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빼고 다 열어봤다" 열쇠 하나로 72년 지켜 낸 가게

입력
2021.05.08 09: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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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경북 포항 죽도열쇠

경북 포항죽도열쇠 김건식(58)대표가 열쇠가 빽빽하게 달려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죽도열쇠 김건식(58)대표가 열쇠가 빽빽하게 달려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점포 수 2,500여개로 동해안 최대 어시장인 경북 포항 죽도시장에서 열쇠 하나로 70년 넘게 자리를 지킨 가게가 있다. 상호도 시장이 있는 지명(죽도동) 그대로 '죽도열쇠'다. 손재주가 뛰어났던 김흥준(1999년 작고)씨가 창업주다. 북한에서 태어나 인민군 장교였던 그가 귀순한 1949년, 연장 몇 개 싣고 시장통을 누비던 낡은 손수레가 죽도열쇠의 시작이다.

국군 장교로 6ㆍ25전쟁에 참전한 그는 제대 후 할 일이 없자, 다시 수레를 끌고 시장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영일만에 제철소가 들어선 뒤 집과 차가 늘면서 열쇠수리공 일거리도 많아졌다. 시장 내 열쇠 가게들은 밀려드는 일감에 아우성이었다. 노점 생활 33년만인 1982년, 마침내 김씨는 죽도시장에 10㎡ 남짓한 땅을 얻어 가게를 냈다. 경북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장터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금 장치를 만드는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열쇠수리 업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팔아도 남는 게 없는, 값싼 중국산 자물쇠가 밀어닥쳤고 열쇠가 필요 없는 다양한 방식의 잠금 장치가 쏟아졌다. 시장 안에 있던 열쇠 점포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하지만 죽도열쇠는 꿋꿋이 버텼다. 오히려 아들 건식(58)씨가 나서 가업으로 삼고 이어갈 만큼 날로 번창했다.

경북 포항죽도열쇠 김건식(58) 대표가 한국일보 취재차량을 이용해 차 문을 열 때 모습을 연출해 보이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죽도열쇠 김건식(58) 대표가 한국일보 취재차량을 이용해 차 문을 열 때 모습을 연출해 보이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72년... 튼튼해진 방패, 늘어난 창

3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죽도열쇠에서 만난 김건식 대표는 10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휴대폰을 받느라 분주했다. 스피커로 새나오는 목소리는 하나같이 다급했다. "문이 잠겼는데 열 수 있겠냐", "언제까지 와 줄 수 있느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작업대에 앉아 고객을 대하는 그는 긴급신고 전화에 응하는 119안전센터 직원 모습과 흡사했다.

김 대표가 허공에 무언가를 그리며 설명하는 사이,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가게 문이 열렸다. 답답한 마음에 직접 찾은 손님이었다. 한 손님은 "딸이 서울에 사는데 집 방문이 고장 났다"며 문틈에 연장이 낀 사진을 불쑥 내밀었다. 김 대표는 "밤중에도 전화가 많이 와 오후 8시가 되면 무음으로 바꾼다"며 "일부러 일하는 시간을 줄였는데도 삼시 세끼를 제시간에 해결하지 못할 만큼 바쁘다"고 말했다.

이것도 창과 방패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잠금 장치들이 등장하는 탓에 그의 일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좁은 가게가 신형 ‘창’으로 가득하다. 2008년 2호점을 얻어 확장했는데도 연장들을 매장 안에 다 두지 못할 정도다. 작은 핀부터 의료기기처럼 생긴 기기, 정밀하게 열쇠를 깎는 기계까지 셀 수 없이 많다. 김 대표가 직접 만들어 발명품처럼 탄생한 도구도 수두룩하다. 그는 "출장 수리를 갈 때 차 문이냐, 집 문이냐에 따라 갖고 가는 출장가방이 다르다"며 "새로운 형태의 잠금 장치가 나올 때마다 장비가 몇 개씩 늘어난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에 위치한 죽도열쇠 2호점 전경.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에 위치한 죽도열쇠 2호점 전경.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신이 내린 기술, 열쇠수리공

