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 200만 흥행 쏘아올린 2인 "극장은 처음엔 관심도 없었어요"

입력
2021.06.17 04:30
수정
2021.06.23 22:3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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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대행사 워터홀컴퍼니 주현 대표, 최승호 이사

올해 상반기 극장가 최고 히트 상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을 배급한 주현(왼쪽) 워터홀컴퍼니 대표와 최승호 이사가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서 흥행 뒷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진탁 인턴기자

올해 상반기 극장가 최고 히트 상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을 배급한 주현(왼쪽) 워터홀컴퍼니 대표와 최승호 이사가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서 흥행 뒷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진탁 인턴기자

올해 상반기 극장가는 처참했다. 1월은 특히 흥행 혹한기였다. 연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박스오피스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극장이 무너져도 흥행작은 나왔다. 1월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영화진흥위원회 집계 15일 기준 211만3,931명)은 상반기 극장가 최고 히트상품이다. 흥행 이변을 일으키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220만8,435명)에 이어 관객 순위 2위에 올랐다.

‘귀멸의 칼날’ 선전 뒤에는 배급사 워터홀컴퍼니가 있다. 2019년 설립돼 대표 포함 직원이 달랑 2명인 초미니 회사다. CJ ENM과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코로나19로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상반기 배급사 흥행 순위 2위를 차지하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했다. 조직으로 일군 흥행 성과는 아니었다. 주현 워터홀컴퍼니(40) 대표와 최승호(46) 배급이사가 흥행 이변을 이끌었다.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 멀티플렉스에서 두 사람을 만나 ‘귀멸의 칼날’ 흥행 뒷이야기를 들었다.

‘귀멸의 칼날’의 수입사는 에스엠지홀딩스다. 이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4편만 수입해 개봉한 영화사다. 에스엠지홀딩스는 ‘귀멸의 칼날’을 지난해 수입한 후 최 이사에게 배급 업무를 의뢰했다. 최 이사는 CGV 편성전략팀 등에서 19년을 일하다 코로나19 여파로 막 퇴직한 때였다. 소속 회사 없이 홀로 일하던 최 이사는 옛 직장 동료인 주 대표를 찾아갔다. “이런 영화 혹시 아냐”며 협업을 타진했다. ‘귀멸의 칼날’을 오래전부터 주시하고 있던 주 대표의 답은 “무조건 해야 한다”였다.

지난해 7월 개봉 작업에 들어갈 때만 해도 흥행 전망은 밝지 않았다. 멀티플렉스 체인 관계자들은 영화 제목을 듣고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에게 ‘귀멸의 칼날’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영화였다. 최 이사는 “‘어 이런 영화도 있구나’ 정도 반응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극장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일본에서 크게 흥행하며 기대가 부풀어 갔으나 ‘대박’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극장의 반응은 좀 나아졌다 해도 “뜨뜻미지근”(최 이사)이었다.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반일 정서와 불매운동 여파도 감안해야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당초 연말 개봉하려다 공개 시기를 한 차례 미뤄야 했다. 최 이사는 “극장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10만 관객만 들어도 선전이라 했는데 저는 20만, 30만 명 정도 기대했다”고 말했다. ‘귀멸의 칼날’의 흥행 가능성을 먼저 알아본 주 대표조차 관객 최대치를 “50만 명 정도”로 내다봤다. 최 이사는 “개봉일이 밀리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그제서야 흥행을 예감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은 소년 가마도 탄지로가 동료들과 함께 귀신들과 맞서 싸우며 승객을 보호하는 모습을 그렸다. 에스엠지홀딩스 제공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은 소년 가마도 탄지로가 동료들과 함께 귀신들과 맞서 싸우며 승객을 보호하는 모습을 그렸다. 에스엠지홀딩스 제공

‘귀멸의 칼날’은 개봉한 지 5개월 가까이 됐음에도 전국 상영 스크린 수가 165개(15일 기준)다. 보기 드문 장기 상영이다. 코로나19 때문에 화제작들이 개봉을 피하면서 ‘귀멸의 칼날’이 여러 스크린에서 오래 상영될 수 있어 마니아 관객의 반복 관람이 가능했다는 분석이 영화계에서 나오기도 한다. 210만 명 흥행 기록은 역설적으로 코로나19 덕을 봤다는 것. 주 대표는 “일리가 있는 지적이지만 코로나19가 없었다면 더 잘됐을 거라는 주장에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귀멸의 칼날’의 극장 매출은 203억 원가량이다. 배급 대행 수수료가 대체로 수입사 수익(극장 매출의 50%가량)의 10%인 점을 감안하면 워터홀컴퍼니가 가져갈 수익은 최대 1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주 대표와 최 이사는 ‘귀멸의 칼날’ 흥행을 행운으로 여긴다. 코로나19로 극장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지극히 드문 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최 이사는 “코로나19 때문에 영화인 모두가 흥행 예측을 할 수 없어 두려워하고 있다”며 “어떻게든 정상화 돼 제대로 영화 마케팅을 하고 개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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