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아이에 "삼겹살" 모욕...외모 비하 재미있나요

입력
2021.05.05 04:30
연령 비하와 독신 비하도
기존의 차별을 폭력적인 형태로 전시
비하 보며 웃는 아이들, 차별 내면화

<3> 재미로 포장된 외모 비하

편집자주

아이들의 우주는 무한합니다. 여기에 알록달록 다양한 빛깔을 더해줘야 할 동화책과 교과서, 애니메이션이 되레 이 세계를 좁히고 기울어지게 만든다면요? 한국일보는 4회에 걸쳐 아동 콘텐츠의 '배신'을 보도합니다.


한 어린이가 TV로 애니메이션 '미라큘러스 :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에서 레이디버그의 변신 장면을 보고 있다. 주인공 레이디버그의 몸은 한줌의 허리와 가는 팔다리를 강조했다. 아이들은 여성의 몸, 그리고 자신의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남보라 기자

"체중계 부서질까 봐 못 올라가냐" "삼겹살 몇 인분 나오는지 보자."

주인공 두리가 신체검사 날 체중계 앞에서 망설이자, 뒤에 있던 친구들이 하는 말이다. 그리고 키득거린다.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 고스트볼의 비밀' 3화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발생했다면 정서적 폭력 및 언어 폭력이다. 그렇다면 이 에피소드는 '외모 비하'를 일삼고 조롱하는 친구들에게 따끔하게 훈계를 하고 끝나게 될까. 담임 선생님은 "친구를 놀리면 안 된다"며 나지막이 타이르고, 누나 하리와 동네 형 현우가 비분강개하지만 그뿐이다.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 두리를 놀린 친구들은 따끔한 훈육을 받지도, 반성을 하지도 않는다.


‘신비아파트 고스트볼의 비밀' 3화에서 주인공 두리가 신체검사 날 체중계 위에 올라서지 못한 채 망설이자 친구들이 그의 뚱뚱한 몸을 희화화하고 있다. 두리는 결국 그림자 귀신에게 "날씬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신비아파트 고스트볼의 비밀' 3화 캡처

괴로움을 당하는 건 두리뿐이다. 두리는 도깨비 신비와 그림자 귀신에게 "날씬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고, 두리의 살이 빠지자 친구들은 그에게 “너 되게 귀여워졌다” “너 살 빼니까 아이돌 같아” 등의 말을 하며 호감을 표한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동화책,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어린이 콘텐츠에서 '외모 비하'가 놀이나 재미로 포장되는 상황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스토리 창의력이 빈약할수록 쉽게 외모 비하로 갈등을 조장하고 오락화하는 식이다. 또 나이 든 사람에 대한 연령 비하의 연장선에서 비혼 비하나 아저씨·아줌마 등 호칭 비하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떨쳐내야 할 차별들이 아동 콘텐츠에서 재생산되면서, 기성세대가 겪은 차별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수된다.

물론 아동 콘텐츠라고 해도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온화하게 녹여서 그 차별로 인한 갈등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극단적인 언어 폭력 등의 형태로 전시하는 콘텐츠는 '차별의 내면화'만 이끌고 있다.

외모 비하 보며 웃는 아이들

36개월 이상 아동을 대상으로 한 뮤지컬 ‘인피니티 플라잉’. 주인공은 뚱뚱한 분장을 한 치어리더인데, 다른 단원들은 그에게 다이어트를 하라고 종용한다. 또 주인공을 들어올려야 하는 남성 등장인물들은 그의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거나 부상을 입는 설정 등이 나온다.


아동 뮤지컬 '인피니티 플라잉'의 여주인공은 뚱뚱한 치어리더로 설정돼 있다. 관객들은 치어리더의 몸무게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무대에 아예 'DIET'를 하라고 써 있다.

