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모두 한계 드러났다… 제 3세력 등장해야"

입력
2021.05.13 17:00
[정영오의 직격]
주대환 만민토론회 준비위원(미래대안행동 상임 고문)

주대환 만민토론회 준비위원은 9일 한국일보사에서 "코로나19로 공론의 장이 크게 위축된 것이 안타까워, 123년 전 만민공동회 정신을 계승한 토론회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지난 10일 ‘탈진영’을 표방하는 다양한 분야 원로들이 모여 ‘만민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는 주로 문재인 정부 4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지만, 좌ㆍ우를 망라한 인사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 토론회 준비위원인 주대환(67) 미래대안행동 상임고문을 지난 9일 만나 토론회를 열게 된 계기와 현 시국 등에 관해 물었다. 주 고문은 1970년대는 학생운동으로, 80년대는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을 조직하는 등 노동운동으로, 90년대 이후는 한국노동당ㆍ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 운동을 해왔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진보 진영에 대해서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며 자신을 ‘신좌파’라고 규정한다.

_오랜만에 대외 활동을 재개했다. 그런데 왜 이번 인터뷰를 거듭 사양했는가.

“활동이라고 해도 젊을 때의 활동과 사회원로라 불리는 나이에 적합한 활동은 다르다. 일정한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한다. 조심스럽게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으려고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 손자가 살아갈 미래인데, 사실 정치 분야를 벗어나서 사회 경제 과학 기술 영역에 대해서는 미래는커녕 현재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생활에 진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할 수는 없다. 새로운 요리는 나의 일이 아니다. 나는 다만 다음 세대가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설거지를 하려고 한다.”

_만민토론회를 개최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 4년을 넘기며 선동정치가 얼마나 무능하고 허망한 것인지가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해결되는 문제가 거의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공론의 장이 닫히고, 서너 명씩 모여 뒷담화나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창립 멤버인 박인제 변호사,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했던 김진욱 변호사 등과 진영을 망라한 원로들이 모이자고 뜻을 모았다.”

_왜 5월 10일이고, 만민토론회인가.

“5월 10일은 문재인 정부가 4년 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마침 1948년 이 땅에서 최초의 자유, 보통 선거를 통해서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뜻깊은 날이기도 하다. 또 123년 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구할 길을 모색하고자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모였던 만민공동회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명칭을 만민토론회로 정했다. 현재 진보와 보수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가 단절될 만큼 갈등이 심하지만, 그 뿌리는 하나다. 123년 전 개화파가 그 뿌리다. 공동의 뿌리를 상기하는 것이 대화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날로 돌아가 다 함께 대화를 해보자는 것이다.”

_탈(脫)진영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른바 ‘87년 체제’가 갖춰진 이후 진영 대결도 격화되고, 지식인들은 저마다의 진영 논리에 갇히는 현상이 심해져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진영에 구속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고, 그들이 힘을 모으고 역할을 해야 한다.”

_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제3지대에서 창당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만민토론회를 이와 연관 짓는 이들도 있다.

“기성의 보수와 진보가 한계를 드러내고 무너진 지금, 프랑스의 마크롱과 같은 제3세력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큰일을 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사회통합과 미래지향을 부르짖는 지식인들이 하나둘 늘어나면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_하지만 토론회 발제문을 보니 보수 진영의 문재인 정부 비판과 차이가 없다.

“만민토론회를 주최하는 우리는 다만 판을 벌일 따름이다. 답답한 사람은 누구나 나와서 이야기를 하라는 거다. 다만 처음이라 몇 분에게 발제를 부탁했고, 토론회 참석자의 다양한 주장 중 일부일 뿐이다. 123년 전 만민공동회에서는 백정에서 면천된 지 며칠 되지 않는 박성춘, 열아홉 소년 안창호가 연설하고, 그 연설을 통해서 새로운 지도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코로나19 방역 사정이 나아지면, 그야말로 답답한 사람이면 남녀노소가 나와서 연설할 수 있는 토론의 광장이 열리기 바란다.”

