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한강 대학생 사건' 음모론

입력
2021.05.16 17:44
수정
2021.05.16 17:4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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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민씨 사건 둘러싸고 근거 없는 의혹 제기 무성
친구 신상털기에 "고위직 친척 있다" 미확인 주장도
경찰 "수사에 지장"… 전문가들 "가해행위 될 수 있어"

16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열린 '고 손정민군을 위한 평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열린 '고 손정민군을 위한 평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22)씨 사건을 둘러싸고 각종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실종 당일 손씨와 술을 마신 친구 A씨가 사건에 개입됐다는 근거 없는 의심에 기댄 채 일부 시민은 확인되지 않은 A씨의 신상정보나 가족관계를 인터넷에 유포하거나 집단 행동에 나섰다. 이런 여론재판식 행태는 자칫 경찰 수사의 신뢰성을 훼손해 소모적 의혹만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16일 오후 반포한강공원에서는 손씨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이 주도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1,200여 명이 접속했다. 한 지방 거주자는 "새벽부터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며 집회 참가 과정을 중계했고, 직접 제작한 피켓 사진을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손씨 죽음을 둘러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손씨 죽음을 둘러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평화로운 시위를 준비하겠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채팅방이었지만 이곳에선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이 기정사실화된 채 공유되고 있었다. 한 참여자는 A씨의 큰아버지가 현직 법무부 고위직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가까운 친척의 이름과 직업이라며 근거 없는 신상정보를 열거했다. 일부 참가자는 "실종 당일 손씨가 약물에 의해 사망했다" "마취 주사를 맞았다" 등 경찰 수사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억측을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사건 현장 일대에서 A씨의 사라진 휴대폰을 수색 중인 경찰을 향해 "찾는 척 연기한다"는 식의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과도한 추측이나 '신상 털기'를 자제하자고 했던 이들은 "A씨 측이 고용한 알바" "정치권에서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공격에 직면했다.

16일 오전 서울 반포한강공원 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실종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22)씨 친구의 휴대폰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서울 반포한강공원 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실종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22)씨 친구의 휴대폰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A씨 개인에 대한 공격도 도를 넘는 양상이다. 인터넷상에 A씨 사진이 유포되는가 하면, 유튜브에선 A씨를 소재로 한 의혹 제기 영상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최근엔 자신이 A씨의 대학 친구라고 주장하며 A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되기도 했다.

경찰은 "각종 억측은 수사에 지장을 줄 뿐"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에게 법무부 고위직 친척이 있다는 루머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고 일축했다. 앞서 인터넷에선 A씨 아버지와 외삼촌이 전현직 경찰 간부라는 루머가 퍼져 당사자들이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손씨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건 초기 제기됐던 의혹에 A씨 측이 별다른 방어를 하지 않는 과정에서 무분별한 음모론이 퍼졌다"며 "또 다른 이의 인생이 망가지지 않도록 차분히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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