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 변방에 '야생의 대사관'을 열다

입력
2021.05.17 04:30
Sharon Matola(1954.6.3~ 2021.3.21)

밀림 생존훈련을 받은 공군 베테랑으로, 생물학도로, 서커스단 댄서 겸 맹수조련사로 부유하듯 떠돌던 28세 여성 샤론 머톨라가 카리브해 작은 나라 벨리즈에서 동물원을 연 사연도 무척 극적이지만, 더 특별한 것은 "좋은 동물원이란 게 뭔지를 보여주는 곳"이라는 그의 동물원이었다. 그는 만 38년 동물원을 운영하며, 벨리즈인의 자연-생태와 생명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 1988년 무렵의 머톨라. 위키피디아(Belize Zoo) 사진

벨리즈(Belize)는 '카리브해의 보석' 이라 불리는 중앙아메리카 작은 나라다. 국토 면적(2만2,970㎢)은 경기도 약 2배. 그 중 60%가 야생의 우림이고, 25개 자연보존지구가 있다. 카리브해와 면한 386km 해안선 연안은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 다음으로 긴 산호초 띠로 둘렀고, 450여 개 원시의 섬들이 구슬처럼 꿰어 있다. 그런 환경 덕에 주력산업도, 코로나 사태로 지금은 어렵지만, 농어업에서 관광서비스업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GDP의 10% 남짓이던 관광업 비중은 2019년 44.7%였다.

긴 식민지 침탈을 겪고도 온전했던 건 이렇다 할 자원이 없어서였다. 2011년까지 전 종주국 영국이 군대를 파견해 국경을 지켜준 덕에 정정이 불안한 이웃국의 침탈을 면한 덕도 봤고, 인구 압박도 적어 1981년 독립 당시는 약 20만 명이던 인구는 근년에도 40만명 정도다.

"좋은 동물원이 뭔지 보여주는 곳"

벨리즈 시민들에게 자연-생태의 가치를 일깨운 존재가 있었다. 결코 동물원 같지 않은, 벨리즈 유일의 '벨리즈 동물원'이었다. 그 동물원은 83년 문을 연 때부터 지금까지, 다치거나 병들거나 어미를 잃고 구조된 녀석들이 한 식구처럼, 매너만 지키면 철창 없이 사는 곳이다. 2021년 현재 식구는 45종 200여 마리. 다리 하나를 잃은 재규어 '엔젤'과 벨리즈의 스타라는 고아 테이퍼(맥貘) '에이프릴(April)' 등 모두가 사연이 있고 이름이 있다. 시민들도 그들을 고유명사로 부르며, 이웃처럼 안부를 챙긴다.
한마디로 그 곳은 진귀한 쇼의 공간이 아니라, 종의 존재를 이해시키고 공존의 가치를 도모하는 야생의 대사관 같은 곳이고, 국제야생보존트러스트(WPTI) 전 의장 빌 콘스턴트(Bill Konstant)의 말처럼 "좋은 동물원이란 게 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곳"이다. 시민들은 'I Love The Belize Zoo'란 문구의 스티커를 자랑삼아 자동차 범퍼나 바이크에 붙이고 다닌다.

