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헤어져" 엄마의 협박, 결혼 반대에 우울증

입력
2021.06.07 04:30

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사귄 지 10년 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과 갈등을 빚고 있어요. 남자친구와 만난 지 2년쯤 됐을 때 부모님이 교제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함께 식사하면서 소개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남자친구와 당장 헤어지라고 했어요. 이유를 묻자 키가 작고, 학생이고, ‘그냥 싫다’고 했습니다. 제가 헤어지지 않겠다고 하자 엄마는 몹시 화를 내며 식탁을 쓸어버렸어요.

이후에 반대는 더 심해졌어요. 저의 일상을 늘 의심하고 제가 가는 곳마다 저를 데리러 오는 등 제 일상을 통제하고 간섭했어요. 엄마는 남자친구를 따로 만나서 저와 헤어지라고 요구했습니다. 제가 헤어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드리니 말대꾸를 한다며 화를 내시고 '이놈은 더 안 되겠다'며 오히려 남자친구 탓을 했습니다. 부모님 반대에 몰래 데이트를 할 때도 늘 마음이 초조했고, 악몽도 반복해서 꿀 정도로 괴로워서 남자친구와 결국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헤어지고 몇 년이 지나도 남자친구를 잊기 힘들었어요. 몇 년간 부모님 몰래 다시 만났습니다.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부모님께 용기 내어 교제 사실을 알렸어요. 엄마는 남자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더욱 더 분노하셨고 엄마의 통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어요. 엄마의 반대로 저는 우울증에 걸렸어요. 엄마에게 힘들다고 하자 “너만 힘드냐, 나도 너 때문에 우울하다. 너 같은 딸 없는 게 낫다” “내가 딸 하나 낳아서 이게 무슨 고생이냐” 등의 폭언을 쏟아냈습니다. 남자친구에게도 “내 딸과 안 헤어지면 내가 너 죽일 거야. 너가 죽어야 끝이 나지”라며 협박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가 '내 인생이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겠다'고 하면 부모와 인연을 끊겠다는 거냐며 마음대로 하라고 등을 돌리고 제가 바보같이 행동하고 중간역할을 못해서 그렇다며 제 탓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허락을 했다가 엄마의 반대가 심하자, 먼저 엄마 마음을 돌리고 설득하라며 도와주지 않으세요. 최근 한 달간 엄마를 설득해보려고 집에 일찍 와서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결혼 얘기만 꺼내면 화부터 낼까 지레 겁이 나고 두렵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집에서 엄마 눈치를 살피며 컸어요. 주말부부였던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엄마가 물건을 던지다가 아빠가 다쳐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어요. 어릴 때 엄마에게 장난을 치다 “엄마가 네 친구야? 오늘부터 어머니라고 하고, 존댓말 써”라고 호되게 꾸중을 듣고 나선 엄마와 거리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엄마가 갑자기 이유도 없이 화를 내며 외출하는 저의 머리채를 잡고 베란다로 끌고 가 같이 뛰어내리자고 한 적도 있었어요. 엄마와 집에 있어도 제 방에 주로 혼자 있었어요.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딸이 엄마한테 말 한 마디 안 하냐. 다른 집 딸들은 엄마와 이야기도 잘 한다는데” “네가 엄마를 엄마로 대하기나 하냐”라며 제게 뭐라고 했습니다.

계속되는 반대에도 남자친구와 저는 부딪쳐보기로 했고,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지인들에게 제 맞선자리를 주선하면서 만나보라고 강요합니다. 그러다가도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오면 “결혼하겠다면서 노력을 안 한다”고 하고, 인사하러 오겠다고 하면 “필요 없다”고 화를 내서 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부모님과 남자친구의 중간 역할을 제대로 못해 일을 키웠다는 자책감도 들어요.

최혜리(가명ㆍ34ㆍ회사원)

혜리씨, 가족 간의 갈등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여러 가족구성원의 복잡한 심리적 역동이 관여하기 때문에 당신의 사연만으로 판단하는 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게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해준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저 또한 당신에게 진심으로 조언을 해드리고 싶어요.

