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삶을 함축한 표제

입력
2021.05.14 04:30
<9회> '운명의 조성' C 단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운명의 조성' C 단조.

C 단조는 베토벤과 뗄 수 없다. 이 조성은 그의 운명이었고, 상징으로 남았다. C 단조 느낌을 설명하려면 작품 하나만 있어도 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불후의 명곡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들어보면 충분하다. 이 교향곡은 이른바 '운명의 노크'라고 불리는 동기, '솔솔솔 미(♭) 파파파 레'로 시작한다. 이 짧은 음악으로도 C 단조를 이해할 수 있다. 10월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얍 판 츠베덴 지휘로 KBS교향악단이 이 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베토벤의 생을 다룬 영화 '불멸의 연인'(1994)의 한 장면. 베토벤(게리 올드만 분)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묘사됐다. 영화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의 도입부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동안 숨을 거두는 베토벤을 비추며 시작된다. 엔케이컨텐츠 제공


다양한 작곡가들이 모방

장재진 기자(이하 장):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지만 베토벤 개인은 생전 썩 행복하지 못했다. 유년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은 경험으로 정서가 불안정했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때가 많았다. 급기야 귀까지 멀자 유서를 쓰기도 했다. 일련의 불운은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C 단조는 베토벤 인생을 함축하는 표제가 아니었을까.

지중배 지휘자(지): 확실히 C 단조에는 어둡고 염세적인 면이 있다.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번도 같은 조성으로 만들어졌는데, 부제가 '비창'이다. 이달 2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폐막공연에서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연주한다.

: 베토벤을 존경한 후대 작곡가들도 이 조성으로 곡을 썼다. 대표적으로 슈베르트의 후기작에 베토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슈베르트는 병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 피아노 소나타 C 단조 D958을 지었다. 도입부 형태나 선율의 특성이 베토벤 피아노곡을 닮았다. 문지영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리사이틀(29일 예술의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 베토벤에 대한 경의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했다. 프랑스의 대표 작곡가 생상스는 자신의 교향곡 3번 '오르간'을 C 단조로 지었다. 베토벤 5번 교향곡처럼 어둡고 불행을 예고하는 듯한 분위기로 곡이 시작된다. 실제 이 곡을 들은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는 '프랑스의 베토벤'이라고 평가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마티외 에르조그 지휘)가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생상스 교향곡 3번을 무대에 올린다.

: 피아노 협주곡의 걸작으로 꼽히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도 C 단조로 쓰였다. 묵직하고 낮은 피아노 독주 화음으로 시작하는데 비탄의 감정은 점차 격앙된다. 곡 자체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작곡 시점은 라흐마니노프가 슬럼프와 우울증에 빠져 침울하던 시기였다.

환희로 끝나는 피날레

: C 단조는 이렇듯 작곡가들에게 벗어나기 힘든 삶의 굴레와 역경을 상징했다. 하지만 이 조성의 특별한 점은 비탄 그 자체로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 작품 안에서 C 단조는 으뜸음(Cㆍ도)이 같은 조성인 C 장조로 빈번하게 조바뀜되는 경우가 많다. '운명 교향곡'을 비롯해 베토벤 작품 상당수는 C 단조로 시작하지만 C 장조로 끝난다. 비탄으로 음악을 열되 환희로 끝맺는 셈이다. 자신은 불행했지만 희망과 인류애를 노래했던 베토벤의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 실제로 C 단조로 작곡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D958)나 생상스 교향곡 3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도 베토벤적인 이야기 구조다. 우울한 시작을 지나 악보의 마지막 겹세로줄로 가면 활력이 넘실거린다.

지중배 지휘자.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장재진 기자
장재진과 지중배의 키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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