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대신 유리창에 붙인 카네이션... 요양원 어버이날 신풍속도

입력
2021.05.06 19:00
수정
2021.05.06 22:3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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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2차 접종 2주 지나야
요양시설 대면 면회 허용

대구에 살고 있는 A씨가 지난 5일 칠곡군 동명면 바오로둥지너싱홈 요양원을 찾아 어머니의 가슴 대신 유리창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다. 칠곡군 제공

대구에 살고 있는 A씨가 지난 5일 칠곡군 동명면 바오로둥지너싱홈 요양원을 찾아 어머니의 가슴 대신 유리창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다. 칠곡군 제공

"꽃 하나 달아드릴 수 없으니... 가슴만 미어집니다."

요양원 유리창에 카네이션이 피었다. 이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상의 부모 자식들을 생이별케 했던 곳. 어버이날을 앞두고 전국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특별 면회실까지 마련했지만, 아들딸 손주들에겐 손 한번 잡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유리창은 더디 진행되는 백신접종 상황에서 노부모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6일 경북 칠곡 바로오둥지너싱홈 요양원을 찾은 계모(67)씨는 연신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비볐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어머니였지만, 가져온 꽃은 가슴에 달아드리지 못하고 유리창에 붙였다. 그는 "구순에 가까운 어머니가 신종 코로나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며 “자식들이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으로 오해하시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면회 인원도 3명으로 제한되면서 계씨와 같이 온 가족 중 나머지 4명은 면회실 밖에서 ‘모녀 상봉’을 눈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코로나에 묶인 일상생활이 언제 풀릴지 갑갑하기만 하다"고 했다.

붉은 카네이션과 제철 꽃을 바리바리 챙겨갔건만, 코로나 난리 통에 끝내 가슴에 달아드리지 못하고, 방에도 넣어드리지 못하고 되가져 오는 자식들의 발걸음은 더욱더 무거웠다. 칠곡 왜관에 사는 이성우(44)씨는 "면회 갈 때마다 어머니가 유리창 너머에서 아들을 잡으려 손을 내미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며 "유리창 면회가 더 힘들다"고 했다. 특히 이날은 잔인하도록 찬란한 날씨가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경산의 한 시설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김창숙(58)씨는 “연세 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 딸, 손주 손도 잡지 못하고 눈물 훔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싶다”고 했다.

장기화하는 혈육 간의 생이별에 서울의 요양시설에는 특별 면회소가 등장했다. 서울시가 만든 이동식 목조주택으로 된 ‘가족의 거실’이다. 기존 면회실에선 허용되지 않던 손잡기가 이곳에서 허용됐지만, 그 역시도 방역장갑을 껴야 가능했다. 서울시립동부노인요양센터에서 어머니(71)의 손을 잡은 아들 강동훈(46)씨는 “우리 엄마 힘이 이렇게 셌는지 몰랐다”며 감격해 했다. 이날 요양센터를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기간 생이별하며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요양시설 어르신과 가족의 일상 감정까지 배려한 ‘사회문제해결 디자인’을 적용했다”며 “시민의 일상을 따뜻한 눈높이로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요양원 25곳, 요양시설 4곳, 요양병원 4곳에 1,000여 명이 입소해 있는 칠곡에서는 이달 말부터 2차 접종이 이뤄지며, 빠르면 다음 달 중순부터 부모 자식 간 대면 면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어버이날이 아니더라도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효도이며 기쁨인지 잘 알고 있다"며 "가족의 정이 빨리 이어지도록 안전한 백신접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코로나19 2차 접종자에 대해 요양시설 대면 면회를 확대할 방침이다. 면회객과 입소자 중 한쪽만이라도 2차 접종을 마치면 2주 후부터 시설 내 별도 공간에서 방역 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칠곡=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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