도도 되레 '노 골드' 위기에 놓였다. 세계랭킹 1위 장준은 첫날 준결승에서 패하며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소희를 누르고 도쿄로 간 여자 49㎏급의 세계랭킹 3위 심재영(26ㆍ춘천시청)도 8강에서 야마다 미유(일본)을 만나 이렇다 할 공격조차 해 보지 못하고 패했다. 여자 57㎏급의 이아름(29ㆍ고양시청)은 16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김소희 한국가스공사 코치는 25일 "다른 나라 선수들은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오픈 대회 등을 뛰었는데 우리는 1년이 넘도록 실전 무대 벽이 막힌 영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 “(장)준이는 준결승에서 심적 부담이 컸던 것 같고, (심)재영이는 일본 선수가 올라올 거라 예상하지 못해 당황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역대 최다인 6명이 출전한 태권도는 이번에 2~3개의 금메달을 노렸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후보들이 줄줄이 실패하면서 목표 달성은 어려워졌다. 우리나라는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에서 리우 대회까지 총 13개의 금메달(은2ㆍ동5)을 쓸어 담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출전 선수 네 명이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그러나 런던에서는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리우에선 금메달 2개와 동메달 3개를 따내며 명예 회복에 성공했지만, 대회를 거듭할수록 각국 선수들의 기량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종주국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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