올해 이 뮤지컬을 보다 화가 나서 중간에 나왔다는 한 관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뚱뚱한 사람을 희화화하고 여성 혐오, 외모 비하, 반말과 고압적인 자세, 집단 따돌림, 성추행, 데이트폭력의 요소가 고스란히 담긴 공연"이라며 "큰소리를 치고 가학적인 대목에서 아이들은 웃는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 관객은 "치마를 들춰도, 남의 외모를 비웃고 놀려도, 누군가의 맨몸을 허락없이 만져도 아이들은 웃는다"며 "너무 끔찍하다"고 했다.


뮤지컬 '인피니티 플라잉'의 여주인공(오른쪽 두 번째)이 뚱뚱한 치어리더로 분장한 채 연기하고 있다. 함께 연기하는 남성 등장인물이 여주인공을 들다가 그의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고 있는 장면. 유튜브 채널 '모래성tv' 캡처

이에 대해 '인피니트 플라잉' 제작사 측은 "뚱뚱한 분장은 다양한 학생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고, 치어리딩 동작 중 남성 캐릭터가 쓰러지는 장면은 여주인공이 다른 학생보다 의욕과 힘이 넘쳐 벌어지는 에피소드”라고 설명했다. 또 “다이어트 과정 역시 치어리딩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여주인공의 노력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덧붙였다. 다만 업체 측은 “다소 과장된 코미디 요소를 불편하게 느낀 관객이 있다면, 앞으로 이를 더 신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두근두근 걱정 대장'에서 아빠를 닮아 살집이 있는 체형인 주인공(오른쪽 아래)은 날씬한 엄마와 그의 체형을 물려받은 여동생을 부러워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우리 아빤 뚱뚱하다. 게다가 팔도 짧고 다리도 짧고 키까지 작다. 그리고 심한 곱슬머리라서 꼭 파마를 한 것 같다. 시골 아줌마 파마!"

창작동화 '두근두근 걱정 대장'의 주인공은 아빠를 닮아 통통한 자신이 귀엽거나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반면 한 살 아래 동생은 엄마처럼 키도 키고 팔다리도 길쭉한 데다 얼굴도 갸름하고 눈도 커 부러움을 산다. 이야기는 "그래도 나 정도면 귀엽지"라고 자신감을 가지는 장면으로 훈훈하게 끝나지만, 그 과정에서 특정 외모를 향해 가해졌던 차별 발언은 수정되지 않는다.


'두근두근 걱정 대장'에서 아빠를 닮아 외모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왼쪽)는 여동생이 엄마처럼 날씬하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점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책에서 친구를 짝사랑하는 준영의 상황은 이렇게 묘사된다. "아마 연아는 준영이가 좋아하는 걸 알지도 못할 겁니다. 아니, 안다고 해도 모른 척할 겁니다. 뚱뚱하고 못생긴 준영이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없을 테니까요."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에도 상대방 외모를 지적하는 표현이 등장한다. 1기 18화에서 자두는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난 과외 선생님에게 “여기요, 선생님. 선생님 얼굴이 생물책에 나오는 멍게 같아요. 얘들아, 앞으로 선생님 별명은 멍게야 멍게. 알았지?”라고 말한다.

1기 2화에서 돌돌이는 수업 중 가족을 소개하는 시간에 “저희 엄마는 말이죠. 회사에 다니시면서 아직도 아가씨 같은 몸매를 유지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한다. 또 자두 아빠는 “자두야, 밖에서 놀 땐 선크림 좀 바르고 다녀. 여자애 얼굴이 그게 뭐냐”며 핀잔을 주고, 자두는 “난 시커먼 게 키도 작고, 예쁜 게 하나도 없어”라며 한탄한다. 예뻐지고 싶다는 자두에게 한복집 할머니는 “어차피 그 얼굴로 결혼은 무리다”라는 말을 건넨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몸매가 강조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미라큘러스:레이디버그와 블랙캣'(레이디버그)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리네뜨는 악당이 등장할 때마다 슈퍼 히어로, 레이디버그로 변신하는데 한줌밖에 되지 않는 그의 허리와 젓가락 같은 팔은 트레이트마크다.


