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운전은 우리도 싫다”는 배달 라이더들 ... 해법은 그저 단속뿐?

입력
2021.06.15 09:10
12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2만 원 이상 주문·결제하면 외식비 1만 원을 돌려주는 할인 지원 시행 첫날인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배달업체 배달 오토바이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2만 원 이상 주문·결제하면 외식비 1만 원을 돌려주는 할인 지원 시행 첫날인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배달업체 배달 오토바이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 일대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모는 이모(45)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배달 건을 받았다. 10시 15분, 매장으로 이동해 갓 만든 음식을 받아들자 앱은 역삼동에서 신사동까지 3㎞쯤 되는 거리를 '14분 안에 번쩍 배달하라'고 명령했다.

주말 이틀 쉰 뒤 그야말로 차량들이 쏟아져 나오는 월요일 오전,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이 명령은 배달 앱 회사가 자랑하는 인공지능(AI)이 산출한 결과다. 14분 뒤 이씨의 오토바이는 여전히 도로 위에 있었다. 15분부터는 1분 단위로 빨간 숫자가 스마트폰 화면에 떴다. 앱을 통해 6번이나 채근을 당하고서야 이씨는 겨우 배달을 끝냈다.

'빠른 배달' 업체는 칭찬받고 배달원은 비난받고

이씨뿐 아니라 배달원들은 배달 앱 회사의 AI를 의심한다. 서울 강남처럼 배달 업체들 간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배달 시간을 의도적으로 줄여 결과적으로 라이더들의 무법 탈법 곡예운전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물론 배달 앱 회사들은 "그런 일은 절대 없다, 다만 AI 작동방식은 영업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말로만 대응한다. 이씨는 "배달업체는 '빠른 배달'로 칭찬받지만, 배달원은 난폭 운전으로 비난만 받는다"고 토로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코로나19 시대까지 겹치면서 도로 위, 골목길엔 온통 배달 오토바이들이다. 빠듯한 시간에 맞추려니 과속, 신호위반, 곡예운전은 예사다. 시민들 눈초리가 곱진 않지만, 배달원들은 "신호 다 지켜가며 배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토로한다.

지난 9일 오토바이 배달원 노동조합인 라이더 유니온이 공개한 유튜브 생방송 '신호를 지키면서 배달했더니 생긴 일'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신호를 다 지키며 배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고객 항의는 더 많이 받고, 수익은 더 줄어들었다.

배달과 함께 증가한 오토바이 사고

배달, 오토바이, 사고, 이 3가지의 폭발적 증가세는 통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통계청의 1분기 온라인 쇼핑 동향을 보면, 모바일쇼핑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지난 3월 1조9,723억 원으로 전년도 동월 1조1,800억 원보다 67.1%나 늘었다. 지난해 국내 신규 오토바이 등록대수도 14만4,944대로 전년도(11만3,600대) 대비 27% 증가했다.

이에 따라 오토바이 사고도 급증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이륜차 교통법규 위반은 2019년 31만1,403건에서 2020년 58만1,903건으로 86.9% 늘었다. 중앙선 침범은 전년 대비 130.8%, 신호위반은 150.6%로 폭증했다. 급기야 지난달 10일 서울 상암동의 한 사거리에서는 오토바이 배달원이 빨간불을 무시하고 달리다 차량과 충돌, 숨지는 사고까지 났다.

오토바이 번호판, 앞에도 달자?

배달원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계속 있어왔다. 그런데 그 대책이란 게 '오직 단속'뿐이란 점에서 배달원들은 되레 불만이다.

가령, 지난 4월엔 무인 교통단속 카메라가 오토바이의 뒷면 번호판을 찍을 수 있도록 하자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에 나왔다. 하지만 후면 단속을 위한 카메라 설치에만 5년간 5,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되는데 정작 효과는 그에 못미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러자 이번엔 오토바이 번호판을 오토바이 앞에다 달자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 나왔다. 이 방안도 오토바이 앞에다 번호판을 붙이면 공기저항이 거세져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토교통부도 "이륜자동차는 차종마다 전면부 구조 및 형태가 달라 번호판 부착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라이더 탓만 말고 안전운전 환경부터"

배달원들도 자신들에 대한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라이더 유니온만 해도 지난 4월부터 '주행 중 흡연 금지' '불법 개조 추방' '헬멧 착용'을 약속하는 안전 배달 캠페인을 선언했다. 내년에는 '횡단보도를 건널 경우 내려서 건너기'를 목표로 정해뒀다.

하지만 이런 자정 노력과 별개로, 단속 위주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라이더 유니온 관계자는 "빠른 배달 경쟁 분위기 속에서 정부의 단속 강화, 배달원의 자정 캠페인만으로는 안전운행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달원 문제를 들여다봐온 이호영 변호사도 "플랫폼 업체가 압박하는 대로 배달하지 않으면 페널티가 크다는 건, 곧 플랫폼 업체가 사실상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배달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보다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일할 수 있도록 정부나 국회가 개입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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