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번번이 '사업주 편'…중간착취 시장 확대해온 정부

입력
2021.05.27 11:00
수정
2021.06.07 10: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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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⑥정부의 간접고용 관련 입법 시도 들여다보니

편집자주

부당한 현실을 보도했는데, 그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만큼 기자들을 허탈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지난 1월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획기사에서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 착취 실태를 보도했고, 2월부터는 중간착취 금지 입법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을 담은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2015년 연말, 파견 업체들이 몰려 있는 경기 안산시 안산역 일대 사무실 앞에서 구직자들이 파견직 노동자 모집공고를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5년 연말, 파견 업체들이 몰려 있는 경기 안산시 안산역 일대 사무실 앞에서 구직자들이 파견직 노동자 모집공고를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동자 보호'냐 '규제 완화'냐.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시장에서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두 개의 명제이다. 중간착취의 문을 연 '파견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파견법)' 제정(1998년) 이후 23년 동안 정부가 발의한 법안을 살핀 결과, 답은 명백했다. 정부가 끊임없이 던져 온 시그널은 바로 후자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정부가 이제껏 발의한 간접고용 법안은 7건(법률용어 한글화 관련 개정안 2건 제외)이다.

전부 파견법 개정안이었고, 3건이 국회에서 가결(수정 가결 포함)됐다. 2004년 11월 국무회의를 거친 정부의 파견법 개정안 골자는 재계의 숙원이었던 '파견 허용 대상 모든 업종으로 확대(네거티브제)'였다. 파견 허용 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려는 시도도 담겼다. 당시 정부는 "현행 파견 가능 업무가 26개로 한정되면서 인력 수요에 부응하지 못해 불법 파견 및 위장도급의 원인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아지자 이를 더 이상 불법으로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꼴이다.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2년을 표류하다가 파견 대상 업무를 다소 늘리되 그대로 포지티브 방식으로 하고, 파견 기간도 2년으로 유지하는 수정안으로 17대 국회에서 가결됐다. 파견 근로 2년 경과 시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고용 간주' 조항은 직접 고용한다는 '고용 의무' 조항으로 후퇴했다.

2000년 파견법 철폐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 노동자. 한국일보 자료 사진

2000년 파견법 철폐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 노동자. 한국일보 자료 사진

파견 근로자가 직고용 근로자와 같은 일을 할 경우에 차별금지 및 시정 제도를 도입하고, 파견업체가 원청으로부터 받는 노동자 인건비, 4대 보험료, 부가가치세 등을 모두 합한 금액인 '파견 대가'를 노동자에게 서면으로 고지해야 한다는 의무도 이때 생겼다. 드물게 노동자 보호의 취지가 있는 조항이었지만, 현실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18대 국회는 '서면 고지' 관련 처벌을 바로 약화시켰다. 파견 노동자에게 파견 조건 등을 서면으로 미리 알려주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던 것을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로 바꿨다. 그나마 과태료 부과는 2012~2020년 단 2건에 그쳤을 정도로 사문화된 법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파견업체에 유리한 규제완화는 계속됐다. 제한 능력자(미성년자·피성년후견인·피한정후견인) 또는 파산을 이유로 허가가 취소된 사람은 3년이 지나지 않으면 근로자파견 사업 허가를 내주지 않았지만, 결격 사유가 해소되면 바로 허가를 내주도록 하는 파견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통과된 것. 고용노동부는 당시 "파견 사업을 취소하는 것도 모자라 3년간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이중 제재"라고 했다.

국회 가결에 실패한 정책들도 꾸준히 중간착취 시장을 넓히려는 시도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파견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고 사업주와 근로자가 합의할 경우 또 2년의 연장을 허용, 사실상 '4년제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또 일자리 창출 등의 명목으로 제조업에도 파견이 가능하게끔 밀어붙였으나 실패했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시행령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의 파견법 개정에 따라 2007년 바뀐 시행령은 파견 허용 업종을 한국표준직업분류상 26개 범위에서 32개로 넓히는 내용이었다.

2009년에는 고용부 장관이 위반 행위의 정도, 횟수, 동기 등을 고려해 파견사업주의 과태료 액수를 줄여줄 수 있도록 했다. 파견업체 편의를 봐준 것이다. 해당 조문은 2011년 사라졌다.

정부가 중간착취와 관련해 그나마 관심을 기울여온 영역은 유료 직업소개소다. 직업소개요금은 고용부 고시에 의해 정하고 있어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개입이 가능하다.

유료 직업소개소 수수료는 구직자로부터는 아예 받지 못하도록 한 적도 있었고, 월 임금의 4% 미만의 금액을 떼가는 것만을 허용하는 등 줄곧 엄격히 규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현재 구직자에게 받는 소개비는 최대 3개월간 월급의 1%이며, 회사(구인자)로부터는 임금의 10%까지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런 규제가 잘 작동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직업소개소가 실상은 10% 이상을 떼어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관리·감독은 부재하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소개 수수료 과다 징수(직업안정법 제19조 3항 위반)로 단속된 건수는 11년간(2010~2020년) 13건에 불과했다.

경기지역의 한 노동권익센터 활동가는 "정부는 직업소개소 수수료를 단속할 의지가 없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아무리 이런 사례가 있다고 가져가도 노동청에선 별 반응이 없다"면서 "단속해도 이름만 바꿔 다시 차리거나, 불법 인력소개소도 워낙 많다고 난색을 표하곤 한다"며 정부의 의지 부재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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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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