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선 올림픽

입력
2021.07.20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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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국가대표 안창림(왼쪽)이 지난해 2월 전남 순천팔마체육관에서 연습 대련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왼쪽)이 지난해 2월 전남 순천팔마체육관에서 연습 대련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내가 지면 가족이 운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라. 제일학교(조선학교) 동창과 동포가 응원하는 것을 잊지 마라. 유도는 싸움이다. 시합(試合)이란 죽음과 만나는 것(死合い·‘시합’의 일본어 발음과 동일). 지는 것은 죽음을, 이기는 것은 삶을 의미한다. (중략) 반드시 이긴다. 식사, 수면, 모든 것이 트레이닝이다. 재주가 없으면 세 배로 노력하라.”

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에서 남자 유도 73㎏급에 출전하는 안창림 선수가 중학교 시절 쓴 ‘유도 노트’에서 발췌한 글이다. 어떤 삶을 살아 왔길래 불과 열 몇 살짜리 아이가 이렇게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된 걸까.

재일동포 3세 남자 유도 73㎏급 국가대표 안창림 선수가 중학교 때 '유도 노트'에 적은 글을 바탕으로 만든 포스터.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포스터 캡처

재일동포 3세 남자 유도 73㎏급 국가대표 안창림 선수가 중학교 때 '유도 노트'에 적은 글을 바탕으로 만든 포스터.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포스터 캡처

안 선수의 할아버지는 교토에 유학 왔다가 일본에 정착했다. 가라데 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안 선수를 어렸을 때부터 매우 엄하게 지도했다고 한다. 6세에 유도를 시작한 안 선수는 교토의 조선제1초급학교를 졸업한 후 유도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일본 중학교로 진학했다. “세 배로 노력하라”는 신념으로,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해 타이어를 허리에 감아 끌며 언덕을 오르는 등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고등학생 때는 새벽에도 방에서 웨이트 트레이닝 소리가 들려 시끄럽다는 불만이 들어와 새벽 연습 금지 규정이 생겼을 정도였다.

1980년대 스포츠 만화 주인공처럼 ‘금욕적 연습벌레’의 삶을 살아 온 그가 일찍부터 철이 든 데에는 어렸을 때부터 차별을 느끼며 살아 온 재일동포 3세라는 그의 정체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한국 유도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대학 때 전일본선수권 출전 자격이 안 되자 귀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유도선수 안창림을 알려 ‘자이니치(在日)’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선수로서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는 안 선수. 한편으론 전설적인 유도선수 기무라 마사히코를 자신의 영웅으로 여기는 안 선수 같은 ‘경계인’들이 이번 대회에서 꼭 원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면 한다. 언론도 숙적 오노 쇼헤이와의 대결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에 좀 더 주목했으면 좋겠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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