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코로나 고아' 7만명 육박… 들끓는 정부 책임론

입력
2021.06.16 17:16
수정
2021.06.16 18:08
16면

국정조사서 부실 대응 질타… 지원책 촉구도
18세까지 월 생계비 5만여원 지급 방안 검토
코로나 확산 다시 빨라져… '3차 확산' 가능성

지난해 4월 브라질 아마조나스주 마나우스의 한 병원에서 의료 관계자들이 비닐백에 싸인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냉장 안치실로 옮기고 있다. 마나우스=AP 연합뉴스

지난해 4월 브라질 아마조나스주 마나우스의 한 병원에서 의료 관계자들이 비닐백에 싸인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냉장 안치실로 옮기고 있다. 마나우스=AP 연합뉴스

줄리아(6)와 발렌티나(3), 엘로이자(1) 자매는 브라질 상파울루주(州) 작은 도시 준디아이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26세이던 엄마가 올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아빠마저 세 자매를 버리고 3,000㎞나 떨어진 중서부 마라냥주로 떠난 뒤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공황장애 증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어린 엘로이자만 휴대폰 속 엄마 사진을 보며 희미하게 웃곤 한다. 불어난 식구에 조부모는 주머니 사정이 빠듯하지만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아드리아나 델 리오는 스페인 EFE통신에 "고통과 함께 사는 법을 신이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했다.

15일(현지시간)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줄리아 자매처럼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부모를 여읜 18세 미만 어린이·청소년은 브라질에 3만5,000가구 6만8,000여 명이나 된다는 게 정부의 파악이다. 7만 명에 육박하는 '코로나 고아'뿐 아니라 부모 대신 이들을 건사하게 된 양육자들까지 생계가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것이다.

문책은 당연하다. 국제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 집계상, 브라질은 미국에 이어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두 번째로 많다. 이날 기준 49만1,164명에 이른다. 이는 정부의 부실 대응 탓이 크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방역에도, 백신 접종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남미 축구 국가 대항전 '코파아메리카'를 부랴부랴 유치해 열고 있는 것도 코로나 사태 수습보단 과오 은폐에만 골몰한 결과라는 비난이 적지 않다. 상원 국정조사도 주로 질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남미 축구 국가 대항전인 '코파아메리카' 대회가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나 경기장 밖에 2일 "우리는 대회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백신을 원한다! 보우소나루 아웃"이라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로이터 연합뉴스

남미 축구 국가 대항전인 '코파아메리카' 대회가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나 경기장 밖에 2일 "우리는 대회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백신을 원한다! 보우소나루 아웃"이라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로이터 연합뉴스

문제는 대책이다. 지원책을 서둘러 마련하는 식으로 책임을 지라는 게 정치권의 촉구다. 기존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대상에 코로나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포함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부는 '코로나 고아'가 18세가 될 때까지 1인당 매월 240~250헤알(5만3,000~5만5,000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필요한 예산은 1억9,620만 헤알(434억4,450만 원) 정도라는 게 정부 추산이다.

다만 '코로나19 재확산'이 변수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봉쇄가 느슨해지며 진정되는 듯하던 브라질 코로나19의 확산 속도가 다시 빨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주 0.99였던 코로나19 감염재생산지수(환자 1명이 직접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이번 주 1.07로 높아졌다. 3차 확산 임박 신호라는 게 브라질 언론 해석이다. 코파아메리카 개최 강행이 재확산 시기를 앞당길 공산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이에스더 인턴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