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상폐'에 투자자 피해 확산...사태 방치했던 정부 책임론 부각

입력
2021.06.16 22: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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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넘는 투자금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투자자들, 손해배상 등 법적 대응 검토
'상폐 기준' 거래소 자율이라 회복 어려울 듯
"예견된 사태, 여태 방치했던 정부도 책임"

16일 오후 4시 50분 기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빗이 전날 상장폐지·유의종목으로 지정한 코인들의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코인빗 홈페이지 캡처

16일 오후 4시 50분 기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빗이 전날 상장폐지·유의종목으로 지정한 코인들의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코인빗 홈페이지 캡처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가 촉발한 ‘잡코인 대청소’ 움직임이 다른 거래소로 번지면서 투자자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 명분을 내세워 거래 지원 종료(상장폐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투자자들은 "어떤 이유로 상폐 결정이 내려졌는지 알 수가 없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거래소가 예고 없이 상폐 결정을 내렸더라도, 가상화폐 관련법이 전무해, 이를 처벌하거나 법적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기습 상폐에 1억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

16일 업계에 따르면, 거래소의 일방적 상장폐지·유의종목 지정으로 인한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거래대금 규모 국내 3위인 ‘코인빗’은 전날 오후 10시 기습적으로 상장 폐지(8종)와 유의 종목(28종) 지정을 공지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상장폐지가 예고된 ‘프로토’, ‘판테온’, ‘유피’는 24시간 전 대비 각각 88%, 82%, 80% 폭락한 상태다. 나머지 5개 코인도 적게는 35%부터 많게는 78%까지 급락했다.

앞서 ‘잡코인 대청소’를 촉발한 업비트에 의해 상장폐지·유의종목으로 지정된 코인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1일 업비트는 "내부 기준에 미달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총 30개 종목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상장폐지가 예고된 ‘퀴즈톡’ 등 5개 종목은 공지 전날 대비 많게는 70% 이상 폭락한 상태다.

느닷없는 상장폐지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거래소에 법적 대응까지 검토 중이다. 코인빗을 통해 1억2,000만 원을 투자했다가 98% 손실을 본 투자자 A씨는 “거래소에 전화·이메일로 항의했지만 ‘정부 방침에 따라 결정했다’는 변명만 하고 있다”며 “나 같은 투자자들을 모아서 단체로 고소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800만 원을 잃은 투자자 B씨도 “정부든, 거래소든 누군가는 이번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 보상 어려워..."정부의 갑작스런 통제가 원인"

그러나 투자자들이 법적 대응에 나선다 하더라도 뾰족한 대안은 없는 상황이다. 애초 코인의 상장부터 폐지까지의 절차가 거래소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조정희 법무법인 디코드 변호사는 “거래소의 재량권이 적절하게 행사됐는지 여부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며 “법이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가 상장폐지 기준 등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손해배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상장폐지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도 거론되지만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 시장에선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일부 거래소들의 이 같은 행태를 두고 업계 내부에서조차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100개가 넘는 코인을 무분별하게 상장한 거래소가 있는 반면 보수적으로 적게 상장시킨 거래소도 있다”며 “일부 거래소의 무책임한 행태가 업계 전체의 이미지로 비칠까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다른 거래소 관계자도 “정부는 인정하지 않지만, 가상화폐도 금융상품의 일종으로 최소한의 신뢰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무너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습 상장폐지 사태’가 예고된 사태였다고 지적한다. 사태를 방치하다 갑작스럽게 시장 통제에 나선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기흥 블록체인포럼 대표(경기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잡코인 상장폐지 논란은 지금 발생한 문제가 아닌 2017년 1차 가상화폐 붐이 일었을 때 이미 예견된 사태”라며 “정부가 여태껏 방치하다가 갑작스럽게 통제에 나서니 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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