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권하지 않는 시대 

입력
2021.05.20 15:00
25면


팬데믹에 보는 클림트의 '키스'


클림트, '키스', 1907~1908년, 캔버스에 금박과 유채, 180 x 180㎝, 오스트리아 갤러리 벨베데레, 빈

클림트, '키스', 1907~1908년, 캔버스에 금박과 유채, 180 x 180㎝, 오스트리아 갤러리 벨베데레, 빈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뽀뽀, 남녀 간의 낭만적인 키스는 그동안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키스에 경종이 울렸다. 기침, 재채기를 하거나 말할 때 입에서 나오는 침방울이 이 역병의 주요 감염 원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의료 전문가들은 지금으로서는 키스가 치명적인 행위라고 입을 모은다. 남녀의 진한 입맞춤을 아름답게 표현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키스'를 떠올리면 참 묘한 느낌이 든다. 키스가 그토록 위험한 것이었나?

클림트의 '키스'는 입맞춤을 표현한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화가는 금색의 평평한 바탕을 배경으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초원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채 열정적으로 포옹하고 키스하는 연인들을 묘사한다. 이런 에로틱한 성애의 표현으로 인해, 두 인물이 완전히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그림은 포르노로 인식되었고 격렬한 대중적 비판을 받았다.

화가는 여성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사랑의 기쁨과 엑스터시, 충만감을 표현한다. 여자를 껴안은 남자의 손이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어 부드러움과 따뜻함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맨발로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여자는 한쪽 팔을 남자의 목에 감고 다른 한 손은 부드럽게 그의 손 위에 포개고 있다. 노골적인 성애와 에로티시즘의 시각화인 동시에, 장식적이고 기하학적 패턴, 호화로운 색채는 어떤 심오한 정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남자는 직사각형 패턴과 소용돌이가 있는 가운을 입고 포도 넝쿨 관을 쓰고 있다. 여자는 화관을 쓰고 원형 무늬가 새겨진 드레스를 입었다. 클림트는 이러한 기본적인 도형들을 사랑에 빠진 남녀의 본질적인 무언가를 포착하는 시각적 언어로 사용한다. 원과 직사각형은 미학적 구성의 요소이자 여성과 남성의 성기관을 각각 표현한 것이다. 또한, 남자의 기하학적 흑백 모티프는 힘, 정력 및 남성성을, 여자의 꽃과 원 패턴은 여성스러움과 출산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술사학자들은 그림 속 연인들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라고 추정한다. 에우리디케는 뱀에 발목이 물려 죽었는데, 작품 속 여성이 풀밭에 맨발로 있기 때문이다. 정작 클림트는 아폴로가 다프네에게 키스하는 순간을 묘사했다고 말했다. 혹자는 그림 속 남녀를 클림트와 그의 연인 에밀리 플뢰게로 추측한다. 그는 평생 정신적 연인과 육체적 연인을 철저히 분리하여 여성들을 대했고, 플뢰게와는 어떤 육체적 관계도 맺지 않은 채 끝까지 정신적 사랑을 유지했다. 일설에 의하면, 수많은 여성과 끊임없이 염문을 뿌리며 성적으로 문란했던 클림트가 플뢰게에게 용서를 구하며 바친 그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육체적인 사랑의 황홀경과 정신적인 사랑의 충만감 둘 다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림 속 연인들이 신화의 주인공이든 현실의 인물이든, 혹은 육체적 사랑이든 정신적 사랑이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키스'는 보편적인 사랑의 기쁨, 따뜻함과 친밀함을 표현한 것이다.

키스와 섹스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자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피부 접촉을 통한 애정의 표현은 관계를 발전, 강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행위이다. 그러나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가로막고, 친밀한 감정을 전달하는 사회적 관습인 악수, 포옹, 키스를 주저하게 한다. 보수적인 성문화를 가진 우리에게는 다소 낯 뜨겁게 느껴지지만, 미국, 영국, 캐나다 같은 서구 국가에서는 팬데믹 시대의 성생활 지침까지 발표했다. 가능하면 섹스를 자제할 것, 부득이한 경우에는 마스크를 쓰고 할 것, 키스는 하지 말 것 등이다. 상상만 해도 우스꽝스러운 가이드라인이지만, 지금의 현실이 상황을 그렇게 만들고 있으니 마냥 키득거릴 수만도 없는 일이다.

머지않아 이 지긋지긋한 전염병이 잦아들면 다른 일상의 것들이 그렇듯이, 키스도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위험한 키스가 아닌 클림트의 '키스'와 같이 아름다운 키스로!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대체텍스트
김선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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