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면 대신 후면부터 철거… 당국 허가 받은 해체계획서 어겼다

입력
2021.06.11 09:00
재개발조합·철거시공사, 구청 승인 해체계획 위반

10일 오후 광주 건물 붕괴 참사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광주 동구청 앞에서 한 유가족이 희생자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광주=뉴스1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의 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되면서 17명의 사상자를 낳은 가운데, 철거 작업자들이 구청 승인을 받은 해체계획서를 지키지 않은 채 작업에 임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건물 붕괴를 막기 위해 외벽 강도에 따라 철거 순서를 정해놓고도, 현장에선 이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한 철거를 위한 원칙을 처음부터 내팽개친 것으로, 이로 인해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져 대규모 인명 피해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한국일보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학동4구역 철거 공사 계획서'(해체계획서)에 따르면 해당 건물은 당초 남쪽 외벽부터 철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건물 사방의 외벽 강도를 측정한 결과 남쪽 벽의 강도가 가장 낮게 측정됐기 때문이다. 해체계획서에 명시된 대로 "가장 약한 벽부터 철거를 진행해 다른 벽면의 무너짐이 발생할 확률을 낮춰 진행한다"는 목표에 따른 것이다.

광주 동구 붕괴 건물 철거작업 순서. 그래픽=강준구 기자

계획서는 남쪽에 이어 서쪽, 북쪽, 동쪽 외벽 순으로 철거 작업 순서를 예정했다. 도로에 면한 외벽이 동쪽 외벽이므로, 도로에서 보는 기준으로 좌측면→후면→우측면→전면 순으로 철거한다는 것이다. 이 해체계획서는 공사 관리자인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과 철거 시공자인 한솔기업이 광주 동구청에 제출해 허가받은 일종의 '공적 약속'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철거 작업은 서쪽 외벽, 즉 도로 기준으로 건물 후면부터 시작됐다. 서쪽은 남쪽보다 평균 외벽 강도가 1.4MPa(메가파스칼, 하중을 견딜 수 있는 강도 단위) 정도 높아 두 번째로 철거하겠다는 사전 계획을 내놓고도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입수한, 사건 당일(9일) 오전 11시 37분 촬영된 사진에는 건물 후면에 성토체가 건물 3층 높이로 조성돼 있고, 그 위에서 굴삭기가 압쇄기로 건물을 절단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이 붕괴하기 4시간여 전인 9일 오전 11시 37분 철거 공사 현장의 모습. 굴착기가 건물 후면 성토체 위에서 위태롭게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광주경찰청 제공

만약 해체계획서에 제시된 순서대로 철거가 진행됐다면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는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강도가 높은 벽면이 마지막까지 남아 건물 하중을 효과적으로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재개발구역에서 해당 건물을 제외한 철거는 이미 끝났기 때문에, 붕괴가 일어나더라도 도로가 아닌 공터로 무너져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제도 강화가 현장 적용으로 이어지지 않아 이번 참사가 빚어졌다고 지적했다. 안홍섭 건설안전학회장은 "지난해 건축물관리법 개정으로 건축물 철거 시 지방자치단체에 해체계획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도록 했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계획서 미준수와 현장감리 부재가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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