동물원만큼이나 유명한 게 설립자 샤론 머톨라(Sharon Matola, 1954.6.3~ 2021.3.21)다. 서커스단 댄서 겸 맹수조련사로 일하던 무일푼의 28세 여성이 맨몸으로 야생에 울타리를 두르고 동물원 간판을 내건 사연서부터, 동물들 먹이느라 닭을 키워 팔고 '막노동' 같은 관광가이드로 5년 넘게 뛰어다닌 초기의 고생, 무슨 행사 소식만 들리면 배낭에 드레스를 챙겨 넣고 낡은 모터바이크로 달려가서는 동물원 사진첩을 펼쳐 보이며 후원을 청하던 일상, 때로는 배낭에 보아뱀 '벨보아'를 담아 초등학교를 돌며 자연-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초청장(어린이 무료)을 돌리고, 동요를 짓고 동화책을 내 읽힌 일, '국가의 공적(enemy of the state)'이란 비난까지 들으며 댐 건설 반대운동을 주도한 일…. 그의 이름은 몰라도 '주 레이디(Zoo Lady)'를 모르는 이는 드물었고, 불량배들도 그를 마주치면 돌아설 정도였다. 벨리즈 출신인 현 캐리비언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콜린 영(Colin Young)은 "벨리즈 시민들이 갖게 된 자연에 대한 이해의 대부분이 머톨라에게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동물들과 함께 뒹굴며 살 수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던 벨리즈의 '주 레이디' 샤론 머톨라가 3월 21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그의 동물원 식구는 사냥 등으로 다치거나 버려지거나 어미를 잃어 생존력이 없는 토종 동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식구들에게 이름을 붙여 사연과 함께 시민들과 공유했고, 시민들은 이웃의 안부를 챙기듯 동물들의 근황을 궁금해했다. 위키피디아(Belize Zoo) 사진.

그는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한 양조업체 판매임원 아버지와 로욜라대 행정직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다. 여느 아이들처럼 벌레나 나비, 다람쥐에 열광했지만 도시에서 성장했고, 고양이 알러지도 있었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공군에 입대, 부대원 2,000여 명 중 여성은 13명뿐이던 스페인의 주둔군 기지에서 2년 반을 복무했고, 76년 부대 치과의(Jack Schreier)와 결혼했다. 제대 후 남편 고향인 아이오와에 정착해 아이오와대에 입학(러시아어 전공)했다가 이내 이혼하고 플로리다로 이주해 81년 새러소타의 뉴칼리지를 졸업했다. 전공은 진균학과 동물행동학. 군 복무 시절 파나마 정글서 야생적응훈련을 받으며 열대의 매력에 빠져든 영향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81년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전공 책을 읽던 그에게 루마니아 출신의 한 서커스단 맹수 조련사가 조수 자리를 제안했다. 학비도 벌 겸 약 3개월여 간 사자들과 어울리던 머톨라는 멕시코 순회 서커스단이 백인 여성 무용수를 구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았다. 밤에만 일하고, 급여도 쏠쏠하고, 무엇보다 중남미 여행을 많이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좋아하는 춤을 추며 돈도 벌고 낮엔 중미 지역 버섯 현장연구도 병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는 잽싸게 응했는데, 전공책과 관찰 및 표본채집 도구를 챙겨 집결지에 갔더니 다른 이들은 모두 하이힐에 화장품 케이스를 들고 있더라는 이야기.
댄서 겸 조련사 보조 생활은 몇 달 뒤 대규모 서커스단에서 쇼 도중 호랑이에게 물리는 사고를 겪고는 끝났다. 82년 5월, 플로리다로 되돌아오며 반려 원숭이 '로키(Rocky)'의 까다로운 검역-통관을 면하려고 안내인을 고용해 리오그란데 강 밀수 루트로 밀입국한 일화도 있다. 그는 수배를 피해 플로리다로 피신했다는 시카고 밀주업자 할아버지의 유전자 영향이라고 말했다.

