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악의 뱉지 말고 삼키기

입력
2021.07.23 19:0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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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내 친구가 자기 SNS에 자기가 쓴 우스운 글을 사진 형태로 올린 적이 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사진은 이상한 출처를 달거나 혹은 아예 출처도 표기하지 않은 채로 인터넷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우스운 ‘짤’들을 캐내 바이럴 마케팅의 제물로 써먹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거기까지야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사진에 사람들이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댓글과 멘션들이 예상 이상으로 악의적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사진에 쓰인 문장 몇 개만으로 내 친구라는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려 들었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 시를 단어 단위로 분해하던 기억을 되살린 것인지. 친구의 글씨체를 통해서 성격의 단점을 설명하려 드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사람과 결혼하면 안 된다고 논하고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열등감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 몹시 투명하게 드러났다.

친구는 이 일화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면서 웃었다. 하지만 한때 그가 느꼈을 불편함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친구는 그저 재밌는 사진을 하나 올렸다는 이유로 명백한 사이버불링의 대상이 된 것이다.

급격하게 발달한 정보통신 기술 덕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상세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 편하게 보통 사람들에게 조리돌림을 가한다. 내가 어릴 적에도 매스미디어가 한 일반인을 공공의 심판대 위에 올리곤 했지만, SNS와 1인 미디어가 활성화된 지금은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 누구든 한순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끈적한 악의의 대상이 되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악해졌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체적인 존재이고, 그냥 한순간 마음속에 들러붙는 악의를 무심코 내뱉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악의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잘 전달될 뿐인 게 문제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이 한순간에 수백 수천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글쎄, 그건 뇌가 처리할 수 없는 규모의 악의 같다. 우리 사람들은 불과 1만 년 전에 소규모의 부족 사회에서 살았는데, 그 시절에서 얼마나 진화가 됐겠나.

장기적으로는 너무 쉽게 악의가 노출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전에 한 명 한 명이 마음속에서 자연히 나타나는 악의를 뱉지 말고 되삼키려고 노력할 순 없을까. 이미 공격받고 있는 사람한테 굳이 한마디를 더 얹어서 가혹해질 필요가 있을까. 이건 나 스스로한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내 책을 즐겁게 읽은 독자 분이 내게 선물을 전해 주었다. 엽서 한 장만 받아도 가보로 보관할 생각이었다. 내 집에 도착한 것은 내 가장 긍정적인 상상을 뛰어넘었다. 가지런한 필체로 쓰인 편지와 인형, 생필품들이 포장재 대신 묶은 과자 봉투들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달리 때로 좋은 일은 발생하는 것이었다.

나도 이런 산뜻한 선의를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었다. 이런 선의를 베푸는 건 그 자체로 재능이고 단번에 따라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굳이 한마디 얹을 때 흘러나오는 그 사소하지만 찐득거리는 악의를 참을 수는 있으리라. 그렇게 더 산뜻해질 수 있다고.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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