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손상 숨져 코로나 의심된 고3, 사인은 '체벌'과 '방임'

입력
2021.05.30 09:30
수정
2021.05.30 10:4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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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 일으킨다" 사촌 형이 빗자루 폭행
대변 못 가릴 정도였지만 아버지는 방치
맞은 상처 제때 치료 안 해 패혈증으로
사촌 형 징역 1년·아버지는 집행유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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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경북 포항에서 사망 후 심각한 폐 손상이 발견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의심됐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사인은 사촌 형의 체벌로 난 상처를 방치해 생긴 패혈증 때문으로 밝혀졌다. 사촌 형은 숨진 학생이 말썽을 일으킨다며 온 몸에 멍이 생길 만큼 때렸고, 아버지는 집안 곳곳에 설사를 할 정도로 아이 상태가 악화됐지만, "괜찮다"는 말에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대구지법 포항지원 등에 따르면 고3학생인 A군은 지난해 5월 9일쯤 사촌 형을 찾아가 "말썽을 일으켜 돈을 빌렸는데 대신 갚아 달라"고 말했다가, 길이 50㎝짜리 빗자루로 맞았다. A군 아버지는 조카로부터 체벌 이야기를 들었고, 몸에 난 상처도 확인했다. 하지만 아이가 “괜찮다”고 하자,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A군의 몸 상태는 열흘 뒤 급격히 악화됐다. 사촌 형에게 맞은 부위에서 진물이 나기 시작했다. A군 아버지도 약을 발라 나을 상처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아이를 살펴보지 않는 등 계속 방치했다.

A군은 코로나19로 뒤늦게 개학 등교가 이뤄진 5월 20일에 택시를 타고 겨우 학교에 갔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 있기도 어려울 만큼 힘이 없어 조퇴를 요청했다. 담임 교사도 가쁜 숨을 내쉬는 A군의 모습에 상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아버지에게 연락해 아이를 데려가도록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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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러나 이후에도 A군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집안 곳곳에 설사를 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됐지만, 담임에게 전화해 "배가 아파 학교에 가지 못하니 병결 처리해 달라"고 말한 뒤, 아이 혼자 집에 두고 외출했다. 그는 아들이 사망한 22일 새벽에도 귀가 후 침대에 누워 있는 A군의 몸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곧바로 출근했다.

A군을 처음으로 병원에 데려간 사람은 심하게 때린 사촌 형이었다. 그는 우연히 집에 들렀다가 홀로 방치돼 침대에 누워 있는 동생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검안 결과, A군은 허벅지 등 몸 여러 곳에 멍 자국이 발견돼 가정폭력 등이 의심됐다. 하지만 폐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숨지기 전 설사 증세를 보여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신을 살펴본 의사가 격리됐고, 중앙방역대책본부까지 음성으로 나온 A군의 검체 검사 결과를 브리핑하기도 했다.

A군을 때린 사촌 형은 지난 26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A군을 방치한 아버지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고, 2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구지법 포항지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재판부는 "사촌 형은 동생을 훈계한다는 이유로 위험한 물건으로 가격해 사망에 이르는 원인이 됐지만, 우발적으로 저질렀고 수사기관에 자수한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A군의 아버지는 아이가 대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돼 고통을 겪는데도 방치해 죄가 가볍지 않지만, 과거에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등 다소 참작할만한 사정이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포항=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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