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기, 월 2400개가 줄었다... "단체 도시락·사내 카페부터 다회용기를"

입력
2021.05.09 10:10
수정
2021.05.09 13:5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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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청의 '돌봄SOS도시락'이 지난달 21일 다회용기에 담겨 있다. 배우한 기자

서울 중구청의 '돌봄SOS도시락'이 지난달 21일 다회용기에 담겨 있다. 배우한 기자

"건강을 위해 도시락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일회용품을 쓰는 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9일 서울 성동구 도시락·케이터링 서비스 업체인 '바른참' 작업장에서 일에 몰두하고 있던 안선영 대표의 말이다. 안 대표는 밥, 국, 두부부침, 잡채, 김치 등을 알록달록한 용기에 먹음직스럽게 담고 있었다. 도시락 업체 풍경이야 늘 이렇겠거니 싶지만, 차이는 있다. '다회용기'를 쓰는 곳이라는 점. 그러니까 이곳 플라스틱 용기는 배달하면 끝이 아니라, 되가져와 씻어서 다시 쓴다.

안 대표는 지난달부터 서울 중구청이 관내 취약계층에 제공하는 '돌봄SOS도시락' 약 50인분을 맡았는데, 과감하게 다회용기를 쓰기로 했다. 배달에 쓰는 비닐봉투도 생분해 재질의 봉투를 쓴다. 도시락 배달 과정에서 불필요한 쓰레기를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에서다.

한 달 다회용기 쓰니, 일회용기 2,400개가 줄었다

같은 식단을 일회용기에 담으면 한 끼에 4개의 일회용품이 필요하다. 배우한 기자

같은 식단을 일회용기에 담으면 한 끼에 4개의 일회용품이 필요하다. 배우한 기자

바른참이 구성한 도시락 1인분은 밥통, 국통, 반찬통 4개 등 모두 6개의 다회용기를 쓴다. 원래 일회용기 4개를 쓰던 제품이었다. 이렇게 해서 50인분만 해도 일회용품 사용이 한 번에 200개가 줄더니, 한 달(주 3회)에 2,400개가 줄었다. 다회용기는 스타트업체인 '트래쉬버스터즈'가 수거해서 세척한 뒤 바른참에 다시 빌려준다.

다회용기는 비싸다. 수거, 세척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1인분당 500원 정도니까, 50인분이면 2만5,000원을 더 내야 한다. 이 정도야 기꺼이 부담하겠다는 생각에 다회용기를 쓰기로 했지만, 반응이 좋아 더 기쁘다. 안 대표는 "도시락 배달 외에 행사 케이터링 서비스에도 다회용기를 시범적으로 써보고 있다"며 "일단 행사 주최 측에서 '쓰레기가 안 나와서 좋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다회용 배달'이 대안이라는데, 발목 잡는 비용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스타트업 트래쉬버스터즈는 다회용기를 대여하고 세척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뒤로 보이는 곳이 세척장이다. 왼쪽부터 곽동열 CCO, 최안나 CBO, 곽재원 대표. 배우한 기자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스타트업 트래쉬버스터즈는 다회용기를 대여하고 세척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뒤로 보이는 곳이 세척장이다. 왼쪽부터 곽동열 CCO, 최안나 CBO, 곽재원 대표. 배우한 기자

코로나19 탓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달시장 때문에 일회용품 쓰레기도 폭증하고 있다. 모두가 문제라고, 다회용기를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배달시장에서는 꿈 같은 이야기로 치부된다. 귀찮고 돈 들어서다. 싸고 편리한 일회용기로 무장한 '일회용 사회'에서 다회용기는 번번이 패배한다. 바른참 사례처럼 개인의 선한 의지에 기대거나 그저 배달 앱에서 '일회용 수저, 포크 안 주셔도 돼요'를 체크하는 데 그칠 뿐이다.

다회용기 배달의 가장 큰 걸림돌은 수거 비용이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같은 배달앱처럼 개별 건으로 거래하는 경우 집집마다 찾아가 수거해야 하는데,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곽재원 트래쉬버스터즈 대표는 "몇 개 안되는 다회용기를 일일이 수거하러 다니기엔 인건비, 유류비가 너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단체 도시락이나 케이터링 서비스처럼 한 번에 많은 물량을 다루는 경우, 아니면 기업체 등 상주 인구가 많은 곳에서 다회용기를 쓰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사내 카페서 다회용기 쓰니 컵 1,000개 아꼈다

KT 광화문 사옥에 위치한 사내 카페 이용객이 다 쓴 다회용컵을 수거함에 넣고 있다. 트래쉬버스터즈 제공

KT 광화문 사옥에 위치한 사내 카페 이용객이 다 쓴 다회용컵을 수거함에 넣고 있다. 트래쉬버스터즈 제공

실제 지난달부터 KT 광화문 사옥, GS 강남 사옥 등 기업들이 사내 카페에서 다회용컵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들 카페에서는 트래쉬버스터즈가 공급한 다회용컵에 음료를 제공한다. 손님은 이걸 자기 사무실 등으로 자유롭게 들고 갈 수 있다. 다 쓴 컵만 각 층마다 설치돼 있는 수거함에 '버리면' 된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이를 수거, 세척해 다시 대여한다. 사내 카페를 찾는 이들 대부분이 그 회사 직원들이라 사옥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포인트는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KT의 경우 이렇게 해서 사내 카페에서 절약하게 된 플라스틱 컵만 하루 1,000개 수준이다. 최근에는 한 영화관 체인점의 팝콘, 콜라 용기를 다회용기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곽재원 대표는 "일회용품을 줄이려면 환경부나 지자체가 '텀블러를 씁시다' 같은 캠페인만 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별 거 아니게, 편하게 환경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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