사람들은 결혼을 왜 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죠. 누가요. 부모가 아니라 본인이죠. 당신이 결혼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반대입니다. 어머니가 반대하는 이유는 뭐죠. 남자친구가 사기꾼이거나 유부남이거나,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죠. 물론 부모 입장에서 자녀의 결혼 상대가 마음에 안 들 순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결혼 당사자는 부모가 아니라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축복 속에 결혼하면 좋겠지만 성인은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결혼할 수 있어요. 문제는 혜리씨가 부모의 반대로 인해 우울증에 걸리고 죽고 싶을 만큼 너무 심한 갈등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우선 저는 혜리씨에게 결혼에 대해 먼저 깊이 생각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결혼은, 열렬히 사랑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해도 살다 보면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왜 하는지,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은지부터 스스로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또 혜리씨는 낳아준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나이도 아니고, 남편의 보호가 필요한 나이도 아니에요. 스스로 인생을 독립적으로 살아가고도 충분한 나이라는 걸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생각해보세요. 혜리씨의 어머니를 비하하거나, 흉을 보려는 의도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어 보여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혜리씨의 어머니는 딸의 심리상태와 결혼을 앞둔 상황에 교묘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흔히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머니는 딸에 대한 심리적 지배력을 강화하고, 과도하게 통제해서 본인이 원하는 방향과 방식대로 딸의 인생을 쥐락펴락하고, 그렇게 해야 딸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모로서 딸이 결혼하고 싶어하는 상대가 마음에 안 들 수 있지만,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것과 딸이 사랑하는 것은 별개인데,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딸도 사랑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당신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자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스라이팅은 의학적으로는 심리적 학대입니다. 물리적 폭력과 달리 애착의 형태를 띠고 등장합니다. 그래서 애정과 헷갈립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네가 부모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니니” “다 너 잘 되라고 행복하라고 그러는 거다” “부모니까 너를 생각하지 누가 너를 생각해주기나 하는 줄 아니, 네 편은 이 세상에서 우리 밖에 없다” 등의 말들이 다 가스라이팅의 종류에요. 딸이 행복하길 바란다면서 딸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거죠. 연인관계뿐 아니라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빈번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딸이 남자친구를 못 만나게 하려고 집에 가두거나 딸의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칩시다. 아버지는 딸에게 가혹한 행위를 해놓고 다음 날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꽃을 사와서 “이게 다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정도도 못 참니”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다 네 탓이야.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고 합니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입니다.

부모로서의 애정 어린 조언과 가스라이팅의 차이는요, 조언은 자식에게 문제행동이 있다면 바꿔야 하는 문제 행동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인데 비해 가스라이팅은 자식의 생각 전체를 바꾸려고 하고 자식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점이에요. 어머니가 조언을 하려고 했다면 “네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결혼하면 경제적인 문제도 큰데, 학생이니까 그 부분이 가장 염려스럽다. 우리 같이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의논해보자”라고 했을 거예요. 혜리씨의 어머니는 딸이 자기가 하라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따라주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다 마음에 들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반대하고, 잘 알지도 모르는 남성들과의 맞선자리를 주선하는 겁니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바꿀 때까지 반복돼요. 지속적으로 피해자의 현실 판단력, 기억력과 분별력에 교묘하게 조작을 가하지요. 가해자는 피해자의 기억을 왜곡시켜서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네가 언제 제대로 기억하는게 있기나 하니) 사소한 실수도 침소봉대하고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 말대로 해주지 않는 것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 피해자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면서 예민하고 유난을 떠는 사람 취급을 하지요. 그러다 보면 피해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흐려지고, 의구심이 듭니다. 결혼에 대한 확신이 섰어도 끊임없이 ‘남자친구와 어머니 사이에서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고, 확신이 없는 것도 그 영향입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잘못한 게 없어도 자꾸 변명하고, 사과를 합니다. 그런 관계가 지속되면 매사 이유 없이 불안하고,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결국 당한 사람이 ‘나 같이 못난 딸을 이렇게까지 봐 줘서 고맙다’ ‘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엄마가 저렇게 할까’ ‘나 때문에 엄마가 괴로워서 너무 미안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이 우울해지고, 황폐해집니다. 나중에는 사소한 결정조차 스스로 하기 어려워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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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정하게 들리겠지만 혜리씨가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머니와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합니다.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 물리적 거리를 두고 회피하세요. 혜리씨의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당신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건 절대로 사랑의 형태가 아니에요. 어머니가 갖고 있는 자신의 문제에요. 어머니도 자신의 행동이 가스라이팅인 줄 모를 겁니다. 본인은 계속 사랑이라고 얘기할 거예요.

아무리 건강하고 사랑하는 부모 자녀 관계라도 양육의 목표는 건강한 독립과 자녀의 자립이에요. 부모와 아주 사이가 좋아도 자녀는 독립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나가야 해요. 당신이 독립한다고 해서 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건 아닙니다. 어머니가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파악해야 당신이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머니의 말에 ‘알겠다’고 하지 말고, ‘고려해볼게’라고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세요. 어머니의 말을 자꾸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말도 안 되는 얘기와 상황에 계속 휩쓸려 가지 말고 조력자를 찾는 것도 좋습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의논하고 판단해줄 사람 말입니다.

무엇보다 당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굳고 단단해야 해요. 결혼을 누구도 장담할 순 없지만 ‘내가 성인이고, 내 의지대로 살겠다’ ‘내게 결혼 상대는 어떤 사람이고, 이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혜리씨, 무섭게 다투는 부모님 사이에서, 감당하기 힘든 어머니 밑에서 30년 넘게 마음이 너무 많이 힘들었겠어요. 이제 당신의 인생과 나이에 맞게, 당신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당신 내면에 있는 선함을 토양으로 삼아 지금까지 힘들게 버텼어요. 애쓰셨어요. 충분히 최선을 다 하셨어요.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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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기자
오은영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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