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무대의 성소수자들

입력
2021.05.31 04:30
Tamara Press(1937.5.10~ 2021.4.26)

1964년 도쿄올림픽 여자 투포환 결승에서 구소련 선수 타마라 프레스(가운데)는 18.14m로 금메달을 땄다. 2위와 3위 최고기록은 각 17.61m와 17.45m였다. 그는 허들 메달리스트인 동생 이리나와 함께 국제 엘리트 체육계의 성(sex) 논란에 불을 지핀 원년 멤버 중 한명으로, 서방 언론은 그들 남매를 '프레스 형제들'이라며 비난하고 조롱했다. 그는 67년 은퇴했고, 숨질 때까지 자신의 성의 진실은 물론이고 끊임없는 성 논란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AP 연합뉴스

페미니즘의 두 경향, 즉 생물학적 성(sex)의 차이와 특질에 주목하는 '본질주의'와 후천적 사회문화적 구성물로서의 성(gender)를 중시하는 '구성주의'의 마찰은 아직 진행중이다. 주디스 버틀러가 생물학적 성 역시 구성적 현실의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한 것도, 호주 시드니대 페미니스트 철학자 모이라 게이튼스(Moira Gatens, 1954~)가 제안한 '상상적 신체'라는 개념도, 섹스-젠더 이분법과 본질-구성주의의 화해를 위해서였다. 최근 번역 출간된 1996년 저서 '상상적 신체'에서 게이튼스는 '여성의 몸(sex)'도 사회문화적 맥락과 경험을 통해 역사적이고 역동적으로 상상된 산물이며, 젠더 역시 신체적-물질적 성격과 무관할 수 없다며, 섹스-젠더의 구분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 철학적-젠더정치학적 마찰과 별개로, 아니 성소수자 차별이 심각한 인권문제로 부각돼온 추세와 맞물려, 생물학적 성 이분법을 경쟁의 기본 룰로 채택해온 체육계는 성의 경계를 어떻게 획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이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 고민에 휩싸여있다. 성(sex)의 존재는 엄연하지만 그 경계는 삼엄하지 않으며, 철학도 과학도 명쾌한 선을 그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1946년 '펨카드'가 등장하다

사실 그게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100m 결선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 헬렌 스티븐스(Helen Stephens, 미국)는 직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스텔라 월시(Stella Walsh, 폴란드)에 의해 정체를 추궁당했다. '진짜 여자 맞냐'는 거였다. 스티븐스의 각진 얼굴과 근육질의 남성적 체형은 의심을 살 만했고, 올림픽 위원회는 따로 신체검사를 치른 뒤에야 그의 메달을 인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비(非)여성'은 월시였다. 47년 미국인으로 귀화한 그는 80년 불의의 범죄로 살해당한 뒤 부검에서 남녀 성기를 모두 지닌 간성(intersex)인 게 밝혀졌다. 그의 32년 메달은 박탈되지 않았다.
베를린올림픽 높이뛰기에서 4위를 차지한 독일 선수 도라 라첸(Dora Ratjen)은 2년 뒤 유럽육상선수권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그는 대회 직후 기차를 탔다가 '수상한 여장 남자가 있다'는 승무원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돼 조사 중 간성인 게 확인됐다. 그는 메달을 박탈당했고, 하인리히 라첸으로 개명해 남자로 살았다.
저 일련의 논란 끝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현 World Athletics)은 1946년 '펨카드(Fem Card)', 즉 여성 선수에 한해 성 인증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48년 런던대회부터 펨카드 제도를 도입했다. 그 증명서는 가족이나 팀 닥터도 작성할 수 있는 형식적인 거였지만, 스포츠계 최초의 공식 성 인증제도였다.

엘리트 체육계의 성논란은 성분화이상(DSD)으로 남성적 이점을 누리는 여성 선수나 트렌스여성 선수에게 집중돼왔다. 남아공 육상선수 케스터 세메냐, 32년 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 스텔라 월시, 38년 유럽선수권 금메달리스트 도라 라첸, 뉴질랜드의 트랜스여성 역도선수 로럴 허바드.(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위키피디아, 연합뉴스.

구소련 원반-투포환 선수 타마라 프레스(Tamara Press)는 6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럽선수권대회 직전, 출전 거부를 선언했다. 그는 58년 스톡홀름대회 원반(금)과 투포환(동), 60년 로마올림픽 원반(은) 투포환(금) 메달리스트이자, 64년 도쿄올림픽서 두 종목을 모두 석권한 '거물'이었다. 신장 180.3㎝에 체중 102㎏의 덩치도 도드라져 그는 일찌감치 성 의혹에 휩싸였지만, 당시는 스포츠 대결이 동서 냉전의 대리전같던 때였다. 60년 올림픽 육상 80m 허들과 64년 올림픽 5종경기 금메달리스트인 타마라의 동생 이리나(Irina, 1939~2004)도 의심 받았다. 동구권 선수들의 성의 진실을 규명할 수 없던 체육계와 서방 언론은 그들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폄하했다. 둘을 싸잡아 '프레스 형제들(Press Brothers)'이라 썼고, 특히 타마라는 럭비에서도 가장 덩치 큰 선수들이 맡는 '디펜시브 태클'에 비유되기도 했다.

