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죄가 없다

입력
2021.04.21 04:30

국민연금은 늘 바람 잘 날이 없다. 국내주식 순매도를 멈추라는 주식투자자들의 요구 반대편엔, 원칙대로 버티라는 연금가입자들의 반박 목소리도 높다. 지난 9일 한국투자자연합회 대표와 회원들이 4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린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 회의장 앞에서 국민연금 과매도 규탄 시위를 벌이는 모습. 왕태석 선임기자

국민연금이 올해도 한바탕 소란을 겪고 있다. 연초부터 주식시장에서 순매도 행진을 벌인 게 발단이 됐다. 증시가 횡보세로 돌아서자 “대세 상승에 재를 뿌린다”는 동학개미 군단의 비난이 들끓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런저런 소문이 돌더니, 정부는 결국 여당의 선거 패배 직후 국민연금 운용자금의 국내주식 보유 비중 상한선을 높였다.

예정된 수순인 걸까. 며칠 더 순매도를 이어가던 국민연금은 최근 16일과 19일 이틀 연속 순매수로 돌아섰다. 보유 비중 상한선에 맞추려면 아직 6조 원가량을 더 팔아야 한다지만, 일단 그간의 줄기찬 매도 기세는 한풀 꺾이는 분위기다.

지난해 국민연금 자산운용 수익률은 9.7%였다. 작년 연금보험료 수입의 1.4배, 연금보험금 지급액의 2.8배인 72조 원을 재테크로 벌었으니 준수한 성과다. 이는 작년 초 코로나19 폭락장에서 저가 매수에 나선 효과였다. 하반기 주가 급등 속에 국내주식에서만 34.7% 수익을 챙겼다.

만일 올해 증시가 예기치 않게 급락한다면 어떨까. 증권가는 현재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보유 비중을 20.5% 정도로 추산한다. 올해 말 목표(16.8%)보다 한참 더 국내주식이 많은 상태에서 주가가 급락할 경우 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실제 2018년 국민연금은 비슷한 악몽을 겪었다. 연초 2,600선에 가깝던 코스피가 연말 2,000선까지 급락했는데, 과도했던 국내주식 비중을 제때 줄이지 못한 탓에 국민연금은 주가 하락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말았다. 그해 기금운용 수익률은 -0.9%로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ㆍ-0.2%) 때보다 오히려 더 낮았다.

혹자는 한국의 연기금이 한국 자본시장에 많이 투자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한다. 국민연금을 대출재원으로 활용해 주택난을 해결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수십 년 안에 사라질 운명의 국민연금에 불가능한 요구다. 당장 국민연금은 2030년이면 연금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진다. 한동안은 운용 수익으로 버티지만 2041년 1,778조 원을 정점으로 기금은 빠르게 줄어 불과 16년 후(2057년) 고갈을 맞게 된다. ‘상당히 낙관적’이라는 정부의 추계가 이 정도다. 시기는 더 당겨질 수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가 줄어든다는 건, 벌려놓은 투자금을 강제 처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시장이 좋든 나쁘든 매년 수십조 원씩 무조건 팔아야 하는 국민연금을 두고, 누가 한국 주식에 투자할까. 일시에 파는 위험을 줄이려면, 미리 비중을 줄여놔야 한다. 2019년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을 30%(2019년)에서 50%(2024년)로 높이겠다고 밝힌 것도 “미래 유동성 회수 시 시장 충격 최소화”가 이유였다.

정치적 부침을 막기 위해서도 비중 축소는 필요해 보인다. 국민연금의 별명은 ‘연못 속 고래’다. 연못 같은 국내 증시에서 고래처럼 많은 주식을 품고 있으니, 종목을 사고파는 것부터 기업 경영 간섭까지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는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정해진 운명은 어차피 국민 모두가 나눠져야 할 부담이다. 미래의 큰 위험을 줄일 계획을 당장 눈앞의 수익 때문에 헤집는 건 훨씬 위험하다. 조삼모사식 대응 대신 제2의 노후 대비 재원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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