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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돈 벌 기회? 더 나은 세상 만들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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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주식을 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내리막에 익숙한 밀레니얼을 위한 용기 고취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나의 두 번째 에세이집의 초고 중 한 챕터였다. 이 지면의 두 배도 넘는 분량의 그 글은 책에 실리지 못하고 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만 고이 간직하게 됐다. 글이 반려된 주된 이유는 책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고, 부차적 이유는 내가 주식을 단 2주만 샀기 때문이었다. '겨우 2주의 주식을 산 것으로 주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이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 리 없다'를 빙빙 돌려 전달한 편집자의 완곡한 메모에, 그 글은 '킬'됐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주식을 샀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로 살았다. 온 세상 사람들이 주식과 가상화폐에 대해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제의 주식을 산 이후로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특히 지난 1년간 '주식 해?'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2주의 주식을 떠올렸지만, 그건 주식을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최근 6개월 사이엔 그 뒤에 '코인은?'이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주식도 하지 않고 가상화폐도 사지 않고 착실히 적금만 붓는, 소수의 사람이 되어갔다. 나로서는 상당히 큰돈을 2년 가까이 묶어두었음에도 적금 만기가 도래하자 은행은 내게 10만 원이 조금 넘는 이자만을 내주었지만, 후회는 없다. 내게는 주식을 할 돈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나마 가진 돈이 안전하기를 바랐다.
만약 그 돈으로 주식을 샀다면 어땠을까. 단 2주라 해도 주식을 샀던 그때 이후로, 주식 시장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고 공부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사람들이 돈에 대해, 자산을 증식하고 투자하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것을 보고 들을수록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돈과 자본주의에 대해 알고 싶지만, 종목을 보고 투자하는 방법이나 무릎에서 샀다가 어깨에서 파는 법을 공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어떤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사람들 사이 자본의 격차가 줄어들고, 좀 더 고른 방식으로 자원이 배분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개인이 주식이나 부동산, 그 외 수많은 투자를 통해 자산을 증식하고 각자도생하는 방법 말고, 모든 사람이 결국 자본이 이기게 될 싸움에 뛰어들기보다는 자본이 편중하지 않게 하는 사회 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이 궁금하다.
문제는 이런 걸 궁금해하면 책값만 나갈 뿐이기에 오히려 자산은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프리랜서 작가의 가벼운 통장을 지키기 위해, 이번 달에는 이왕 구독료를 낸 김에 넷플릭스의 '익스플레인: 돈을 해설하다'를 보는 것으로 돈 공부를 대신하기로 했다. 신문에 나가는 글을 쓰는 김에 경제면도 들춰보면 좋겠지만, 나는 2008년의 금융 위기도 영화 '빅쇼트'를 통해 배운 사람이다. 대중문화와 이야기로 세상을 보고 공부하는 게 가장 재미있는 걸 어떡하겠는가.
'익스플레인'은 미국의 언론 VOX가 만드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그중 일부가 2018년부터 넷플릭스에 공개되고 있다. '세계를 해설하다'라는 부제를 단 첫 시리즈는 두 시즌 동안 에피소드별로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이후부터는 한 주제에 대해서 3~5편의 에피소드를 묶어서 공개하고 있다. 에피소드당 20분 내외의 길지 않은 분량으로 부담 없이 시청할 수 있지만, 주제는 그리 가볍지 않다. 지금까지의 주제는 투표, 뇌, 섹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익스플레인: 돈을 해설하다'는 지난 11일 총 다섯 편의 에피소드로 찾아왔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기초적인 상식과 지식 수준 아래서의 '설명'이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는 것이다. 사실의 전달 면에서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다양한 인포그래픽과 게임 등을 응용한 일러스트의 효율적 사용으로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미국의 시리즈이니만큼 상황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꽤 기초적인 공부가 된다.
첫 편은 '벼락부자 되는 법'이라는 제목부터 흥미를 끈다. 물론 돈방석에 앉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건 아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제로 벼락부자가 되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 사기를 쳐왔고 또 속아왔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현재도 사기 혐의로 미국에서 소송이 진행 중인 '원코인'이라는 가상화폐와 관련된 사건이다. 화면을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원코인'을 검색했더니, 최근 거의 흡사한 이름의 또 다른 신생 암호화폐가 채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두 배로 흥미로워졌다. 수많은 블로그에서 이 소식을 알리며,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기를, 벼락처럼 돈이 쏟아질 날이 찾아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실제의 삶,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소재가 되고, 현재형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좋은 다큐멘터리의 덕목임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은 에피소드는 '학자금 대출' 편이다. 구 소련과의 우주전쟁 시기, 과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이공계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대출해 준 것이 미국의 학자금 대출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채 100년이 지나지 않은 현재, 학자금 대출은 필수가 됐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빚을 지고 사회로 나간 수많은 사람이 복리로 이자가 붙는 대출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다. 대학을 가야만 경제 활동이 가능한 경제 구조 안에 있는 한, 이 빚의 사슬을 끊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빚을 짊어진 청년 세대는 지출이 기대소득을 넘어가는 세상에서 살아가며 미래를 상상하지 않고, 가정을 이루기를 포기한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한국 청년은 진작에 '삼포 세대'였다.
이 에피소드는 지금도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다는 연방 하원의원인 일한 오마르를 포함해,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느끼는 정치인들이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지를 질문하며 마무리한다. 역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 '하산 미나즈 쇼: 이런 앵글'에도 학자금 대출 문제를 더욱 구체적으로 다룬 에피소드가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연결해서 봐도 좋다.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을 대신한 추천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민인 '은퇴'다. 은퇴에 관해 연구해 온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소득자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면 더 많은 돈이 정부로 들어가 가난 문제를 해결하고 혜택을 확대할 수 있을 겁니다. 은퇴자금 저축 위기는 사실 다른 많은 문제보다 훨씬 해결하기 쉬워요." 돈에 대해서, 경제 구조에 대해서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자라고, 또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들을 감당할 만한 돈은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주어져야 하는가. 은퇴자금을 만들기 위해 개인이 공부해서 주식과 펀드에 투자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에는, 주식을 더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한가 아니면 이런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프로그램이 필요한가. 나는 후자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기가 가장 빈번하게 벌어지고 돈과 관련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시기는 변화의 시기라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시기를 정확히 전쟁, 그리고 팬데믹의 시기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전 지구적 재앙이 변화의 시기인 것은 틀림없다. 사람들은 이 위기가 곧 돈을 벌 기회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 많은 돈을 벌 때,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돈을 잃을 것이다. 돈이 지켜주곤 하는 소중한 것들 역시 잃을 것이다. 모두가 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는 시기에 굳이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돈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고, 또 해볼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변화가 기회라면, 지금이야말로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절호의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 편 마지막 인터뷰이의 말을 옮겨둔다. "은퇴 문제에 있어서 가장 해결하기 어렵고 가장 오래 외면돼 온 사람들 문제를 해결한다면 모두의 노후가 보장될 것입니다." 은퇴를 경제로 바꾼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 가장 해결하기 어렵고 가장 오래 외면돼 온 사람들, 곧 가장 가난한 사람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모두의 일상이 보장될 것이다. 나는 이게 주식이나 코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그 이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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