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는 절대 물지 않을 거라는 착각

입력
2021.05.29 14:00

반려견 '가락이'의 산책 줄에 '친구사절'이라고 씌어진 와펜을 달았다. 고은경 기자

얼마 전 반려견 '가락이'와 길을 걷던 중 반려견과 산책 나온 한 젊은 여성이 수줍어하며 "(반려견끼리) 인사시켜도 되요?"라고 묻길래 "알겠다"고 했다. 여성은 뜸을 들이더니 개 주둥이를 손으로 살짝 잡으며 "살살해야 돼"라고 말했다.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낀 찰나 개는 가락이에게 달려들어 공격했다. 순간 놀라 "인사시키면 안 되죠"라고 따졌고, 상대방은 억울하다는 듯 "얘가 이럴 줄 제가 알았나요"라며 소리치다 결국 "죄송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가락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다른 개들을 많이 만난다. 가락이는 다른 개에게 전혀 관심이 없지만 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다가오는 개가 보이면 일부러 길을 돌아간다. 상대방 개의 성격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다 다른 개와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괜히 싸움이라도 날까 항상 조마조마하다.

개 산책을 나가면 다른 개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산책하면서 들었던 불안한 마음과 앞서 겪은 사례는 어디선가 봤던 '친구사절' 와펜(옷이나 모자에 붙이는 찍찍이 형태의 장식)의 구매욕을 불러일으켰다. 산책 줄에 와펜을 붙이고 나간 첫날, 전보다 개끼리 인사시키려는 사람이 확실히 줄었다. 와펜을 본 사람들은 개 줄을 짧게 잡기도 했다. 구매할 때는 '오버'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막상 효과가 있으니 구매하길 잘했다 싶었다.

그렇게 효과를 만끽하며 집에 도착하기 3분 전. 주택단지 내 벤치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가락이를 보곤 "눈을 가려야 해"라며 자신의 무릎 위 개의 눈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다른 개에게 공격적인가 보네'라고 생각하며 지나가던 중 여성이 갑자기 개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그래, 갈 수 있으면 가봐"하는 것 아닌가. 개는 가락이에게 돌진했고 무섭게 짖어대며 공격태세를 취했다. 너무 놀라 가락이를 안아 들어 올렸고, "도대체 왜 이러세요?"라고 따졌더니 멋쩍어하며 "미안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여성은 나에게 보란 듯이 "넌 큰 개에게 물려봐야 돼"라며 개를 찰싹찰싹 때렸다. 정작 잘못한 건 본인이면서 애꿎은 개만 혼내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다른 개에게 물려간 뒤 실종된 반려견을 찾는다는 내용의 공고. SNS캡처

생각해보면 두 반려인 모두 자기 개의 성향을 알고 있었지만 일탈하지 않을 것이라고 너무 믿은 게 아닌가 싶다. 살살 인사시키면 괜찮겠지, 바닥에 놔둬도 설마 쫓아가지는 않겠지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반려인의 기대를 보란 듯이 빗나갔다. 개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반려인을 비꼬는 대표적 표현인 "우리 개는 안 물어요"를 떠올리게 했다.

최근 반려인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개들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에는 대구에서 보호자가 있는 개 두 마리가 자유롭게 산책하다 케어테이커들이 돌보던 동네고양이를 물어 죽이는 사건이 있었다. 또 목줄을 하지 않은 개들이 각각 경기 용인시와 제주에서 시추와 몰티푸(몰티즈와 푸들의 혼종견)를 물었고 공격당한 개는 죽거나 실종됐다. 보호자 유무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22일 경기 남양주시에서는 50대 여성이 개에 물려 사망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26일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개가 행동반경 확인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안락사할 방침이 알려지면서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뉴시스

이 같은 사건은 모두 반려인의 부주의와 무개념 행동에서 비롯된다. 설사 보호자가 있는 반려견이 아닌 떠돌이개로 인한 사고였다 할지라도 결국 개를 거리로 내몬 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부 반려인의 몰지각한 행동은 비반려인뿐 아니라 반려인, 그리고 또 다른 동물에게도 피해와 상처를 남긴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가 아니라 우리 개도 물 수 있다. 다른 반려견이 본인 반려견의 테스트 대상은 아니다. 반려견을 방치해 키워서도 안 된다. 반려견과 함께한다는 것에는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 '개 매너'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고은경의 반려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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