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며느리 찾아와 절" 19년 만에 다시 쓴 '전원일기'

입력
2021.06.13 14:17
수정
2021.06.14 13:54
21면
구독

'전원일기 2021' 마지막 동창회
양촌리 사람들?7개월 동안 쫓아

배우 김혜자가 드라마 '전원일기'를 다시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MBC 제공

배우 김혜자가 드라마 '전원일기'를 다시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MBC 제공

"계인아." 지난 3월14일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이 양 어깨에 가방을 멘 채 편안한 옷차림으로 배우 이계인의 집을 찾았다. 한 살 터울에 MBC 배우 공채 한 기수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두 사람은 국내 최장수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를 20여 년 동안 함께 찍으며 친구처럼 지냈다. 이계인은 극에서 홀로 아들 노마를 키우는 탕아 귀동 역을, 유인촌은 김 회장(최불암)의 야무진 둘째 아들 용식을 연기했다.

22년 동안 농촌 서민의 삶을 보여줬던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 배우들. MBC 제공

22년 동안 농촌 서민의 삶을 보여줬던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 배우들. MBC 제공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귀동 역을 연기한 이계인(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 회장 둘째 아들 용식을 연기한 유인촌(오른쪽 첫 번째). MBC 제공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귀동 역을 연기한 이계인(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 회장 둘째 아들 용식을 연기한 유인촌(오른쪽 첫 번째). MBC 제공


이계인 찾아간 유인촌 전 장관

두 배우 모두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유인촌의 머리는 하얗게 셌고, 이계인의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팼다. 이계인은 13일 본보와 전화 통화에서 "(유)인촌이와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나 반가웠다"며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나니 '전원일기'에서 홀아비로 출연해 홀아버지협회 분들이 집에 찾아와서 회장을 맡아달라고 울면서 부탁한 옛 생각이 나더라"며 웃었다. 수화기 너머에선 이계인이 마당에 키운다는 개가 짖어댔다. 그는 '전원일기' 촬영지 인근에서 산다.

유인촌 이계인뿐 아니라 최불암 김혜자 등 '전원일기' 양촌리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2002년 드라마 종방 후 19년 만이다.

'전원일기' 배우들의 깜짝 재회는 MBC 특집 '다큐플렉스-전원일기 2021' 제작 일환으로 이뤄졌다. 마지막 동창회를 주제로 배우들이 '전원일기' 관련 추억을 나누고 그로 인해 바뀐 저마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자리다. 카메라는 30여 양촌리 사람들을 지난 11월부터 이달 5일까지 7개월여 쫓았다. 워낙 연로한 배우들이 많아 코로나19로 한 번에 모여 잔치를 벌일 수는 없었고, 일용이네 가족 식으로 삼삼오오 따로 만나 정을 나눴다.

배우 최불암은 20년 만에 드라마 '전원일기'를 쓴 김정수 작가를 만났다. MBC 제공

배우 최불암은 20년 만에 드라마 '전원일기'를 쓴 김정수 작가를 만났다. MBC 제공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마당에 곡물을 말리고 있는 김 회장 부인(왼쪽 김혜자)과 그의 어머니(정애란). MBC 제공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마당에 곡물을 말리고 있는 김 회장 부인(왼쪽 김혜자)과 그의 어머니(정애란). MBC 제공


"김혜자 모친상 당한 뒤 쓴 이야기"

마지막 동창회 장소는 특별했다.

김 회장 댁 세 며느리였던 고두심 박순천 조하나는 지난 3월 인천 연안부두를 찾았다. 김 회장의 어머니로 나왔던 원로 배우 정애란의 유해가 뿌려진 곳이다. 전화로 만난 박순천은 "정애란 선생님이 '전원일기' 찍을 때만 해도 성당에 다녀 해양장을 한 줄 모르고 있었다"며 "푸른 바다 부표 주위에 잠든 선생님을 떠올리며 녹화 전 틈틈이 며느리들 손톱 검사를 하던 모습이 생각나더라"고 말했다.

