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라벨이 후원자에게 바친 조성

입력
2021.06.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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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감사와 축복'의 G 장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감사와 축복'의 G 장조

'감사와 축복'의 G 장조

G 장조는 G 단조와 으뜸음(Gㆍ솔)이 같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러시아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스크리아빈은 G 장조의 색깔을 각각 '골드브라운'과 '오렌지 장미색'으로 묘사했다. 바로크 시대에서는 '축복과 은총의 조성'으로 통했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작곡가들은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거나, 축복할 때 G 장조의 음표를 그리곤 했다.

1899년 피아노곡으로 작곡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악보 표지 왼쪽 위편에는 '폴리냑 부인에게(A Madame la princess E. DE POLIGNAC)'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1899년 피아노곡으로 작곡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악보 표지 왼쪽 위편에는 '폴리냑 부인에게(A Madame la princess E. DE POLIGNAC)'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지중배 지휘자(이하 지): 19세기 말 프랑스 음악사에는 중요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바로 폴리냑 공작부인이다. 부호였던 그는 당대의 음악인들을 아낌 없이 후원했다. 작곡가 라벨도 폴리냑 부인의 수혜를 입은 사람 중 하나였다. 1899년 라벨은 자신의 후원자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G 장조로 피아노곡을 썼다. 평소 루브르 박물관에서 벨라스케스 그림을 즐겨 봤던 라벨은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초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를 음악으로 표현했는데, 그 유명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다.

프랑스 작곡가 라벨에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곡의 영감을 준 벨라스케스의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 초상화(1599·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프랑스 작곡가 라벨에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곡의 영감을 준 벨라스케스의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 초상화(1599·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장재진 기자(장):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 장조 역시 프랑스 롱 티보 콩쿠르의 창시자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마르그리트 롱 여사에게 헌정된 곡이다. 다음 달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라벨의 두 곡을 연주한다.

: 앞서 바로크 시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에게는 카이저링크 백작이라는 후원자가 있었다. 바흐가 궁정 음악가가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인물이다. 그런데 카이저링크는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음악 애호가였던 백작은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바흐에게 부탁했고, 바흐는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기꺼이 곡을 썼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연주시간이 50분에 달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G 장조)이다. 다음 달 16일 KBS교향악단이 실내악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다.

지난해 2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방송인 유재석(가운데)이 하프로 베토벤의 가곡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를 연주하고 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지난해 2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방송인 유재석(가운데)이 하프로 베토벤의 가곡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를 연주하고 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고전주의 시대로 다시 돌아와 보자. G 장조로 쓰인 베토벤의 가곡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당신을 사랑합니다)'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은총을 노래했다.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있기를' '당신은 내 삶의 기쁨' 등 가사에서 잘 드러난다. 연인 사이의 정열에만 머물지 않고 숭고한 이타심이 느껴진다. 지난해 방송인 유재석이 예술의전당에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깜짝 협연하며 하프로 연주한 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 현대 대중음악에서도 G 장조엔 축복이 넘쳐나는 듯하다. 비틀스의 노래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가 대표적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도, 결국엔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가사처럼 축원의 마음이 가득하다.

지중배 지휘자.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지중배 지휘자.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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