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문화재 반환... 박병선, 조창수 떠올리게 해

입력
2021.06.26 09: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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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 동안 잘 몰랐던 국외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소재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코로나19 시국, 요즘 가장 반가운 소식은 친구의 영화 추천이다. 조지 클루니와 맷 데이먼이 국외 문화재를 지키는 사람들이었다면? 클림트 그림을 환수하기 위한 소송 대리인이 라이언 레이놀즈라면?

클림트 작품에 얽힌 실화 바탕의 영화 '우먼 인 골드'

2018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해온 외규장각 의궤 중 마지막 4차 반환분 73책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해온 외규장각 의궤 중 마지막 4차 반환분 73책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우먼 인 골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주인공인 마리아가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이 작품을 반환받기 위해 8년에 걸친 소송을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유명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후원자였던 아델레를 모델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그려 모델인 그녀에게 선물한다. 아델레는 요절했고, 소유권은 남편 페르낭드에게 갔다. 그러나 페르낭드는 나치에 의해 오스트리아 정부에 그림을 모두 몰수당하고 만다. 세월이 지나 1998년 페르낭드의 조카 마리아는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가족과 추억이 담긴 그림들을 추억하게 되고, 그 그림을 찾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길고도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는 나치에게 빼앗긴 그림을 반환하는 소송 과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새로운 판례를 이끌어낸 측면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가 단순히 그림을 찾는 과정을 넘어 어떠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그 그림을 빼앗겼으며, 마리아가 왜 그림을 되찾고자 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들이 당시의 시대상과 빼앗긴 문화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17년 145년 만에 귀환한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사진은 전시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145년 만에 귀환한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사진은 전시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를 보며 우리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필자가 찾은 공통점은 바로 문화재가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영화에서는 짧은 소송으로 보여졌지만 실제 소송은 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우리 곁으로 돌아온 가장 대표적 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는 1991년 프랑스 외무부에 공문을 보낸 반환요청을 시작으로 2011년 4월에 돌아왔다. 이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서 약탈한 지 145년,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낸 지 36년, 프랑스 정부와 우리 정부가 반환 협상을 시작한 지 20년 만이다.

그러나 외규장각 의궤는 완전히 반환된 것은 아니다. 당시 문화재를 해외로 양도할 수 없도록 규정한 프랑스법에 따라 대여(5년마다 갱신)라는 실리적인 정책적 판단으로 돌아왔다. 다만 최근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과거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빼앗아온 문화재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했고, 프랑스 의회는 1892년 아보메왕궁에서 약탈해 파리 케브랑리박물관이 소장하던 동상 등 유물 26점을 반환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실현은 어렵겠지만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영화는 자막으로 이 실화의 후일담을 전한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는 마침내 마리아 알트만에게 반환되었다. △마리아는 이 작품을 1억3,500만 달러를 받고 뉴욕 노이어 미술관에 영구 전시하도록 허락했다. △그녀는 이 돈을 LA오페라단을 비롯한 많은 곳에 기부했다. △마리아의 소송대리인 랜디는 이 사건으로 번 수임료로 개인 법률회사를 차렸으며, 지금은 미술품 반환 소송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홀로코스트 기념관 빌딩을 구입했다. △마리아는 여전히 같은 집에서 살며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며 행복하게 살다가 2011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요?

영화 '우먼 인 골드' 중



나치 도난 예술품 지키기 위해 결성된 부대 이야기 다룬 '모뉴먼츠맨'

또 다른 영화인 ‘모뉴먼츠 맨’은 로버트 M. 에드셀에 의해 2009년 책으로 먼저 출간되었으며, 이 책을 기반으로 조지 클루니가 만든 영화다. 모뉴먼츠 맨(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program, MFAAㆍ기념물 미술품 기록물 전담반)으로 알려진, 1943년 연합군에 의해 결성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특별부대의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도난·파괴 위기에 놓인 인류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역사학자 프랭크는 예술품 전담부대 ‘모뉴먼츠 맨’을 결성한다. 미술관 관계자, 예술품 감정가, 건축가, 조각가, 미술품 거래상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군 기초교육만 받은 채, 나치로부터 도난 예술품 500만여 점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 한가운데로 나선다. 전쟁보다 중요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인류의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을 실감나고, 위트 있게 전달한다.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인 프랭크가 30년 뒤 손자의 손을 잡고, 벨기에 브뤼헤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 ‘브뤼헤의 성모상’을 함께 감상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2007년 대여 형식으로 돌아온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 박선미 반장 제공