다 죽일 수 없어 내건 동물원 간판

영국인 유명 자연다큐 감독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의 벨리즈 초대장을 받은 게 귀국 직후였다. 다큐 모델 동물들을 보살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부 때인 80년 어류분류학 현장실습차 벨리즈 산호섬 케이코커(Caye Caulker)에서 '꿈 같은 석 달'을 보낸 기억이 있던 그는 다시 곧장 짐을 쌌고, 9월 벨리즈시티에서 28마일 떨어진 밀림의 변방에 정착했다. 하지만 석 달 뒤 자금난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포스터는 재규어와 보아뱀 등 야생동물 20마리를 머톨라에게 떠맡긴 채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프로젝트 주관사인 영국 모회사는 머톨라에게 전화로 "동물들은 풀어주거나 도살하라"고 했다고 한다. 95년 인터뷰에서 머톨라는 "대부분 야생 적응 능력이 없는 녀석들이었다. 내 선택지는 모두 죽이든지 돌보든지 둘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83년 1월 나무 판자에 노란 페인트로 '벨리즈 동물원'이라 적은 간판을 내걸었다. 팩스도 없고, 근처에 마을도 없고, 가장 가까운 서부고속도로는 포장도 덜 된 때였다. 시민들은 동물원 자체를 낯설어했다. 신생 정부 역시 신경써줄 형편도 의지도 없던 시절이었다. 83년 말 동물원 허가를 내주면서 정부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건넨 지원금 250달러를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가난한 국가가 적으나마 예산을 떼어 줄 가치를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었다.
머톨라는 동물원 한편에서 닭을 키워 식용으로 팔고, 과테말라 마야 유적지 티칼(Tikal)의 관광가이드로 하루 12시간씩 5년 넘게 일하며 버텼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비포장길 3마일 너머 영국군 단골 술집 'JB's Watering Hole' 주인에게 혹시 따분해하는 여행자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부탁도 했다. 군인들은 초기 동물원 길 닦기 등에 일손을 보탰고, 머톨라는 90년대부터 주둔군 라디오방송 DJ로 보답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후원금을 모으러 돌았다. WPTI 전 의장 콘스턴트가 그를 알게 된 것도 84년 마이애미의 한 행사장에서였다. "샤론은 동물원 앨범을 들고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면 누구든 붙들고 대화했다.(...) 여느 동물원과는 태생부터 다른, 예사롭지 않은 그의 프로젝트에 나는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해리슨 포드 주연으로 벨리즈에서 촬영된 86년 영화 'Mosquito Coast'의 자문을 맡았고, 포드의 후원금도 받았다. 그렇게 차츰 동물원이 알려졌다.

어미를 잃고 구조된 동물원의 막내 오실롯 '피피(Fifi, 위)'와, 식용으로 먹으면 몸에 반점이 생긴다는 미신의 주인공인 점박이 테이퍼, 재규어, 금강앵무(아래 왼쪽부터). 모두 벨리즈 밀림에 서식하는 토착종이다. belizezoo.org

동물원 식구는 대부분 토종이어서 시민들에겐 낯익고, 다수는 사냥감이거나 가축과 농작물을 해치는 애물들이었다. 80년대 벨리즈를 방문한 여왕 엘리자베스2세가 스테이크로 먹었다는 파카(Paca, 대형 설치류)도 동물원 식구였다. 일부는 께름칙한 미신의 주인공이었다. 벨리즈인에게 개미핥기는 콧구멍으로 개의 뇌수를 빨아먹는 괴물이었다. 머톨라의 동물들은 그런 미신과 '사냥감'이라는 인식과 싸워 공생의 자격을 인정받아야 했다.
머톨라가 병든 고아 테이퍼 '에이프릴'을 구해 동숙하며 바나나셰이크를 먹여 살린 이야기, 불구의 재규어와 동거하게 된 이야기 등 저마다의 사연이 도움이 됐다. 관광객이 애완용으로 구입했다가 차 시트를 다 뜯어놓는 바람에 버리고 갔다는 원숭이 한 쌍, 머리에 총알이 박힌 테이퍼 '불릿헤드(Bullet Head)'도 있었다. 그는 몇 곡의 동물 동요와 두 권의 동화책을 써서 아이들에게 읽혔다. 거미원숭이 우리의 표지판 "나쁜 애완동물을 만드는 건 인간입니다! 우리는 인간 유인원보다 원숭이들과 더 많이 어울려야 해요. 그런데 인간들이 애완용으로 어미를 죽이고 우리를 훔쳐가요", 검은매 표지판 "나는 위대한 블랙호크지만, 사람들은 커다란 칠면조처럼 우리에게 총질을 해대요", 앵무새 표지판 "제발 우리를 자유롭게 살게 해주세요. 사냥하지 말아 주세요.(...) 야생의 미래를 허락해 주세요"도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그는 "아이들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절반은 승리한 셈"이라고 말했다. 야생에서 포획된 생존력 있는 동물은 일절 들이지 않았다.

