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맞선 1년, 춤으로 태어난다

입력
2021.05.06 04:30
수정
2021.05.06 16:1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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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과 권령은·김보라 안무가, 다음 달 4~6일 '그 후 1년' 공연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보라(왼쪽) 안무가는 동갑내기 권령은 안무가를 두고 "사회적 문제에 과감히 질문할 줄 알고, 인류학적인 호기심이 많은 예술인"이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권 안무가는 김 안무가를 "훌륭한 미장센을 통해 관객에게 시각적 충족감을 선사하는 몇 안 되는 안무가"라고 소개했다. 왕태석 기자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보라(왼쪽) 안무가는 동갑내기 권령은 안무가를 두고 "사회적 문제에 과감히 질문할 줄 알고, 인류학적인 호기심이 많은 예술인"이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권 안무가는 김 안무가를 "훌륭한 미장센을 통해 관객에게 시각적 충족감을 선사하는 몇 안 되는 안무가"라고 소개했다. 왕태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공존한 시간이 어느덧 1년을 훌쩍 넘겼다. 자연스레 공연계에서는 그 참혹하고 괴괴한 시간을 반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다음 달 4~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리는 현대무용 '그 후 1년'이 대표적이다.

'그 후 1년'에는 현재 무용계에서 주목받는 안무가 권령은(39), 김보라(39)가 참여했다. 이들은 2014년 세계적인 창작안무대회 '요코하마 댄스컬렉션EX'에서 나란히 석권하는 등 일찍이 예술성을 인정받아 국내외 무대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그들도 팬데믹이라는 불가항력을 피할 수는 없었다. 본의 아니게 지난 1년을 예술인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최근 예술의전당 내 현대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권, 김 안무가는 "내가 어디에 소속돼 있으며, 지금까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고,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자문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 안무가는 "공연 준비와 안무 작업 특성상 계획적인 삶을 살아왔는데,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춤을 만드는 방식도 전환점을 맞았다"고 털어놨다.

권령은 안무가는 "평소 춤 자체가 창작의 재료라기보다는 질문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며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춤이 발견되는 지점을 관찰하곤 한다"고 말했다. 왕태석 기자

권령은 안무가는 "평소 춤 자체가 창작의 재료라기보다는 질문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며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춤이 발견되는 지점을 관찰하곤 한다"고 말했다. 왕태석 기자

'그 후 1년'에는 안무가들이 주목한 가치와 개념이 춤의 형태로 녹아 있다. '그 후 1년' 프로그램 중 하나인 권 안무가의 공연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는 생존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몸짓이다. 권 안무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연장 문이 닫히면서 예술인들은 국가의 지원대상이 됐다. 생계형 예술가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존의 방식이 창작의 동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시대에 최우선 가치가 된 생존을 다루면서 권 안무가는 심리학을 무용에 접목했다. 권 안무가는 "호모사피엔스를 비롯해 오랜 시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무기 중 하나는 귀여움이었다"며 "생존의 방법론으로서 귀여움을 춤으로 표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권 안무가는 무대 위에서 '베이비 스키마(Baby Schema)'라는 진화심리학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통상 귀엽다고 할 때는 작고, 둥글고, 서투른 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어린아이나 동물의 새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권 안무가의 공연 제목은 귀여움의 세 요소를 아기처럼 발음한 것이다.

김보라 안무가는 "모든 안무는 나만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 특히 몸을 통해 어떤 주체를 다양하게 바라보는 일을 위대한 작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왕태석 기자

김보라 안무가는 "모든 안무는 나만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 특히 몸을 통해 어떤 주체를 다양하게 바라보는 일을 위대한 작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왕태석 기자

김 안무가의 경우 시간에 주목했다. 그는 "코로나19가 닥치면서 그전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간이 낯설게 다가왔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개념을 시각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김 안무가에게 시간은 공간을 의미한다. 또 공간은 몸과 이어지는 개념이다. 그래서 그에게 시간을 표현하는 일은 공간을 이동하는 작업이다. 김 안무가는 "공간의 기본 속성은 점이고, 세상은 무수히 많은 점들의 집합체"라고 했다.

김 안무가의 공연에 '점.'이라는 제목이 붙은 배경이다. 이 작품은 '시간=공간=몸'이라는 구조에 뿌리를 두고, 무용수들이 시간의 변화를 표현한다. 구체적으로는 시간의 거리와, 확인, 가능성 등을 상징하는 공연이다. 관념 속에서 존재하는 시간을 공감각화한 셈이다. '점.'의 또 다른 특징은 무대에 자리 잡은 거대한 풍선이다. 이 풍선은 공간의 변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풀어오르고, 무대 공간을 점점 더 차지하기 때문이다. 김 안무가는 "춤출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사라졌을 때 무대 위 무용수들이 어떻게 춤을 출지, 그 무질서함과 즉각성에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권령은, 김보라(뒤쪽) 안무가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현대무용 작품을 감상하는데 도움되는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뻔한 대답이지만 그저 느끼는 대로 보면 된다"고 했다. 왕태석 기자

권령은, 김보라(뒤쪽) 안무가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현대무용 작품을 감상하는데 도움되는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뻔한 대답이지만 그저 느끼는 대로 보면 된다"고 했다. 왕태석 기자

공연 주제는 시의성이 강하지만, 사실 안무가의 창작 의도가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될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권 안무가는 "현대무용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최고의 관객 평은 '뭔지 모르겠는데 재미있다'라는 반응"이라고 했다. 김 안무가도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만든 공연이 아닌 만큼, 이 작품을 통해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후 1년'에는 두 안무가의 작품에 더해 스페인 출신의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의 무용 '승화'가 무대에 오른다. 당초 다음 달 공연에 함께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내한이 불발되면서 아구아데의 작품은 다큐멘터리 필름 형식으로 공연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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