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들은 왜 비상식적 관습과 규칙으로 망가질까

입력
2021.04.15 14:27
18면
구독

마틴 린드스트롬. 린드스트롬 컴퍼니 홈페이지

마틴 린드스트롬. 린드스트롬 컴퍼니 홈페이지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회사도 내부에선 상식 밖의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고객이 피해를 입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일례로 덴마크의 세계적 해운업체 머스크의 콜센터에선 한때 걸려오는 전화의 상당수가 ‘불가항력’ 범주로 분류됐다. 태풍으로 선박 운항이 불가능해지듯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 갑자기 많아졌을까. 원인은 KPI(핵심성과지표) 시스템 때문이었다. 불가항력 범주로 넣으면 보고서를 간단히 처리해서 건수를 늘릴 수 있지만 다른 범주에 넣으면 긴 보고서를 써야 하고 자연히 성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한 기업은 업무를 단순화하겠다며 축약어를 최대한 많이 쓰도록 했다. 직원들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약어가 늘자 회사는 이를 모은 사전까지 발간했고, 직원들은 매번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에 적합한 약어가 있는지부터 찾느라 고생해야 했다.

고장 난 회사들·마틴 린드스트롬 지음·박세연 옮김·어크로스 발행·320쪽·1만6,800원

고장 난 회사들·마틴 린드스트롬 지음·박세연 옮김·어크로스 발행·320쪽·1만6,800원

브랜딩·마케팅 전문가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저자는 수많은 기업을 컨설팅하며 조직의 규모나 분야에 관계 없이 비상식적이고 부조리한 일들이 전염병처럼 퍼져 있는 현실을 목격했다. 우스꽝스러운 사례가 많아 논픽션 코미디인가 싶지만 회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다. 저자는 기업을 고장나게 하는 요인을 부정적인 고객에 대한 무관심, 자기 것만 지키기에 급급한 사내 정치, 기술에 대한 맹신, 과도한 회의, 넘쳐나는 규칙과 정책, 규칙에 대한 집착 등으로 정리한다.

상식을 잃고 고장 난 회사는 고객에게 피해를 주고 결국 회사에 손해를 입힌다. 저자는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상식팀(The Ministry of Common Sense)’ 설치를 해결책으로 제안한다. 조직 내 상식의 결핍을 제거하고 직원과 고객의 삶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비효율성을 해결하는 부서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해결책을 찾는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될 수도 있고 미봉책에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참고해볼 만한 제언이다.

고경석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