애니메이션 '레이디버그'의 여주인공 레이디버그와 남주인공 블랙캣의 모습. 이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들은 잘록한 허리와 군살 없는 팔, 다리 등 현실에서 보기 힘든 마른 몸매의 소유자들이다.

살집이 있는 몸을 대놓고 비하하고 마른 몸을 이상화하는 이런 콘텐츠들의 효과는 자명하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특정 외모를 지향하는 시선이 깔린 콘텐츠가 아동들에게 “마른 몸매의 내면화”를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레이디 버그’를 예로 들며 “등장인물들의 허리가 잘록한 모습을 보며 마른 몸매를 이상적인 것이라 여기게 되고, ‘저렇게 돼야 한다’ ‘그게 맞다’고 학습하면서 백지장처럼 깨끗하던 사고방식이 고정관념으로 물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고정관념은 성장기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강은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예쁘고 눈 크고 날씬한 이미지를 따라가기 위해 음식 섭취를 안 하는 경우도 있다”며 “또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는 등 자아존중감이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령 비하하고 비혼남녀에는 ‘비정상’ 낙인

어린이 도서 '수상한 편의점'에서 자동차 접촉사고를 낸 여진의 고모는 상대 차량 운전자가 자신을 아줌마라고 부르자 충격을 받아 뒷목을 잡는다. 여진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남자가 고모에게 제대로 강력 펀치를 먹였다. 아줌마라는 말은 결혼을 하지 않은 서른아홉 살의 고모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어린이 콘텐츠에서조차 '아줌마'는 멸칭으로 쓰인다. 우리 사회에서 기혼 여성을 부르는 아줌마라는 호칭이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는 사실을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용 성교육 도서 '소중한 성 아름다운 성'에서는 사촌 오빠에게 핀잔을 주는 표현으로 '아저씨'가 사용됐다.

'아저씨'도 이런 현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남자는 다 늑대'라는 구시대적 발언을 하는 사촌 오빠에게 주인공은 말한다. "치, 령후 오빠 '아저씨' 같아." (텐텐북스 시리즈-궁금한 성 아름다운 성)

기혼 여성, 기혼 남성을 부르는 단어를 이처럼 차별의 언어로 쓰는 데 이어 결혼하지 않은 이들 역시 천덕꾸러기 취급을 한다. '어린이 사회 형사대'와 '어린이 과학 형사대'에 각각 등장하는 33세 고모와 35세 형사는 미혼이라는 이유로 노처녀, 노총각으로 소개된다. 변화한 시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뒤처진 아동 콘텐츠의 현실이다.

아동 책 '아이는 정말 싫어'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조르지오씨 같은 독신자는 '까다롭고 괴팍하다'라고 묘사된다.

미혼 혹은 비혼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내용도 나오곤 한다. 아동 책 '아이는 정말 싫어'에서 어린이를 좋아하지 않는 조르지오씨는 '좀 까다롭고 괴팍한 독신자 친구들'을 좋아한다고 묘사된다. 독신 여성, 그리고 남성을 향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심재웅 교수는 “아이들은 콘텐츠를 통해 ‘이게 이 상황에 맞는 행동 방식이야’,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이렇게 해야 해’라는 식의 행동절차를 학습하는데, (잘못된 행동을 한 아이들은) ‘TV에서 봤다, 유튜브에서 봤다’는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며 “콘텐츠를 제작한 후 전문가를 통해 이를 검토하거나 부모에게 사전 시연을 한 뒤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 싣는 순서> 뒤로 가는 아동콘텐츠

<1>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지다

<2> 모욕을 주는 성교육

<3> 재미로 포장된 외모 비하

<4> 차별 없는 아동콘텐츠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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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기자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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