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은의 야구민국] 포철고 야구부, 해체 위기 언제까지?

입력
2021.07.23 21:15
수정
2021.07.24 00:11

2020년 존폐 논란에 선수 유출 등 전력 유출 심각?
김수관 감독 "포기하면 다 죽는다 생각으로 버텼다"
2021 전국체전 경북대표 선발, 대구고 격파 등 기염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팀 멤버들이 포항 야구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상은 기자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팀 멤버들이 포항 야구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상은 기자


'강철 도시' 포항은 축구 도시다. 스타들이 즐비하다. 그렇다고 축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구팬들의 입장에서는 '야구 도시'라는 훈장도 함께 달아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포항을 대표하는 야구 스타들을 놓고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바람이다. 한국 야구사의 대사건으로 남아 있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쿠바전에서 한국팀의 안방마님으로 활약했던 강민호가 바로 포항제철고(전 포항제철공고) 야구부 출신이다. 직업계 특성화고인 포항제철공고에선 더 이상 야구부를 운영할 수 없게돼 일반계 자사고인 포항제철고로 옮겼다. 철벽마운드로 삼성의 전성기를 이끈 권오준, 권혁, 오승환 역시 포항이 배출한 ‘강철 팔’들이다. 이중 권혁은 국가대표팀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올림픽, 아시안 게임, 한일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했었다.

경북, 전반적으로 야구 인프라 부족

숱한 스타들을 배출한 포항에서 지난해에 귀를 의심케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포철고 야구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인구 50만의 공업도시, 그것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기업 중의 하나인 포스코에서 출연한 포스코 재단이 운영하는 야구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야구팬들은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소식을 접한 야구인들은 "포철고 야구부가 너무 아깝다"고 입을 모았다. 포철고 야구부는 1981년 포철공고에서 창단한 이후 2013년 포철공고가 마이스터고로 전환하면서 같은 재단에 있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인 포항제철고로 이관됐다. 창단 이후 1983년 한해에 청룡기, 봉황대기, 전국체전에서 준우승을 세 차례나 차지했다.

김수관 감독 체제 이후 2018년 73회 청룡기전국야구대회에서 36년만에 준우승을 가져왔고, 그해 협회장기 3위를 기록했고, 2016년 고교 주말리그 전반기 우승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우승했고, 2019년과 2020년에는 후반기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2015년 청룡기 전국대회 3위와 협회장기 전국대회 3위 성적을 냈다. 또한 2020년 코로나의 여파로 전국체전이 열리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포철고 외 팀이 전국체전 경북 대표를 가져간 것은 2015년이 유일하다. 이해에 경주고가 경북대표 타이들을 꿰찼다. 그만큼 포철고는 지역에서는 압도적인 강자다.

포철고 출신 스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제2의 장효조'로 불렸던 정성룡, 최해명(전 삼성), 유명선(현 계명대 감독), 강민호(삼성라이온즈), 최준석(전 두산), 권혁(전 삼성), 신동주(현 도개중 감독), 김인철(현 청주고 감독) 등의 스타플레이어 및 야구인을 배출했다. 포철고가 한국 야구에 기여한 부분을 생각했을 때 존폐 논란 자체가 명성에 치명적인 흠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50만 공업도시에 있는 단 하나의 야구팀이 없어진다면?

사실 지난해 포철고 야구팀의 존폐 논란이 벌어지기 전,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오갔었다. ‘인구 50만의 도시에서 고교 야구팀 1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정상인가’하는 이야기였다. 야구부가 하나밖에 없는 것도 논의의 주제가 될 상황에서 갑자기 그나마 하나 있는 팀마저 존폐위기에 몰렸다는 소식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경북에서 아마 스포츠에 대한 홀대는 포항만의 일은 아니다. 김천의 경우 경북 스포츠 중심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성공적인 종합스포츠단지 조성에 힘입어 프로배구단과 축구단을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제대로 된 야구장이 하나도 없다. 초중고 야구부는 제로다. 야구부라고는 김천시 리틀 야구부가 유일하다. 리틀 야구부가 사용하고 있는 강변 구장 역시 장마 때마다 침수를 각오해야 하는 등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구미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인구 42만에 정규시합 훈련이 가능한 구장이 없다. 초등학교 야구부(도산초등학교)가 있긴 하지만 실내 연습장 및 감독실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구미 도개고등학교 야구부의 경우 인근 군위군까지 가서 연습을 한다. 그나마 야간 조명이 없어서 해가 짧아지는 시기에는 훈련량 부족을 걱정하는 처지다.

가장 최악의 케이스가 포항, 그리고 포철고 야구부다. 지난해에 학부형들이 야구부 존속을 위해 투쟁하고 아마 야구 관계자와 야구팬들은 물론 동문, 나아가 시민사회가 들끓은 바람에 7월10일 ‘야구부 해체 추진 전면 백지화’ 뉴스가 떴으나 실상을 놓고 보면 폐지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니다. 재단에서 지원을 대폭 축소했고, 과거엔 ‘포철고 덕분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실력만 있으면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지원이 좋았지만 현재는 대부분 학부형들이 비용을 대고 있다. 장기적으로 취미 야구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다. 메이저리그와 KBO 등에서 활약하며 한국 야구를 이끌어갈 스타 플레이어의 탄생은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클럽화해서 취미로 하든가, 학부모들이 전적으로 재정적 부담을 책임져야 하는 형국이다.