2007년 대여 형식으로 돌아온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 박선미 반장 제공


실제 전쟁을 통해 많은 문화재가 약탈돼 전리품으로 반출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병인양요(1866년) 때 반출된 외규장각 의궤, 신미양요(1871년) 때 반출된 어재연 장군 수자기가 대표적이다.

수자기는 지휘관을 뜻하는 깃발로 ‘장수 수(帥)’자가 강렬하게 쓰여 있다. 미군은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광성보 진영에 걸었던 수자기를 포함한 여러 벌의 깃발과 대포 등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다. 어재연 장군 수자기는 이후 애나폴리스에 위치한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왔다. 2007년 문화재청은 수자기 반환에 대해 서신을 보냈고, 원칙적으로 반환은 불가하지만 연구 목적의 조사는 괜찮다는 박물관 측의 답을 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수자기는 우여곡절 끝에 같은 해 6월, 10년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다. 136년 만의 귀향이었다. 2017년 약속된 10년이 끝났지만 2년 단위로 재계약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2년 10월까지 수자기가 한국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미양요 150주년을 맞은 올해, 신미양요가 일어난 6월에 맞추어 강화역사박물관에서는 수자기를 전시하고 있다. 7월 4일까지로 비록 얼마 남지 않은 전시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상징하는 수자기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외 한국문화재 93점의 반환을 성사시킨 조창수 큐레이터

로즈발랑. 위키피디아 캡처

로즈발랑. 위키피디아 캡처


영화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클레어 시몬느의 실제 모델인 로즈 발랑을 꼽겠다. 실제 로즈 발랑은 당시 독일군이 약탈한 문화재를 프랑스 파리의 죄드폼미술관에 보관했을 때, 미술관에 근무하며 반출된 예술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독일군이 숨긴 프랑스 예술품을 다시 되찾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는 외규장각의 대모인 고 박병선 박사와 고 조창수 큐레이터를 떠올리게 한다. 박병선 박사는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로 잘 알려져 있지만, 조창수 큐레이터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방치돼 있던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국내에 처음 알린 고 박병선 박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방치돼 있던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국내에 처음 알린 고 박병선 박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창수 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큐레이터는 44년 동안 아시아 담당 큐레이터로 일하며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린 민속학자다. 스미소니언에 아시아 최초로 한국실을 설치한 주역이기도 하다. 그녀가 환수한 대표적인 문화재는 고종과 순종, 명성황후 옥보다. 옥을 깎아 손잡이를 용 모양으로 만든 고종옥보는 황제라는 글자가 새겨 있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 등극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987년 미국 경매에 나온 옥보를 발견한 그녀는 오랜 기간 소장자를 설득하고, 모금운동을 펼쳐 유물을 되찾은 뒤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조건 없이 기증했다. 암 선고를 받은 뒤, 4억 원의 가치가 있던 자택을 아시아 문화 발전기금으로 써 달라며 스미소니언에 기증했고, 그녀가 타계한 뒤 평생 모은 연구 자료를 유족이 서강대에 기증하기도 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튜브 채널에 가면, 재단이 그녀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자 제작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조창수 큐레이터. 박선미 반장 제공

조창수 큐레이터. 박선미 반장 제공



한국전쟁 시기 우리나라에도 모뉴먼츠 맨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있지만, 국외문화재를 공부하고 환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두가 현대판 모뉴먼츠 맨이 아닐까.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그들을 추모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국외문화재 지킴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계속 찾고 싶습니다.“

영화 '모뉴먼츠 맨' 중


박선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외문화재통합관리시스템 전담반장

박선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외문화재통합관리시스템 전담반장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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