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고 버리는 에코백은 정말 에코한가요”

입력
2021.04.16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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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입는 청바지로 가방 만드는 김승희 '기시히' 대표

안 입는 청바지를 뜯어 가방을 만드는 김승희 '기시히' 대표는 "많이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다"라며 "브랜드를 통해 '좀 덜 사세요'라고 말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기시히 제공

안 입는 청바지를 뜯어 가방을 만드는 김승희 '기시히' 대표는 "많이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다"라며 "브랜드를 통해 '좀 덜 사세요'라고 말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기시히 제공


“요즘에는 친환경이라는 이유로 에코백을 많이 쓰잖아요. 비닐봉지 대신 쓰는 건 좋지만, 하나의 유행이 돼서 과잉 소비되고, 저렴하니까 또 쉽게 쓰고 버려요. ‘에코백이 정말 에코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제 브랜드를 통해서 ‘재사용 해보세요’ ‘필요 없다고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좀 덜 사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가방 디자이너인 김승희(26) ‘기시히’ 대표는 고등학생 때부터 안 입는 청바지로 가방을 직접 만들었다. “시장에서 돈 주고 원단 사면 아깝잖아요. 대신 안 입는 청바지를 잘라서 가방을 만들었어요. 워싱으로 나오는 색감도 정말 다양하고, 질감도 두껍고 빳빳해서 튼튼해요. 가방 소재로 쓰기 좋았어요. 화려하게 디자인하지 않아도 패션 포인트가 될 수 있고요.”

안 입는 청바지를 해체해 만든 '기시히'의 가방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기시히 제공

안 입는 청바지를 해체해 만든 '기시히'의 가방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기시히 제공

그렇게 만든 ‘청바지 가방’이 요즘 인기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기시히 가방’이 회자되면서 이달 초 10개 한정 맞춤 주문이 1분 만에 마감됐다. 그가 만든 청바지 가방은 모두 디자인이 달라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그는 청바지 솔기를 모두 뜯어 해체한 뒤 만들고 싶은 가방의 형태와 크기에 맞춰 재단해 붙인다. 양쪽 대칭이 이뤄지도록 균형을 맞추고 주머니나 끈, 참, 버튼 등 장식을 어울리게 붙인다. 원래 청바지에 있던 지퍼나 로고, 주머니도 적절하게 배치한다. 색실을 활용해 자수를 넣기도 한다. 보통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 청바지 두 벌은 필요하고, 완성하기까지 꼬박 하루 이상 걸린다. “갑자기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지난달 말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어요. 감사하지만 많이 만드는 게 목표도 아니고, 제가 감당하기도 어려워서 한정된 수량만 주문받고 있어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환경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요즘에는 친환경이라는 이유로 에코백을 많이 쓰잖아요. 비닐봉지 대신 쓰는 건 좋지만, 하나의 유행이 돼서 과잉 소비되고, 저렴하니까 또 쉽게 쓰고 버려요. ‘에코백이 정말 에코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제 브랜드를 통해서 ‘재사용 해보세요’ ‘필요 없다고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좀 덜 사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청바지로 만든 가방은 비닐봉지로 포장하지 않고, 재사용하는 택배상자에 넣어 판매된다.

"주문을 받아보면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 청바지인데, 안 입거나 호기심에 가방으로 만들고 싶다는 분도 많으시더라고요. 그럴 땐 ‘이 청바지는 중고로 팔거나 기부하면 원래 용도로 잘 사용될 수 있을 텐데, 굳이 뜯어서 가방으로 만드는 게 낭비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어요.”

안 입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드려면 대략 청바지 2벌 정도가 필요하다. 기시히 제공

안 입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드려면 대략 청바지 2벌 정도가 필요하다. 기시히 제공

그의 목표는 ‘대구의 프라이탁’이다. 프라이탁은 트럭의 방수 천 등 재활용 소재를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스위스 브랜드다. “프라이탁처럼 못 쓰는 원단을 디자인적으로 보완해 충분히 아름답고 쓸모 있게 만들고 싶어요. 아무리 환경에 이로워도 안 예쁜 가방을 들라고 할 순 없잖아요. 지퍼가 고장나거나 얼룩이 묻었거나, 찢어져서 못 입게 된 청바지나 자주 입어서 너덜너덜해진 청바지를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예쁜 가방으로 바꿨을 때 기쁨은 말도 못해요. 어떤 분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즐겨 입으셨던 청바지를 가방으로 바꿔 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런 작업도 굉장히 의미 있었어요."

친환경이나 재사용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 주문을 받고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주문을 받아보면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 청바지인데, 안 입거나 호기심에 가방으로 만들고 싶다는 분도 많으시더라고요. 그럴 땐 ‘이 청바지는 중고로 팔거나 기부하면 원래 용도로 잘 사용될 수 있을 텐데, 굳이 뜯어서 가방으로 만드는 게 낭비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요.”

김 대표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가게도 대구에 있다. “제가 하는 일로 환경에도 유익한 영향을 끼치고 싶지만, ‘패션섬유의 도시’인 대구 지역에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프라이탁은 지역 생산자들이 개인 취향을 반영해 트럭 방수 천을 고른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저 혼자 하고 있지만, 지역 생산자와 협력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로컬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어요.”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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