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압력 쏟아지면 이렇게 쉽게 변경?…GTX-D 포퓰리즘 논란

입력
2021.05.18 04:30
1면
구독

김포시민 반발에 정치권 숟가락 얹자
국토부 GTX-B 선로 공유 이어 강남 직결까지 검토
'달빛내륙철도' 등도 민원 강하면 해주나

이낙연(맨 앞줄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7일 오전 출근시간 경기 김포시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혼잡한 지하철 출근길 체험을 하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 측 제공

이낙연(맨 앞줄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7일 오전 출근시간 경기 김포시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혼잡한 지하철 출근길 체험을 하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 측 제공

경기 김포시에서 출발해 부천시에서 멈추는 서부권 광역급행철도(일명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D) 노선안이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서울 연결을 바랐던 김포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이어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노골적인 압력까지 더해지자 국토교통부는 ‘노선 변경'으로 돌아섰다. 심지어 강남 직결까지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는 “건설 계획이 아닌 운영 측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는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교통 전문가들은 “여론에 휘둘려 정부가 국가 철도망 사업을 이렇게 쉽게 뒤집는 건 처음 본다”며 정책의 신뢰 훼손을 지적하고 있다.

"사업성 없다"더니 적극적 검토로...오락가락 국토부

17일 당정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달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에 반영한 김포~부천 간 GTX-D 노선을 서울 여의도와 용산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로선 GTX-B(인천 송도~남양주 마석) 선로 공유가 유력하지만 국토부는 강남 직결 방안도 논의 중이다. 지역 민심과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강남 직결 노선으로 변경될 경우 내달로 예정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확정·고시도 지연이 불가피하다.

다만 국토부는 아직까지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에 포함된 건설 계획과 노선 변경이 아니라 운영 차원의 검토라고 선을 긋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운영 계획은 건설 계획 발표 이후에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며 “무조건 D노선이 서울까지 안 간다는 오해가 있어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더 전향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급한 대로 GTX B노선을 활용해 부천에서 환승 없이 서울까지 D노선을 연장 운행하겠다는 의도이지만 김포시민의 반발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김포 풍무동에 거주하는 A씨는 “B노선 선로를 이용한다고 해도 교통 여건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며 “처음부터 강남과 하남까지 연결되는 노선으로 발표를 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왜 굳이 부천에서 멈추게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GTX-D 노선 연장을 검토한다는 게 알려진 뒤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강남 직결을 촉구하는 글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민심은 갈라지는 분위기다. 한 네티즌은 “김포를 얻는 대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떼 쓰면 다 들어주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GTX-D 노선 변경이 가시화되자 다른 지역 시민들도 덩달아 철도망 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충북 영동군 광역철도 유치 추진위원회는 이날 영동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충청권 광역철도 대전~옥천 노선의 영동 연장을 촉구했다. 4차 국가철도망 계획안에서 제외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업인 ‘달빛내륙철도(대구~광주)’ 건설 요구 민원이 쏟아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선거 앞두고 고개 쳐드는 포퓰리즘

지난달 국가철도망 공청회에서 "GTX-D 서울 직결에는 10조 원이 필요하고 기존 노선과 중복돼 사업성이 없다"고 한 국토부가 한순간에 얼굴색을 바꾼 건 정치권의 압력과 무관치 않다. 김포의 성난 민심을 확인한 여당은 D노선 변경을 꾸준히 압박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부지역에 상당한 민심의 이반이 있다”며 노선 재검토를 제안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17일 오전 출근시간에 ‘지옥철’로 불리는 김포골드라인을 체험한 뒤 노형욱 국토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개선 여지가 있느냐”라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강남 직결 부분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지역의 민원에 정치권이 가세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뒤트는 건 선거철마다 반복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계획은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김해 신공항에서 가덕도 신공항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GTX-D도 노선안 변경이 예고되면서 ‘포퓰리즘 논란’도 커지고 있다.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정치적 판단에 의해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며 “민원이 엄청 들어오는 사업이 있으면 추가 검토사업으로 돌렸다 5차 계획 때 검토를 해야지, 이런 식이면 전국에서 안 들고 일어날 사업이 어디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논리적으로 결정된 사업을 여론 때문에 바꾸면 다른 지역에서 요구하는 민원도 반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권 유력인사들의 GTX-D 노선안 변경 요구. 그래픽=김대훈 기자

여권 유력인사들의 GTX-D 노선안 변경 요구. 그래픽=김대훈 기자

GTX-B노선을 활용한다고 해도 D노선의 서울 연장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B노선을 공유할 경우 두 노선 모두 용량이 줄어들어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시행하면 양쪽 모두 사업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승필 서울과학기술대 철도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토부가 처음부터 너무 엄격하게 (김포~부천으로) 선을 그었다”면서 “D노선은 애초에 강남을 포함해 수도권 서남부 동서간을 연결해주는 교통망이 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
최다원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