_만민토론회를 ‘민주적 상식의 건강한 토론의 장’이라고 규정했는데, 토론이 진행되려면 양 진영의 정체성과 고유의 가치에 대한 공유가 전제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어떻게 나뉘나.

“나는 보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서구의 보수는 귀족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귀족 신분 자체가 철저히 무너졌기 때문에 서양 기준의 보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는 조금 안다. 우리나라 진보는 식민지 시절의 후진국형 진보다. 여전히 반외세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독립운동 시대 정서에 머물러있다. 우리나라는 해방된 지 오래고, 세계화의 조류 속에 선진국의 반열에 든 지도 오래다. 그러니 우리나라 진보의 관념과 정서는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다.”

주대환 준비위원장은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활동은 다음 세대가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이전 세대가 남긴 밥상과 그릇을 설거지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_문재인 정부에 대한 보수 우파 비판의 키워드는 ‘무능’ ‘포퓰리즘’ ‘위선‘(내로남불)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문재인 정부는 ‘무능’한가.

“우파는 민주화 이후 보여주기식 단기 정책에 급급해 경제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민주화를 비효율 무능의 원인으로 연결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현 정부의 무능은 여러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지금 정부는 86운동권이 주류를 형성한 정치 세력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 환경운동가, 사회ㆍ여성단체 등이 연합해 정권을 획득했다. 다양한 세력이 연합한 만큼 대통령의 의견 수렴 노력이 중요한데, 이를 소홀히 했다.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이다. 탈원전에 따른 산업계의 충격을 헤아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 없이 이념적으로 선언부터 했다. 최저임금 인상, 52시간제 도입 등에서 이런 실책이 거듭되다 보니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_우파가 현 정부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주로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확대가 중남미 좌파 정권의 ‘퍼주기’라고 공격할 때이다. 반면 서구 선진국에서 문제 되는 포퓰리즘은 외국인 노동자나 소수자 배제와 차별로 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파 역시 다른 의미에서 포퓰리스트 정당이란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어떤 포퓰리즘이 더 문제인가.

“현 정부의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확대를 ‘퍼주기’라고 공격하는 것은 동의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복지 정책은 중산층 이상에 주로 혜택이 가도록 설계돼 있었다. 이제라도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외국인 노동자 배제는 현 정부와 우파 모두가 공통으로 외면하는 문제이다. 주로 힘들고 위험한 저임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단기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오는 현 제도는 중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험하고 힘든 일에는 그에 걸맞은 임금이 지급되도록 제도화해 국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구에서도 이민 정책은 정권 운명을 좌우할 만큼 민감한 문제이지만, 정당은 지향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권을 내줄 각오까지 하며 정책을 추진하고, 이로 인한 선거 패배를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유권자의 거센 반발에도 “미래에도 강한 독일이 되려면 난민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는 신념을 관철하고 결국 정권을 내줬다. 우리 정치권은 여야 구분 없이 이민정책뿐 아니라,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개혁같이 인기는 없지만, 꼭 필요한 개혁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침묵과 외면이 가장 위험한 포퓰리즘이다.”

_좌파의 위선, ‘내로남불’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먼저 평생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을 해온 나 자신부터 위선적이라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아내도 함께 노동운동을 했으니 수입이 거의 없었지만 다행히 부모님이 여유가 있어 자식들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고 중산층에 자리 잡았는데, 이를 다행이고 고맙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노동 현장에 들어가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태도는 위선적이란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당시 함께했던 현장 동료들은 이런 부분과 이념적 다양성에 대해 용인과 이해의 폭이 넓다. 오히려 같이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하다 중도에 포기하고 지도층이 된 인사들이 도덕적 부채 의식 때문인지 더 편협하고 과격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일부 우파 인사들이 “자신들은 같은 잘못을 했어도 최소한 정의로운 척은 하지 않았으니 위선적인 좌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동시에 좌파 진영 중 전향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의 위선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이다.”

