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순종도 애용”… 108년 전통 한반도 최초 필방

입력
2021.06.05 08:00
<60> 서울 인사동 구하산방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구하산방. 이곳은 붓을 제작해 판매하는 필방으로, 붓을 비롯한 각종 문방사우와 서화재료를 취급한다. 우태경 기자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목길 한켠에 자리잡은 매장 ‘구하산방(九霞山房)’은 디지털 시대인 요즘 찾아보기 쉽지 않은 필방(筆房)이다. 20㎡ 남짓한 가게 내부 벽면에는 온갖 종류의 붓들이 가득차 있고, 먹 벼루 한지 등 각종 문방사우와 서화 재료들이 진열돼 있다. 언뜻 보기에는 예스러운 상품들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을 유혹하는 인사동의 여느 가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매장을 운영하는 홍수희(71) 대표가 "108년 전 처음 문을 연 한반도 최초의 필방" "구한말 고종과 순종도 애용했던 곳"이라고 설명하면 누구나 "정말이냐"고 되물으며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운다. 외국인도 내국인도 마찬가지다.

오랜 역사와 붓에 대한 전문성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대한제국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한 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묵을 벗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묵객'을 위한 가게로 유명한 이곳을 지난달 30일 찾았다.

1913년 문 열어... 이응노 박수근 등 묵객들의 사랑방

'고순어용'은 고종과 순종이 사용했다는 뜻으로, 임금이 찾았을 정도로 구하산방에서 제작하는 붓의 품질이 뛰어났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우태경 기자

구하산방은 1913년 충무로 진고개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전까지는 마을마다 제작자들이 있어 좌판에 놓고 문방사우를 팔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인들이 매장을 만들고 상권을 형성했는데 그 첫 매장이 구하산방이었다. 처음 일본인이 운영할 때부터 입소문이 나 많은 이들이 찾았다고 한다. 전국 각지의 보부상들이 구해온 붓을 한데 모은 유일한 가게였던 데다, 손님 각각의 특성에 맞춘 품질 좋은 붓을 제작했기 때문이었다. 장사가 잘돼 조선은행, 미쓰코시 백화점 등이 있는 입지 좋은 명동으로 옮겼을 정도였다.

특히 구한말 조선의 왕들도 탁월한 품질을 알아보고 구하산방의 붓을 사용했다. 고종과 순종도 사용했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난 붓을 만드는 필방이라는 뜻이 담긴 ‘고순어용(高純御用)’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가게 내부에는 이 말이 전서체로 쓰인 서예 작품이 걸려 있다. 홍 대표는 “원로 한학자이자 서예가인 정향 조병호 선생이 어려서부터 60년 동안 우리 가게를 드나들면서 (우리 가게 붓의) 증인이라면서 써준 것”이라고 말했다.

구하산방의 붓이 궐에도 소문났을 정도니, 당대의 내로라하는 ‘묵객’들은 모두 이곳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고암 이응노, 미석 박수근 등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서예가, 화가들은 모두 이곳의 붓을 사용했다. 당시엔 ‘구하산방을 모르면 작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니 구하산방은 자연스럽게 묵객들의 '사랑방’이 됐다. 홍 대표는 “필방을 찾은 문인, 서예가, 화가들이 이곳에서 서로 면을 트고 인사를 나눈 뒤 친분을 쌓았다”고 회상했다. 그 시절 필방은 단순히 붓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게를 넘어, 묵객들이 지성과 예술을 논하며 교류할 수 있게 한 구심점이었던 것이다.

7평 남짓의 작은 필방인 구하산방 안에는 각종 문방사우와 서화재료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우태경 기자


독립군 접선 장소... 간송 전형필, 삼성 이건희도 찾아

구하산방은 1913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영업감찰증'을 받아 운영했다. 우태경 기자

