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공방, 문제는 태도다

입력
2021.04.2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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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성공 퇴색시킨 백신 수급의 실수
사과 없이 정치행태로 모는 적반하장
백신 현황도 공유하며 이해·협조 구해야

세 차례 대유행을 겪었어도 이만하면 대단하다고 자부했다. 국가규모나 경제의 크기, 사회 개방도 등에서 비견할 만한 나라 중 최상위급 성적이었으므로. K방역의 국뽕에 한껏 취할 만도 했다. 단, 세계의 코로나19 대응기조가 통제에서 백신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백신 소식에 매일 부아가 끓는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이 관광 문호를 열겠다는 호기를 부리고, 유럽연합 차원에선 미국과 ‘백신블록’을 구축해 여름부터 관광객을 받겠다는 방침도 나왔다. 접종자에게 제한 없이 여행을 허용하는 ‘디지털 녹색인증서’도 추진되는 등 서구를 중심으로 ‘코렉시트(코로나 탈출)’ 추세는 이제 분명해졌다.

이들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 우리가 코로나 참상을 연민에 찬 눈으로 내려다보던 나라들이다. ”(앞으로) 접종·비접종국 간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는 당연한 전망도 나왔다. 수석을 다투다 핵심진도를 놓쳐 돌연 열등생으로 전락해버린 듯한 열패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방역의 완성은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다. 백신과 치료제로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우리의 어려움은 성공에서 비롯된 ‘승자의 저주’ 같은 것이어서 이해할 여지가 없지 않다. 뒤늦게나마 백신 전쟁에 뛰어들어 분투하고 있는 점도 충분히 평가한다. 접종속도와 백신의 질, 집단면역까지의 기간 등에서 아직은 불확실성이 넘쳐나지만.

문제는 도무지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 정부의 태도다. 지난해 칼럼에서 정부의 대처능력을 크게 칭찬한 적도 있다. 총선 압승도 방역성공에 힘입은 바 컸다. 대외적으로도 K방역은 이 정부의 대표상품이 됐다. 넘치게 칭찬 받고 누릴 만큼 누렸으면 잘못에도 솔직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런데 적반하장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초 ”처음부터 11월 집단면역 목표를 제시했“고 계획대로 잘 돼가고 있다며 언론과 야당의 우려를 ”(백신의) 정치화"로 몰아붙였다. 정은경 청장이 ”11월까지 집단면역 형성“을 말한 게 올 초다. 이미 주요국들이 백신접종에 돌입한 지 한 달이 지났고, 당장 필요한 백신을 거의 확보한 지는 반년이 넘었을 때다(대통령의 백신확보 메시지는 석 달 전에야 나왔다). 홍남기 부총리도 최근 국회에서 백신 차질 지적에 “가짜 뉴스”라며 언성을 높였다.

되짚기도 뭣하지만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 (작년 2.13),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진척을 보이고 있고, 빠르면 올해 말부터 시장에 선보일 수 있을 것" (11.18), “백신이 빨리 도입됐고, 충분한 물량이 확보됐다”(올해 1.18) 등의 대통령 말은 다 허언이 됐다. 심지어 복지부 장관은 화이자와 모더나가 백신 사달라는 데도 고려할 게 많다는 투로 말한 적도 있다.

6년 전 불과 한 달 반의 메르스 사태(186명 감염·36명 사망) 때 당시 야당은 모든 언론과 합세해 연일 박근혜 정권을 난타해댔다. 그런데도 지금의 합당한 비판과 요구에 발끈하는 건 여전한 독선과 오만이다. 더욱이 백신에 관한 한 결격사유 넘치는 인사를 방역지휘부에 올린 무신경과 진영적 편협성까지 감안하면.

실수가 있으면 있는 대로 사과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 옳다. 감염자 발생현황에 더해 백신 확보와 접종 현황도 매일같이 공유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모두가 함께 걱정하고 견디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종일 마스크로 재갈 물리고, 몸이 갇히고 관계가 닫히고, 학교와 일터를 잃고, 생계에 몰려가며 지낸 게 일 년도 한참을 넘겼다.

지칠 대로 지쳐가는 국민에게 더는 “잘하고 있으니 잠자코 기다리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그건 K방역의 성과를 함께 만들어낸 이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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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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