'강철 도시' 포항이 품고 있는 단 하나의 야구팀이 소멸한다면 야구계를 넘어 사회 전체에 빅뉴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비단 야구협회뿐 아니라 포항시와 경북교육청, 포항교육청이 수수방관하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얼마 전 포철고 야구팀이 처한 현실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뉴스가 들려왔다. 전 포스코가 2021년 2분기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는 소식이었다. 2분기 별도 영업이익이 1조8,000억원 수준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포스코는 매년 출연금 250억을 재단에 소속된 14개 학교로 분배해 오고 있었다. 포스코는 경영 상황과 상관없이 출연금 상당 부분을 줄인 상태이며 앞으로 축소 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황은 나아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현재 포철고는 자사고인 만큼 일반 학교처럼 관련기관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상황을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야구부를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이 유일한 대안처럼 보인다. 학교 측에서는 이를 위해 교육청과 협의했으나 아직 나서는 학교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포철고와 같은 재단 산하에 있으면서 야구부를 창단했던 포철공고로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마이스터 고교의 특성상 규정 변경 없이는 다시 돌아가기가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학교끼리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관계 기관이 두 팔을 걷고 나서야 할 것이지만, 아직 뚜렷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수관 감독 "지난해 오기로 버텼다"

현재 포철고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건 자녀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학부형들의 각고의 노력도 있겠지만, 김수관 감독의 강철 같은 의지와 야구를 향한 열망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김 감독이 포철고에 대해 가지는 애정과 집념은 학부모들보다 더 강렬하다.

그의 프로필에서 포철고 야구부가 가진 의미는 너무도 크다. 그를 아는 야구인 대부분이 포철고에서 야구 인생의 한 정점을 찍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 감독은 93년 경북고가 청룡기 우승을 가져갈 때 부동의 4번으로 활약하는 등 고교 3학년 한해 때린 3점 홈런만 8개로 아마 야구계의 한대화로 통했다. 당시 경북고 라인업은 3번 강동우, 4번 김수관, 5번 이승엽으로 이어졌다. 역대 고교 야구 최강의 라인업 중의 하나였다. 아마 야구 시절, 김수관은 팀의 승패를 결정짓는 활약에서는 이승엽 선수보다는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았고, 프로에 입단할 때도 역대 최강 내야진을 보유했던 삼성에서 최우선적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고교나 입단 초기와 비교해 프로에서의 활약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선수 생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시작했던 만큼 지도자로서의 삶은 또 다른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았다. 프로 시절 이상으로 인고의 길을 걸었다. 2007년 7월 모교 경북고 코치를 그만두고 대구를 떠나 포항으로 온 뒤 박정환, 오대석, 백운석, 김영직 등 4명의 감독을 보좌했다. 그 사이 포철고에서 4번이나 경질됐다가 다시 복귀했다. 울산 공고에서 잠깐 감독 대행을 한 것을 제외하면 포철고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프로에서 못다 이룬 꿈을 제자들을 통해 꽃피우고 싶은 열망, 오랫동안 몸담은 야구팀에 대한 애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난 한해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김 감독은 "지난해엔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내가 주저앉으면 나중에 무슨 낯으로 야구계 선후배들을 볼 수 있겠냐는 생각에 오기로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포기하면 다 죽는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재단 측의 입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운동부에 재정적인 부담이 가중되고, 포스코 계열에서 축구나 체조와 달리 야구는 그룹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쉬운 것은 야구의 위상에 대한 인식이다. 김 감독은 "야구가 국민 스포츠이자, 축구의 손흥민 못잖게 메이저리그에서 국위를 선양하는 야구선수들이 많다는 부분을 주목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김수관 포철고 감독.

김수관 포철고 감독.


안팎의 어려움 속에서도 전국체전 경북 대표 타이틀 획득

포철고는 지난해 존폐 논란으로 선수 구성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포철고 야구부 해체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수한 선수 스카웃이 힘들어졌고, 불안을 느낀 기존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2학년의 경우 주전 5명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학부모들의 재정적 부담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야구부는 존속되었지만 학부모에게 모든 재정적 부담이 전가되었습니다.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졸업할 때까지 야구를 시켜야만 하는 입장입니다.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상황이 말이 아니지만, 최근 포철고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야구계의 격언을 처절하게 증명하고 있다. '강철 야구팀'으로 불러도 될 만큼 전통을 이어가려는 강인한 정신력이 돋보인다. 올해 전국체전 경북 대표 결정전에서 또 우승을 차지했고, 주말리그에서는 황금사자기 준 우승팀 대구고를 물리치는 작은 기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포철고 야구팀이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집념어린 플레이로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리 없는 외침이나 다름없다. 이제 기성세대와 야구계, 시민사회가 이 어린 미래의 야구 영웅들에게 답을 내놓아야 할 차례다.


김도영 포수. 투수 리드 및 블러킹이 강점이다. 박상은 기자

김도영 포수. 투수 리드 및 블러킹이 강점이다. 박상은 기자


박유빈 유격수. 공수주(공격 수비 주루) 3박자를 겸비했다. 박상은 기자

박유빈 유격수. 공수주(공격 수비 주루) 3박자를 겸비했다. 박상은 기자


최윤서 투수. 팀의 에이스다. 최고 구속 145km를 자랑한다. 박상은 기자

최윤서 투수. 팀의 에이스다. 최고 구속 145km를 자랑한다. 박상은 기자


신하늘 2루수. 공수주를 겸비한 팀 공격의 첨병이다. 박상은 기자

신하늘 2루수. 공수주를 겸비한 팀 공격의 첨병이다. 박상은 기자


손민준 3루수. 팀의 장타를 책임지고 있다. 강한 파워가 매력인 선수다. 박상은 기자

손민준 3루수. 팀의 장타를 책임지고 있다. 강한 파워가 매력인 선수다. 박상은 기자


박상은 기자 subutai1176@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