IAAF는 66년 여성 선수들의 현장 신체검사를 의무화했다. 하의를 탈의한 채 의사들에게 검사를 받고, 의사가 요구할 경우 상체를 숙여 성기를 드러내야 하는, 이른바 '나체 퍼레이드(naked parade)'였다. 그 비인간적 비인격적 조치에 순응할 수 없다는 게 프레스 자매의 항변이자, 대회 불참의 명분이었다. 앞서 64년 타마라 프레스는 AP 인터뷰에서 "나는 챔피언이고, 당신이 보다시피 여성이다.(...) 스포츠우먼이란 사실과 외형적 여성성(feminity)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진실과 별개로, 게이튼스 식으로 말하자면 여성적 육체로 '상상'된 편견에 대한 항변일 수 있었다. 59~66년의 7년간 무려 26차례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두 '자매'는 67년 나란히 은퇴했고, 동생에 이어 타마라 프레스가 4월 26일 별세했다. 그렇게 자매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다. 향년 83세.

신체검사에서 염색체-유전자-호르몬 검사로

여성 체육인들의 거센 반발끝에 IAAF와 IOC는 1968년 면봉으로 볼 안쪽을 긁어 성염색체(XX, XY)로 성별을 구분(Barr body testing)해 펨카드를 발급했지만, 그 역시 성 논란을 없애진 못했다. 올림픽과 유럽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인 폴란드 단거리 육상선수 에바 크워부코스카(Ewa Klobukowska, 1946~)는 67년 염색체 검사에서 남녀 성염색체를 모두 지닌 '모자이시즘(mosaicism)' 증상자로 밝혀져 체육계 강압에 의해 '자진 은퇴'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부당한 조치였다. 그는 은퇴 이듬해 아들을 출산했다.

1964년의 타마라-이리나 프레스 자매. 둘은 남성이거나 간성이거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남성호르몬을 투여받았으리란 의혹 일체를 부인했고, 67년 나란히 은퇴했다. 위키피디아.

스페인 육상 허들선수 마르티네즈 파티뇨(Martínez Patiño, 1961~)는 85년 일본 고베 유니버시아드 직전 염색체 검사에서 남성 성염색체와 잠복고환을 지닌 사실이 확인됐다. 그 역시 은퇴를 강요 당했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여성성에 의문을 품은 적 없던 그는 이듬해 스페인체전 출전을 감행해 60m 허들 금메달을 땄다. 스페인 체육계는 성검사 결과를 공개하며 그를 제명하고 모든 경기 성적을 무효화했다. 파혼까지 당하며 고독하게 자신의 진실을 위해 분투한 그는, 성염색체 검사의 문제점에 주목한 핀란드 유전학자 알베르트 드 라 샤펠(Albert de la Chapelle)의 도움으로 88년 명예를 회복했다. 안드로겐불감증(AIS, androgen insensitivity syndrome) 즉 그의 몸이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남성호르몬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유전자와 남성호르몬의 이점을 전혀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거였다. 스페인 체육계는 그의 선수 자격을 회복시켰지만, 88년 올림픽에 출전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IOC는 92년 동계올림픽부터 성염색체 발현유전자인 'SRY 단백질' 항원검사(PCR)와 함께 '성분화이상(DSD, disorders of sexual development)'과 안드로겐불감증 검사를 병행했다. 96년 하계올림픽에선 여성 선수 3,387명 중 8명이 PCR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모두 DSD-AIS 검사로 출전 자격을 인정 받았다. IOC는 2000년부터 염색체-유전자 검사를 보완적으로만 실시한다. 대신 도입한 게 천연스테로이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의 혈중 농도였다. 1994년 게이스포츠연맹(FGG)이 트랜스젠더 선수 출전자격을 규정하며 '호르몬요법' 규정을 처음 채택했다. 테스토스테론은 근력과 지구력 등에서 남성의 경기력 우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이다. 적혈구와 헤모글로빈 생성을 도와 폐활량을 늘리고, 체내 지방축적을 억제하고 근육량과 골밀도를 높여준다. 통상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농도는 혈액 1리터 당 0,12~1.9 nmol(나노몰)인 반면 남성은 7.7~29.4nmol/l로 편차가 크다.

