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도 발버둥치는데 우리 영화제는? [라제기의 슛&숏]

입력
2021.06.05 1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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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5일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주연배우 송강호에게 상패를 바치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기생충'은 황금종려상 수상을 발판 삼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4관왕에 올랐다. 칸=UPI 연합뉴스

2019년 5월 25일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주연배우 송강호에게 상패를 바치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기생충'은 황금종려상 수상을 발판 삼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4관왕에 올랐다. 칸=UPI 연합뉴스

칸국제영화제 집행위가 3일 올해 선정작을 발표했다. 면면은 역시 화려하다. 한때 천재로 불렸던 프랑스 감독 레오 카락스의 ‘아네트’가 개막을 알린다. 경쟁부문 명단을 본 시네필이라면 프랑스 칸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을 듯하다. 한국 영화로는 ‘비상선언’이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된다. 홍상수 감독의 ‘당신 얼굴 앞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칸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됐다. 한국 영화가 경쟁부문에 오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딱히 실망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주목할 건 최근 칸영화제의 움직임이다. 선정작 발표를 보며 초조함 또는 위기감을 감지했다. 칸 프리미어 부문 신설이 특히 눈길을 잡았다. 유명 감독의 신작을 소개하는 부문이라는 데 정체성이 모호하다. 칸영화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첫 상영될 영화만 초대한다. 초보 감독이 경쟁부문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다. 경쟁부문이나 경쟁부문 아래라 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모시기에는 좀 부족하고, 초청하지 않기에는 신경이 쓰이는 감독의 작품들을 칸 프리미어라는 이름으로 모아둔 듯하다. 요컨대 칸 프리미어는 ‘고객 관리용’인 셈이다.

칸영화제는 지난해 열리지 못했다. 세계 3대 영화제(베를린ㆍ베니스영화제 등)로는 유일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시장’은 냉혹하다. 칸영화제가 취소되자 베니스영화제가 두각을 나타냈다. 베니스영화제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규모를 대폭 줄여 지난해 9월 개최를 강행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몰렸다. 황금사자상(최고상)을 받은 ‘노매드랜드’는 기세를 몰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베니스영화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칸영화제와 달리 넷플릭스 영화들을 초청하며 경쟁력을 키워왔다. 칸영화제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심상치 않은 점은 또 있다. 영화수출입업자들의 변심이다. 칸영화제는 세계 최대 영화거래시장인 칸필름마켓과 함께 열린다. 칸영화제가 상부 구조라면 칸필름마켓은 하부 구조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영화거래시장이 활성화됐다. 굳이 돈 쓰고, 몸 고생하며 해외 필름마켓에 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 칸으로선 위기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 칸영화제는 여느 해와 달리 5월이 아닌 7월 열린다. 코로나19 확산이 그나마 줄어든 시점에 어떤 식으로든 영화제를 개최해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칸영화제의 고민이 느껴진다.

한국 영화제는 어떨까. 코로나19 탓에 잔뜩 움츠린 모양새다. 영화제 생태계 변화를 주시하고, 코로나19 이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영화팬들이 다시 영화제를 찾도록 하기 위해선 좋은 영화를 많이 상영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은 답이 아니다. 스타 배우들이 레드 카펫을 밟는, 보여주기 행사에만 신경 써서도 안 된다. 특색 있는 수작을 발굴해 국내외에서 화제를 일으켜야 한다.

유럽 아트하우스(예술영화관) 시장에서 칸영화제 영향력은 막강하다. 칸영화제 초청작 또는 수상작이라는 수식만으로도 시네필들이 극장을 찾는다. 한국 영화제들도 관객 사이에서 믿고 보는 브랜드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2017년 전주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극장에 185만 명을 모은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같은 사례가 반복돼야 가능하다. 영화산업 격변기, 영화제들 역시 변화를 모색할 때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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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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