_전향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란 누구인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형식적 민주화를 달성한 이후 운동권은 이념적 혼란기를 맞게 된다. 89년 동유럽 공산정권의 연쇄 붕괴, 91년 소련의 해체 등이 잇따랐다. 당시 나는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조직원 600여 명이 모여 서구 사회민주주의 가치를 추종하는 ‘신 노선’ 토론과 투표를 거쳐 노선 변경을 민주적으로 결정했다. 당시 노회찬 전 의원,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함께했다. 하지만 오늘날 진보 주력인 86세대 중 다수가 이렇게 전향할 기회를 놓친 주사파다. 물론 86세대가 30여 년 전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떳떳하게 전향을 한 것과 안 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과거를 쿨하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핑계를 찾고, 정신적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정직하지 못하다. 흔히 말하는 위선 이전에 사상적 부정직과 혼란, 철학의 빈곤이 더 큰 문제다.”

_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 정부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 여러 개선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기 위한 개헌의 목소리가 나온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만민토론회 주최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다양하다. 적극적 개헌론도 일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정치풍토에서는 대통령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5년 단임제는 기형적 대통령제이니만큼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은 필요하다. 대통령제 유지의 이유는 우리나라 정당 체제의 미성숙이다. 내각책임제가 잘 작동하는 나라는 대부분 귀족정치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 신분제에서 선출제로 바뀌었을 뿐 정당은 귀족 정치의 대체물이다. 우리는 신생국이었던 미국의 선택처럼 대통령제가 적합하다. 또 지난 70년간 좋은 성과도 거두었지 않나.”

_미ㆍ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외교 노선의 재검토 요구 목소리도 커진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렇게 잘못된 대북정책이 미국과 중국에 대한 외교정책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않는다, 미국 미사일 방어체제(MD) 편입하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소위 ‘3불 정책’을 내세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왔으나 지속 가능하지 않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 단절 등 피해를 각오하더라도 친미 노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대북관계에도 돌파구가 생길 것이다. 이상재 서재필 등이 1896년 설립한 독립협회도 청과 일본 러시아 등의 강국 사이에서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친미노선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들의 고민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_양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들려줄 조언이 있다면.

“민주당은 하루속히 ‘주사파의 검은 구름’을 거둬내야 한다. 이런 진통을 겪어야 진정한 진보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상층을 지칭하는 ‘강남 좌파’는 민주당에 긍정적 신호이다. 다양성과 개방성, 소수자 보호 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지지층을 넓혀야 할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현 정부에 불만이 큰 20ㆍ30대를 포섭할 수 있도록 변신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영입하는 젊은 인재들을 보면 하나같이 ‘부잣집 도련님’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이어받는다고 하지만 이승만과 박정희는 당대에 가장 진보적인 지도자들이었다. 비록 집권 후반에 실정으로 인해 추락했지만, 초기에는 당시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하층 민중과 청년의 지지를 받았다. 또 영국 보수당이나 미국 공화당이 오히려 하층 노동자의 지지를 받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과연 지금 한국 보수가 하층 노동자와 청년을 위해서 하는 일이 있는가. 민주당이 강남좌파로 지지층을 넓힌다면, 국민의힘은 ‘강북우파’에 다가가야 한다.”

_많은 이들이 선생을 ‘전향한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얘기를 나눠 보니 영ㆍ미 진보주의나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자와 가깝다. 진작에 보수로 넘어간 것이 아닌가.

“나는 영ㆍ미 진보에 공감한다.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와 미국 민주당의 루스벨트 진보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조봉암의 후예다. 한국전쟁 당시 개전 3일 만에 군대를 보내서 대한민국을 구한 미국과 영국은 당시에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 트루먼 정부, 보수당이 아니라 노동당 애틀리 정부였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지만, 나는 유엔이 만든 가장 진보적인 나라 대한민국의 주류다.”

정영오 논설위원
논담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