10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필방은 혼란스러웠던 한국사의 굴곡을 함께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가들도 많이 찾았다고 한다. 홍 대표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 구하산방은 독립군들이 서로 연락할 수 있던 방앗간이었다"며 "일본인이 운영했지만, 독립군들이 암암리에 며칠에 무엇을 한다는 쪽지를 주고 받으며 접선 장소나 연락처를 서로 전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의 먼 친척뻘 되는 홍기대(작고) 선생이 1935년부터 구하산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해방 이후 가게를 인수했지만, 갑작스럽게 터진 한국전쟁으로 장사를 접어야 했다. 남쪽 지방으로 피난했다 다시 서울에 올라와 영업을 재개하려 했지만, 1·4 후퇴 때 또 한 번 서울을 떠나야 했다. 이후에도 구하산방은 안국동, 견지동 등지를 전전했고, 1972년 홍 대표의 형인 홍문희 대표가 이어받은 뒤 1983년 현재 위치인 인사동에 정착했다. 홍 대표는 1987년부터 구하산방을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한국사의 희로애락을 이 필방이 함께 했다"며 "그렇게 이사를 자주 했는데도 우리만한 곳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다”고 말했다.

초대 홍기대, 2대 홍문희, 현 홍수희 대표는 장사가 안될 때라도 형편이 어려웠던 예술인들의 사정을 헤아려 도움을 주곤 했다. 홍 대표는 “옛 시절 문인, 화가들은 대부분 가난해 '다음에 돈 벌면 갚으라'며 붓도 많이 주고, 장래성이 보이는 친구들에겐 학비도 지원했다”며 "누군지 밝힐 수는 없지만 그렇게 도움을 받아 활동하다 대가가 된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구하산방은 고미술품 상점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고미술품을 판매하지 않지만, 초대 홍기대 대표가 조선백자를 수집해 판매했다. 그의 저서 '우당 홍기대 조선백자와 80년'(2014)에 따르면 간송 전형필, 수화 김환기,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부부 등이 이곳을 찾았다. 미술관, 박물관 건립 등 공익적 목적을 가진 수집가에게 좋은 물건을 몰아준다는 원칙에 따라 판매한 터라, 구하산방을 거쳐간 고미술품들은 삼성 리움미술관, 이화여대 박물관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손님 성격 파악해 붓 추천… “우리 붓 쓰다 다른 붓 못써”

구하산방의 3대 주인장 홍수희(71) 대표. 우태경 기자

서예 문화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에도 구하산방의 붓을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필방은 인사동에만 해도 수십여 곳이 있지만, 구하산방처럼 어릴 때부터 다니던 손님들이 백발이 돼서도 꾸준히 찾는 필방은 없다. 구하산방 손님은 평균 30년 이상 방문한다는 게 홍 대표의 설명이다.

"어릴 때부터 다녔던 분들이 어느 날 보니 한 분야의 대가, 명인이 된 경우가 많다. 이들이 자신의 후배나 제자들에게 우리 가게를 소개해주다 보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계속 사람들이 찾아주고 있다. 한번 고객이 영원한 고객인 이유다.”

구하산방이 오랫동안 단골을 유지한 이유로 홍 대표는 손님 개개인의 취향을 파악해 최고 품질의 붓을 골라준 점을 비결로 꼽았다. 구하산방이 취급하는 붓은 1만 원 미만의 학습용 붓부터 추사 김정희가 사용한 붓으로 유명한 수백만 원짜리 최고급 서호필(쥐 수염으로 만든 붓)까지 2,000여 종에 달한다. 그 중에서 손님에 꼭 맞는 붓을 추천하기 위해 홍 대표는 항상 필방을 방문한 손님들과 대화를 나눈다. 5분 정도의 짧은 대화면 손님의 성격, 추구하는 화풍이나 필체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2,000여 종의 붓 중 몇 개를 골라 추천하거나, 중국에 위치한 필방의 붓 공장에 맞춤형 붓 제작 주문을 넣는다.

“성격이 급하고 욱하는 사람은 백마 털과 곰 털이 섞인 붓을 주로 추천하고,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은 부드러운 염소 털로 만든 붓을 추천한다. 사람을 만나고 분석해서 붓을 추천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점쟁이가 다 됐다.(웃음)”

그는 “붓이 모두 같은 붓처럼 보이지만, 붓에 사용된 털의 종류와 밀도, 털이 심어진 각도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며 “붓의 섬세한 성격을 파악해 추천드리니 찾아주신 손님들은 '구하산방 붓을 쓰면 다른 매장 제품을 절대 살 수 없다'고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구하산방을 3대째 운영 중인 홍수희 대표가 붓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홍 대표는 "구하산방의 붓을 한번 쓰면 다른 곳의 붓을 쓸 수 없다"며 자신했다. 우태경 기자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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