IOC는 2004년 5월, 성전환수술과 법적 성별 정정, 최소 2년 호르몬 요법을 전제로 트랜스젠더 선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했다. 아마추어 육상선수인 미국 오리건 주 한 메디컬센터 물리의학자 조안나 하퍼( Joanna Harper)가 저 조치에 고무돼 그해 8월부터 여성으로의 성전환 호르몬 요법을 시작했다. 여성호르몬제와 남성호르몬 억제제를 투여 받은 그는 채 1년도 안돼 자신의 1만m 기록이 무려 5분이나 늘어난 사실을 확인했다. 1~2분 늘어나리라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변화였다. 그는 비교연구를 위해 만 7년간 SNS 등을 통해 트랜스여성 육상선수 8명을 발굴해 그들의 기록 변화를 연령 변수까지 감안해 분석, 호르몬요법 1년이면 '테스토스테론 어드밴티지'가 사라지더라는 연구 결과를 2015년 한 스포츠저널에 발표했다. 호르몬 요법과 경기력 상관도에 대한 최초의 실증적 연구였다.
하퍼는 그해 IOC 규정 패널에 참여, 호르몬요법 규정을 최소 1년으로 완화하고 성전환수술 의무화 규정을 폐지하는 등 규정 개정에 기여했다. 하지만 1년 규정과 트렌스여성의 테스토스테론 농도 상한선(10nmol/l)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남성 평균보다는 낮지만, 여성보다는 현저히 높기 때문이다. 하퍼 역시 그 비판에 수긍했다. 그는 "여성 리그에서 경쟁하려면 호르몬 수치도 대등해야 하며, (호르몬의) 작은 차이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나는 안다"고 말했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아동청소년병원 연구진이 미 공군 트랜스남성 29명과 트랜스여성 46명을 대상으로 만 10년간(2004~2014) 호르몬요법 전후의 체력 변화를 분석한 최근 논문도 '1년은 짧다'는 입장을 뒷받침했다. 트랜스여성의 경우 호르몬 요법 이전 일반 여성에 비해 분당 푸시업 횟수는 31%, 싯업은 15% 많고, 1.5마일 달리기 기록도 21% 앞섰다. 호르몬 요법 2년 뒤에도 푸시업과 싯업 기록은 각각 10%와 6% 우위였고, 달리기도 12% 빨랐다. 연구팀은 군인과 엘리트 스포츠인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1년 호르몬요법 규정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5나노몰이냐 10나노몰이냐

2009년 아프리카주니어챔피언십에 출전한 남아공 선수 캐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는 800m와 1500m에서 개인 기록을 각각 무려 8초와 25초나 단축시키며 세계 육상계를 놀라게 했다. IAAF는 도핑테스트와 성별검사를 실시했고, 일부 언론이 그 결과를 비공식적으로 입수해 보도했다. 그가 XY유전자와 잠복고환을 지닌 성분화이상 증상자이고, 테스토스테론 수치도 일반 여성보다 세배 가량 높다는 거였다. 그해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그는 800m를 그해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2011년 5월 IAAF는 테스토스테론 상한(10 nmol/l) 규정을 도입했다. 세메냐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저 조치가 부당하다며 제소했지만 2019년 5월 패소했고, IAAF는 그해 10월 5nmol/l로 기준을 오히려 강화했다. 아직 연구는 초기 단계이고, 저 숫자도 사실 다분히 편의적이다.

IOC 전문가 패널은 2019년 9월 '10nmol/l' 규정 개정에 합의하지 못했다. 도쿄 올림픽 성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만일 개최된다면 뉴질랜드의 트랜스 여성 역도선수 로럴 허바드(Laurel Hubbard, 1978~)도 출전할 것이다. 남자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수위권이던 그는 2013년 트랜스여성이 된 이래 오세아니아 및 영연방대회(Commonwealth Games) 등을 석권하다시피 해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Karolinska)대 연구진은 2019년 12월 트랜스 여성이 호르몬 요법을 1년 이상 받더라도 사춘기 이후 형성된 근육과 근력이 줄어드는 정도는 미미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여성 체육인은 대부분 트랜스여성을 포함 남성적 이점을 지닌 여성 선수의 참가 자격을 훨씬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테니스 스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영국 수영선수 샤론 데이비스 등이 특히 완강하다. 하지만 조안나 하퍼는 "호르몬요법 이후에도 트랜스여성이 시스젠더 여성에 비해 키나 덩치가 크고 더 강하지만 그게 반드시 불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엘리트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트랜스여성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트랜스여성의 육체적 이점이 얼마나 되든-물론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그들은 그 정도의 사회적 불리를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체 행진'이라는 60년대의 반인권적 규정은 타마라 프레스에겐 명예로운 은퇴의 명분이 됐다. 그는 구소련(러시아) 필드 대표팀 코치로, 러시아 체육인 후원단체인 체육문화보건기금 부회장으로 일했고, 자신의 성취를 부각한 몇 권의 책을 썼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져 온 저 체육계 성 논란에는 철저히 방관자로 일관하며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한 마디도 말을 얹지 않았다.

최윤필 기자
가만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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