1985년 방송된 '전원일기'에서 은심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 당시엔 조명 기술이 좋지 않아 밤에 촬영해 김혜자의 얼굴이 제대로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이날 촬영은 양촌리에 처음으로 전화가 들어온 날을 주제로 이뤄졌다. MBC 방송 캡처

1985년 방송된 '전원일기'에서 은심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 당시엔 조명 기술이 좋지 않아 밤에 촬영해 김혜자의 얼굴이 제대로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이날 촬영은 양촌리에 처음으로 전화가 들어온 날을 주제로 이뤄졌다. MBC 방송 캡처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부터 2002년 12월 29일까지 22년 동안 방송됐다. 그런 '전원일기'는 한국 서민사의 민낯이었다.

1985년 양촌리 김 회장 집에 처음으로 전화가 들어와 동네가 들썩이던 첫날, 은심(김혜자)은 식구들이 잠든 밤에 홀로 전화기를 들어 돌아가신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왼손 손톱 하나가 짜개지신 우리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 막내딸 은심이가 꼭 한번 보고 싶다고요." 이 장면은 방송 후 많은 시청자를 울렸고, '전원일기'에 출연한 배우들도 방송 30년이 지난 이 사모곡을 가슴에 콕 박아두고 있다. 이 전화 신을 쓴 김정수 작가는 "대본 쓰기 얼마 전에 김혜자씨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왔다"며 "김혜자씨 마음을 다독이고 어머니를 떠나보낸 배우에게 헌정하고 싶어 쓴 장면"이라고 했다.

드라마 '전원일기' 김 회장 댁 세 며느리를 연기했던 조하나(왼쪽 첫 번째부터), 고두심, 박순천이 만나 옛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MBC 방송 캡처

드라마 '전원일기' 김 회장 댁 세 며느리를 연기했던 조하나(왼쪽 첫 번째부터), 고두심, 박순천이 만나 옛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MBC 방송 캡처


'전원일기' 촬영날 MBC 공중전화에 배우들 몰린 이유

드라마에서 부모님 관련 에피소드를 찍을 때면 방송사 공중전화 부스 앞엔 늘 긴 줄이 늘어섰다. 촬영하다 부모님 생각이 나 "엄마, 밥 먹었어?"라고 안부를 묻던 배우들의 행렬이었다.

배우뿐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전원일기'는 삶의 교과서였다. 박순천은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산다는 한 어머니께서 정말 말 그대로 푸른 눈의 외국인 며느리와 함께 촬영장을 찾아왔다"며 "'전원일기'로 우리 풍습을 보여줬고, 며느리가 이 드라마로 한국 문화를 배웠다며 그 외국인 며느리가 당시 우리 부모님(최불암 김혜자)에게 절을 해 감동이었다"고 옛 얘기를 들려줬다.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금동이 역을 맡았던 임호(왼쪽 첫 번째)와 그의 아내로 나왔던 조하나 그리고 영남이를 연기한 남성진(오른쪽 두 번째)과 복길이 역의 김지영(오른쪽 첫 번째)이 만나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MBC 방송 캡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금동이 역을 맡았던 임호(왼쪽 첫 번째)와 그의 아내로 나왔던 조하나 그리고 영남이를 연기한 남성진(오른쪽 두 번째)과 복길이 역의 김지영(오른쪽 첫 번째)이 만나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MBC 방송 캡처

'전원일기는' 복고 유행을 타고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온라인에서 옛 방송을 다시 찾아보며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용이 아내였던 김혜정은 "'전원일기'에선 마을 사람들이 이웃집 숟가락 몇 개 있는지까지 알고 지냈다"며 "그 따뜻한 시절이 그리워 요즘 젊은 세대들이 '전원일기'를 다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혜정은 어느덧 30대 후반이 돼 아홉 살 딸을 키우는 복길이 아역(노영숙)을 이번에 만났다.

'전원일기 2021'은 18일 오후 8시50분에 첫 방송된다. 4주 동안 매주 금요일 같은 시간대에 시청자를 찾아간다.

양승준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