그가 가업을 이어 열쇠수리공의 길을 걷게 된 건 아버지 덕분이었다. 김 대표도 일찍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발명가처럼 필요한 물건을 설계하고 직접 만드는 걸 좋아했다. 성실함과 신용을 중시하는 아버지를 보며 그도 책임감을 중요하게 여겼다. 초등학생 시절 신문배달을 할 땐 틈틈이 동네 지도를 그렸다. 혹 일을 못 하게 됐을 때, 누가 대신 일을 맡더라도 배달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을 거들던 김 대표는 돈을 많이 벌었다. 주차장, 세차장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고 식당까지 운영했다.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하게 했지만, 결과는 빚더미였다. 사람을 너무 믿은 게 잘못이었다. 돌아온 그가 열쇠에 집중하자 이번엔 창업주 아버지 김씨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열쇠수리를 유업으로 삼고 매진했다"며 "쇠줄로 금속을 깎고 다듬으면서 복잡한 마음도 정리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와 함께 꾸리던 본점에서 벗어나 근처에 분점을 내고 가게를 키웠다. 특수 장치로 무장한 외국산 금고부터 작은 방문까지 주문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했다. 포항 인근 경주와 영덕, 울진은 물론이고 울산, 부산, 멀리 서울까지 출장을 갔다. 72년간 대를 이어 체득한 기술에다 다양한 경험을 한 김씨는 이제 열쇠수리공 사이 명장으로 통한다. 그는 "새 잠금 장치와 마주하면 연구하고 그 원리를 기록하고 입력해둔다"며 "1인자가 아니라 늘 2인자라 생각하고 배우기 위해 애쓴다"고 말했다.

포항 죽도열쇠 2호점 벽면에 창업주 故 김흥준(1999년 작고)씨의 사진이 걸려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포항 죽도열쇠 2호점 벽면에 창업주 故 김흥준(1999년 작고)씨의 사진이 걸려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죽도열쇠를 거쳐 간 손님들

특수 업종답게 죽도열쇠 문을 두드린 고객들도 평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급하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도 열쇠가 없거나 비밀번호를 까먹어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이 대부분. 그 중에선 김 대표의 손끝에 달렸던 목숨이 여럿이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문이 잠긴 차 안에서 의식을 잃던 어린아이를 구하거나, 잠긴 현관 안에 쓰러져 있는 노파를 그의 자식들과 살리기도 했다. 요즘처럼 119가 구조활동을 하지 않을 때의 일이다.

특수한 기술을 가진 그였기에 곤란에 빠진 적도 더러 있다. 한밤중 급한 연락을 받고 달려갔는데 문을 사이에 두고 부부싸움을 하는 손님이 대표적이다. 부른 손님은 "빨리 문을 따 달라" 하고, 문 안에서는 "절대 열어주면 안 된다"며 살벌한 공방에 본의 아니게 끼게 됐을 때다. 그는 "예전에는 연락이 오면 무조건 연장을 들고 뛰어갔지만 이제는 전화로도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을 잡는다"며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정중히 거절한다"고 말했다.

어렵게 문을 열었는데 고객의 집이 아닐 때도 있다.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장기간 양로원에서 생활한 노인이었다. 고객은 "비밀번호를 아무리 눌러도 열리지 않는다"고 문을 열어달라 부탁했다. 김 대표 앞에서 아들에게 전화해 자신의 집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켰다. 하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뒷걸음쳤다. 의뢰인이 까먹은 건 비밀번호가 아니라 살던 집의 위치였다. 그는 "건물이 다 비슷비슷한 동네였는데 손님이 너무 오래 집을 비워 생긴 일이었다"며 "다행히 진짜 집주인이 '괜찮다'고 해 한숨을 돌렸다"고 말했다.

포항 죽도열쇠

포항 죽도열쇠


"변할 땐 변해야 성공한다"

올해 72년이 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가게지만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김 대표의 영업용 승합차에는 죽도열쇠 연락처와 함께 자동차 회사 마크가 빽빽하다. '모든 차종을 열 수 있다'는 의미로 붙여놓은 것이다. 인터넷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선 틈틈이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바뀐 정책에 맞게 광고 전략을 새로 짠다. '시대에 따라 변할 때는 과감히 변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신조다.

김 대표는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신차라도 의뢰를 받으면 주저하지 않는다. 실패한 적도 없다. 그는 "아직 미국 유명 전기차인 '테슬라'는 못 열어 봤는데 그 차를 타는 고객을 만나지 못했다"며 "새로운 장치를 접할 때는 두렵다기보다 또 다른 기술을 얻는다는 마음으로 대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죽도열쇠라는 상호와 직접 고안해 낸 열쇠 모양의 마크를 특허청에 등록했다. 물려받은 가게와 열쇠수리공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자 애정의 징표다. 누가 그걸 베낄까 싶지만, 그는 "노포로 유명하다 보니 우리 상호를 사칭하는 곳이 더러 있더라"며 "진짜 죽도열쇠를 지키기 위한 자물쇠”라고 말했다.

자물쇠를 숱하게 뚫으며 달려왔지만, 그의 앞엔 간단치 않은 숙제 하나가 놓여있다. 후계자 찾는 일이다. 그는 내심 국내 한 전자회사에 다니는 사위와 딸이 물려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설사 물려받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물려받은 것에 직접 체득한 기술을 다 전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김 대표는 "제대로 배우겠다는 후계자가 나타나 모든 기술을 전수할 때까지는 가게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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