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서부 폭염 부른 '20년 대가뭄'… 농민들 "물 달라" 시위까지

입력
2021.06.20 17: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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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부터 '최고기온 50도' 이례적 폭염
연내 콜로라도강 첫 물 부족 선언 예측도
농민·정부 간 갈등…사회·정치 문제 심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인공 호수인 오로빌호가 16일 가뭄 탓에 호수 옆면 일부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오로빌=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인공 호수인 오로빌호가 16일 가뭄 탓에 호수 옆면 일부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오로빌=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미국 서부에 사상 최악의 화재를 일으켰던 '20년간 대가뭄'이 올해는 이례적 폭염을 불렀다. 여름 초입인 6월인데도 몇몇 도시들의 최고기온은 섭씨 50도를 훌쩍 넘어섰다. 물은 물론이고, 전력 부족까지 우려되자 각 주(州)정부들은 물·에어컨 사용 제한 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물 부족에 속이 탄 농민들은 저수지 앞에서 '물 요구 시위'마저 벌이고 있으나, 뾰족한 대책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19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 미 서부 전역을 휩쓴 기록적 폭염 탓에 4,0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은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된 6월에 벌써 37.8도가 넘는 무더위를 겪고 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주(州) 사막 데스밸리에선 낮 최고 기온이 53.5도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7, 8월 한여름에 들어서면 폭염은 더 심화할 전망이다.

직접적 원인은 지난 2000년부터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가뭄이다. 지표면이 건조하면 스스로 식을 수가 없어 온도를 높이고, 더운 날씨가 다시 가뭄을 부르는 악순환 탓이다. 특히 올해 가뭄은 심각하다. 미 CNN방송은 "연말이 되면 정부가 콜로라도강을 따라 (인근 지역에) 사상 첫 '물 부족 사태'를 선언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콜로라도강은 미 서부 7개 주와 멕시코의 젖줄이다. 강 중류에 위치한 후버댐의 인공호수 미드호는 1930년 댐 건설 이후 최저 수위를 찍었다. 2000년 이후 수위는 42.7m나 낮아졌고, 저수량은 전체 수용량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인 오로빌호 관계자는 WP에 "한여름이 되기도 전에 (가뭄이) 이렇게 일찍 시작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여름에 녹아 수원이 되는 스노팩(눈덩어리로 덮인 들판)은 감소하는 반면, 기온은 계속 올라 증발량이 많아진 영향이다. 모두 지구 온도를 높인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부족한 수자원은 서부 지역 곳곳에서 농민과 정부 간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감자 농사에 필요한 물이 끊긴 오리건주 농민들과 '멸종위기 어종 보호'에 물을 쓰려는 연방 정부가 충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CNN방송은 농민들이 운하 관문 앞에서 강제로 수문을 열겠다고 위협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정치권도 물 부족 사태를 타개하고 농업을 보조할 예산 투입을 고심 중이지만, 단기 처방 수준이라는 지적이 많다.

과학자들은 탄소배출량 변화 없이는 미 서부 여름 기온이 섭씨 4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가뭄의 심각성은 세 배 이상 커지고, 화재도 연례 행사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올해도 이미 소방당국은 애리조나주에서 15건, 뉴멕시코주에선 최소 9건, 서부의 다른 주에서도 24건이 넘는 화재와 싸우고 있다. 스탠퍼드대 서부물프로그램 객원교수인 펠리시아 마커스는 "직전 여름에 피해를 입은 숲, 지하수 자원 등이 (다음 해까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년 가뭄은 더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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