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동물등록제 왜 하나 

입력
2021.06.19 14: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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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령 반려견 '랑랑이'는 동물병원의 부주의로 밖으로 나갔다 로드킬을 당한 후 3일 만에 발견됐다. 오른쪽 사진은 랑랑이 보호자가 실종 다시 랑랑이를 찾기 위해 제작한 전단지. 랑랑이 보호자 인스타그램 캡처

6개월령 반려견 '랑랑이'는 동물병원의 부주의로 밖으로 나갔다 로드킬을 당한 후 3일 만에 발견됐다. 오른쪽 사진은 랑랑이 보호자가 실종 다시 랑랑이를 찾기 위해 제작한 전단지. 랑랑이 보호자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온라인에서 논란이 된 동물 뉴스 2건이 있다. 하나는 지난달 22일 경기 남양주시 야산 입구에서 50대 여성이 개에게 공격당해 숨진 안타까운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위험한 개 기질(공격성)평가제 도입과 방치되며 길러지는 떠돌이개와 개농장 개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다른 하나는 서울 한 동물병원의 부주의로 열린 문틈 사이로 나간 뒤 로드킬을 당한 채 발견된 반려견 '랑랑이'다. 보호자는 전단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개의 실종소식을 알렸고, 이를 본 한 시민이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제공하면서 사고 3일이 지나서야 사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위 두 사건은 현행 동물등록제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양주 사고의 경우 경찰은 '책임'을 물을 개의 보호자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단서라곤 개에게 목줄이 있었던 흔적뿐이다. 인근 개농장에서 탈출했다는 의심이 들지만 농장주는 이를 부인했다. 등록이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보호자를 찾는 게 이처럼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양주 사고 인근 개농장에서 카라가 구조한 보더콜리 몸속에서 동물등록 정보가 담긴 내장칩이 발견됐다. 하지만 그 사이 원 보호자에게 연락은 가지 않았다. 카라 제공

남양주 사고 인근 개농장에서 카라가 구조한 보더콜리 몸속에서 동물등록 정보가 담긴 내장칩이 발견됐다. 하지만 그 사이 원 보호자에게 연락은 가지 않았다. 카라 제공

더 황당한 건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가 인근 개농장에서 구조한 보더콜리에게서 동물등록 정보가 담긴 내장칩을 발견한 것이다. 내장칩에는 첫 보호자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 보호자가 기르다 지인에게 준 개는 지자체 보호소를 거쳐 결국 개농장으로 들어왔는데 그 사이 보호자의 정보가 변경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내장칩은 무용지물이었다.

로드킬당한 랑랑이에게도 내장칩이 삽입되어 있었다. 사고 당시 목 보호대(넥카라)를 하고 있었고, 목줄을 찬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가의 반려견임을 알아보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보호자는 랑랑이 사체를 수거한 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동물 사체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폐기물로 처리되는데, 이 과정에서 내장칩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반려견 등록 현황. 반려견 등록비율은 38.5% 수준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제공

반려견 등록 현황. 반려견 등록비율은 38.5% 수준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제공

반려인들은 정부가 동물등록을 장려하면서 정작 이처럼 사후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분노한다. 이럴 거면 동물등록은 뭐 하러 하냐는 불만이 나올 만도 하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0년 반려동물 보호와 복지관리 실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등록된 반려견 수는 232만1,701마리, 지난해 10월 기준 추정 반려견 수가 602만 마리인 것을 감안하면 등록 비율은 38.5%다. '반려 목적'의 개는 의무등록대상이지만 경비 등 다른 목적의 개나 고양이는 이마저도 아니어서 이를 포함하면 등록 비율은 더 떨어진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0년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2명은 여전히 동물등록을 모른다고 답했다. 2004년 등록제가 시작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17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과 동물자유연대가 '유기동물 10만 시대, 동물등록제를 논하다’라는 주제로 공동 주최한 비대면 토론회의 한 장면. 이날 토론회에는 조윤주 서정대 교수, 함태성 강원대 교수, 이경구 반려동물협회 국장, 문해경 서울시 성동구 반려동물정책팀장, 김지현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장, 고은경 한국일보 기자가 참여했다. 줌 캡처

17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과 동물자유연대가 '유기동물 10만 시대, 동물등록제를 논하다’라는 주제로 공동 주최한 비대면 토론회의 한 장면. 이날 토론회에는 조윤주 서정대 교수, 함태성 강원대 교수, 이경구 반려동물협회 국장, 문해경 서울시 성동구 반려동물정책팀장, 김지현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장, 고은경 한국일보 기자가 참여했다. 줌 캡처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과 동물자유연대는 17일 '유기동물 10만 시대, 동물등록제를 논하다'를 주제로 비대면 토론회를 공동 주최해, 현행 동물등록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기자를 포함해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등록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마당개와 떠돌이개의 동물등록이 필요하다는 점 △뉴질랜드와 호주처럼 등록 갱신제를 도입하고 로드킬 시 내장칩 확인 등 사후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제안하고 의견을 나눴다.

유실,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한 동물등록제의 정착은 시급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반려인들에게 등록만 하라고 할 게 아니라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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