"아이들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절반은 승리한 셈"

1992년 9월 'Sun-Sentinel' 인터뷰에서

동물원이라면 흘겨보던 여러 단체와 재단이 70만 달러 목돈을 후원했다. 동물원은 91년 30에이커의 너른 공간을 얻고 야생교육센터도 지었다. 하지만 머톨라는 원년의 움막에서 재규어 '엔젤', 테이퍼 '에이프릴'과 함께 말년까지 거주했다. '에이프릴'이 가출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찾다가 지친 머톨라가 에이프릴을 간병하며 늘 듣던 '도어스'의 노래 'Light My Fire'를 크게 틀었더니 그걸 듣고 에이프릴이 제 발로 돌아왔다는 일화가 있다. 동물원 직원은 현재 32명(코로나 이전 58명). 모두 어릴 적부터 동물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그들은 머톨라의 주선으로 전문 사육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벨리즈 서부 자연보존지구를 관류하는 마칼(Macal) 강 유역은 테이퍼와 재규어, 금강앵무(scarlet macaw)의 번식지이자 '생물종의 보고(biogem)'다. 캐나다 자본과 벨리즈 정부가 2001년 그 유역에 댐(Chalillo Dam) 건설을 시작했다. 소비 전력의 1/3을 공급하던 멕시코와의 계약이 곧 만료될 상황이었다. 머톨라는 국제환경단체 및 학계와 연대해 댐 저지운동에 나섰다. 수질 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불가피하며, 환경영향평가도 조작됐다고 고발했다. 정부는 그 운동을 "벨리즈를 저개발 상태로 묶어두려는 인종주의적 음모"라고 비난했다. 머톨라 역시 "시민을 가난하게 하려는 부유한 백인 외국인"이자 "국가의 공적"이 됐고, 동물원 인근에 대규모 쓰레기 매립장을 조성하겠다는 협박도 당했다. 머톨라 등이 제기한 소송은 2004년 영국 추밀원 상고심에서 패했고, 완공된 댐은 유역 생태계에 치명상을 입혔다. 2009년 보도에 따르면 댐 침전물 무단 방류로 강물은 식수는커녕 수영도 못할 지경이 됐고, 어부들은 일터를 잃었고, 전기요금은 더 비싸졌다. 미국 환경저널리스트 겸 작가 브루스 바콧(Bruce Barcott)은 2008년 '금강앵무의 마지막 비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구하기 위한 한 여성의 분투'란 제목의 논픽션으로 머톨라와 댐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벨리즈 동물원의 모든 전력은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된다. 정부 대변인(Selwyn King)이 "샤론의 활동이 너무나 정력적이어서 때로는 두 명인가 싶을 때도 있다"고 말한 건 잘 지내던 90년대 중반이었고, 한 당국자가 그를 토종 관모독수리(harpy eagle)에 비유하며 "일단 발톱을 박으면 결코 놓는 법이 없다"고 말한 건 싸움이 한창일 때였다. 어쨌건 댐의 재앙으로 벨리즈 정부와 시민들은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2019년 지구의 날 현지 미국대사관은 "벨리즈 청년들의 롤모델"인 머톨라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88년 인터뷰에서 "벨리즈에서 평생 살 것"이라고, "지금 입은 이 재킷도 단돈 25센트짜리"라고 말했다. 90년 그는 벨리즈인으로 귀화했다. 2017년 그는 동물원 운영권 일체를 직원들에게 물려주었고, 숨지기 2주 전까지 동물들의 야생복귀훈련을 도우며, 어린 동물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1992년 인터뷰에서 그는 벨리즈에 오던 무렵만 해도 동물원 운영은커녕 "환경에 대한 생각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동물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동물을 알아가며 변화해온 벨리즈 시민들이 그를 환경보호론자로 만들었다고, "(그렇지만) 결코 엘리트 환경론자가 되고 싶진 않"으며 "다만 땅바닥에 엎드려 땀 흘리는 게 좋다"고 했다. 뒤를 이어 동물원 운영을 맡은 셀소 포트(Celso Poót)의 말처럼 벨리즈 동물원은 샤론의 삶 자체였다.

최윤필 기자
가만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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